[국회선진화법 2.0]①황우여 "매번 決戰? 법도 정권도 오래못가…선거법 고민해야"
국회선진화법 정신은 '협의'
의석 쏠림현상 없는 '안정적 국회' 만들어야
"여야의 가장 큰 문제는 매번 결전(決戰)을 치른다는 것이다. 법안 처리를 강행하면 법의 수명이 짧아지고, 정권 명운에도 영향을 준다. 김영삼 정권도 노동법 날치기 이후 국민의 저항을 받아 무너졌다. 법도 재개정 됐다. 혼자 가면 빨리 가나, 같이 가면 멀리 간다."
황우여 새누리당 전 대표는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갖고 "국가법은 백년대계를 보고 결정해야지, 여름철 해변 방갈로처럼 짓다가 부수듯 하면 법의 수명이 짧아진다. 반드시 '협의'라는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이 회복돼야 한다"고 했다.
황 전 대표는 김진표 전 국회의장과 함께 '폭력 국회' 시대를 끝낸 선진화법(2012년)을 만들어낸 산파다. 당시 황 전 대표는 집권당 원내대표였음에도 국회의장 직권상정 제한, 신속처리안건 제도(패스트트랙),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 등 선진화법을 관철했다.
황 전 대표는 "당시 빠루(쇠 지렛대)는 보통이었고, 최루탄까지 터졌다. 농담으로 원자탄만 남았다고 할 정도였다"면서 "선진화법은 김세연 전 의원 등 소장파 의원들의 요청으로 시작됐고, 민주당 원내대표던 김 전 의장도 동의해 숙의를 거쳐 만든 노작(勞作)"이라고 했다.
황 전 대표가 제시한 선진화법 정신은 협의다. 그는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절대적 진리를 인식할 수 없기에, 진지한 사색으로 나온 결론을 종합해 진리로 삼고 의지한다"면서 "국회도 그렇다. 협의라는 정반합, 총화의 과정을 거쳐 다수 의견을 법으로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했다.
여당이 '식물국회'를 이유로 패스트트랙 기간을 최대 330일서 90일로 단축하는 법 개정을 강행한 데 대해선 "유아교육법은 20년이 걸렸다. 패스트트랙의 330일도 늦어지는 게 아니"라면서 "제도를 선해(善解)해야 한다"고 했다.
야당도 주어진 제도를 진지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그저 신문 기사를 읽는 건 필리버스터가 아니다. 진정성 있게 발언해야 국민도 상대방도 귀담아듣는다"면서 "필리버스터로 법안이 폐기된 사례도 있지 않으냐. 선용(善用)하면 묘미를 줄 수 있다"고 했다.
선진화법 개정과 관련해선 "국회법 개정은 한계가 있다. 사실 국회법이 구구절절 일수록 국회에 문제가 많다는 의미"라며 "영국 의회는 수 백년간 쌓아온 관례, 관행이 국회법 역할을 한다. 우리도 관행이 그런 역할을 하는 정치 전통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황 전 대표는 이제 양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현행 소선거구제-단순 다수대표제는 정치 극단화 추세와 맞물려 의석수 쏠림 현상을 낳게 된다는 의미다. 황 전 대표는 "김 전 의장과 함께 공유했던 것은, 한 정당이 의석수 180석을 넘는 것은 (정상적) 국회가 아니라는 점이었다"라면서 "(극단적 의석수 쏠림현상이 없는) 안정적인 국회를 만드는 보완책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은 황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 내용이다.
▲국회선진화법을 왜 만들게 됐나.
-2011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출마 직전, 김세연 전 의원 등 12인의 당내 소장파 의원들이 나를 찾았다. "이런 동물 국회에서 우리가 왜 국회의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국회 폭력을 근절할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해 달라. 우리가 (황 전 대표를) 밀어줄 테니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시라"고 했다. 찍어준다고 하니 뭔 말을 못 하겠는가. (웃음) 그래서 내가 국회 선진화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과거 국회에서 여야 갈등은 어땠나.
-국회 선진화법 이전엔 국회의장 직권상정의 범위가 넓었다. 여야 협의가 교착되면 국회의장이 느닷없이 본회의 표결에 부칠 수 있었다. 다수당의 법안처리를 강행토록 할 수 있기에 여야의 대립이 극심했다. 당시만 해도 각 당 원내지도부가 초·재선 국회의원이 맡을 일을 지정해 줬다. 누구는 국회 본회의장 문을 막는 조(組), 누구는 국회의장을 붙드는 조, 누구는 단상 점거 조…. 쇠사슬, 쇠망치, 빠루(쇠 지렛대)를 꺼내 본회의장 문을 걸어 닫거나 때려 부수는 건 보통이고, 나중엔 최루탄(김선동 전 통합진보당 의원 본회의장 최루탄 투척 사건)까지 터졌다. 농담으로 '이제 남은 건 원자탄밖에 없다'고 얘기하기도 했다. (웃음) 이게 외신에 보도되고 세계적 웃음거리가 됐다. 국가의 체면도 말이 아니었고, 국민의 걱정도 컸다.
▲국회 선진화법 입법과 관련한 야당의 반응은 어땠나.
-18대 국회 당시 민주당 원내대표였던 김진표 전 국회의장이 바로 '오케이(OK)' 해 줘서 고마웠다. (대학) 선배인 고(故) 박상천 민주당 의원도 적극적으로 동의해 줬다. 그래서 여야 20인 위원회를 만들어 1년 내내 국회 선진화법을 다듬었다. 야당도 원내대표인 김 전 의장이 뒷받침해 줬고, 언론에서도 지원해 줬다. 다선 중진의원들도 관심을 갖고 여러 방안을 제시했다. 해외 사례 참고를 위해 미국 의회제도 변천사와 관련한 자료를 마련해 검토하기도 했다. 법안 자체가 상당한 노작(勞作)이었다.
▲김 전 의장과의 인연도 법안 통과의 한 배경이었던 것 같다.
-김 전 의장은 아주 훌륭한 분이다. (18대 국회 당시) 김 전 의장은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교육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까지 지내고 국회로 돌아와 경험, 학식, 덕망이 최고로 무르익은 상태였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동문이기도 하고, 장벽이 없는 사이였다. 내가 차마 말하지 못해도 마음을 읽어내고 큰 그림을 잘 그려줬다. 양당이 심각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도 완충재 역할을 하는 관계였다. 무엇보다도 당시는 국가가 한창 발전하는 시기로 우리 경제가 팽창하는데 필요한 여러 개혁 입법이 많이 나왔던 때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입법 과정 자체가 우리를 흥분시키는 역사적 시점이었던 것도 영향을 줬을 것이다.
▲19대 국회에서 예상외로 새누리당이 다수당이 되면서 국회 선진화법에 반발하는 목소리는 없었나.
-선거전에는 누가 이길지 모르니 여야를 막론하고 다들 하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본회의에 올려놓고 선거를 치렀는데 새누리당이 신승했다. 의원들 마음이 맹맹해지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당내 중진의원, 특히 당 주류인 영남권 의원들이 "그건 그때 얘기 아니요"라며 손사래를 치기 시작했다. 직권상정도 없으면 어떻게 국정운영을 하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국회 선진화법은 국민과 한 약속이었고 여야 간 합의였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후보도 동의한 사안이었다. 내가 모든 책임을 질 테니 약속대로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키자고 했다.
▲여당 원내대표로서 부담이 크진 않았나.
-국회 선진화법을 통과시키면 안 됐다는 비판은 지금까지도 받고 있다. 김 전 의장에게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하니 "정말 할 거야?"라며 깜짝 놀라더라. 나로서는 그 결단이 운명을 결정 짓다시피 했다. 국회의장이니 뭐니 다 차단됐다. (친박계로 분류됐던 황 전 대표는 19대 국회 후반기 국회의장 경선 과정에서 친이계 정의화 전 의장에게 밀려 패배했다) 하지만 자리(국회의장)는 잠깐 있다가 끝나지만, 법은 남는다. 지금도 개정이 이어지고 있는데, 국회 선진화법의 취지와 기본 틀은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탄생한 국회선진화법의 입법 정신이 있다면 무엇인가.
-바로 '협의'다. 합의라는 건 모두의 의사가 일치한다는 것인데, 국회에 이를 요구해서도, 요구할 수도 없다.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말을 빌리면 인간은 물(物) 자체를 인식할 수 없다. 결국 인간은 모든 경험과 지식을 쏟아붓고 진지한 사색을 통해 나온 결론을 모아, 그중 가장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것을 진리라고, 정의라고 부르고 의지한다. 그게 법이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절대적으로 옳다고 할 수 없기에 서로의 결론을 놓고 협의하고, 마지막에는 다수의 의사로 결정한다. 다수결이란 협의라는 정반합(正反合), 총화의 과정을 거쳐 다수의 의사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국회선진화법이 강조하는 정신이다.
▲현재도 국회 선진화법 정신이 여야에 남아 있다고 보나.
-살아 있지 못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겠나. 신라 화백회의에서도 만장일치가 있었겠나. 결국 모두 '적극적으로 찬성하진 않아도 반대하지 않는' 선에서 결정한 것이다. 국가법은 백년대계를 보고 결정해야 한다. 여름철 바닷가 방갈로처럼 짓다가 때려 부수듯 하면 법의 수명은 짧다. 반드시 협의라는 국회 선진화법의 정신이 회복돼야 한다. 그래야 법의 수명도 로마 교황청 교회법처럼 1000~2000년을 간다.
▲국회에서 여당이 법안을 강행 처리한 것이 19대 국회에선 0건이었으나 22대 국회에선 320건으로 급증했다.
-물론 마지막은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맞지만, 지금 여야는 매번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있다는 게 문제다. 남편과 아내의 의견이 다르다고 매번 결전할 순 없지 않나. 특히 이렇게 강행 처리한 법안의 수명은 짧다. 정권의 명운도 이에 결부된다. 김영삼 전 대통령 시절 정부·여당이 노동법 개정안을 개정처리 한 적이 있다. (1996년 노동법 날치기 사태) 당시 초선의원이었는데, 당에선 수고했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날치기 처리에 국민의 저항이 터져 나오면서 정권이 무너졌다. 민주당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사립학교법 등 4대 법안을 밀어붙이다가 정권이 힘을 잃었다. 당시 처리된 법안들 모두 후일 재개정 절차를 거쳤다.
▲여당은 일방적으로 패스트트랙 기간을 단축했는데.
-식물국회라 하지만, 동물 국회가 더 문제 아닌가. 식물은 결국 잎과 열매가 무성하면 된다. 식물이 꿈쩍도 안 하는 줄 아는데, 식물만큼 부지런한 생명체는 없다. 통계를 보면 국회선진화법 이전엔 법안 1개를 통과시키는 데 5년이 걸렸지만, 도입 이후엔 이것이 3년 이하로 줄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법안 처리를 늦추는 것이 아니다. 유아교육법 개정에는 20년이 걸렸다. 패스트트랙에서 규정한 330일도 느린 것이 아니다. 국회 선진화법 절차에 따라서도 1년 내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 이걸 선해해야지 법을 탓하면 어떡하나.
▲필리버스터가 늘어나면서 주목도가 떨어진단 지적도 있다.
-재미있는 얘길 하나 하자면 필리버스터 제도는 지금의 민주당 쪽에서 냈다. 미국에서 공부했던 경험이 있는 고 박상천 전 의원이 낸 아이디어다. 나는 당시에 "무슨 법안에 영어를 집어넣느냐. 해 본 적도 없는 제도 아니냐"라고 퉁명스럽게 말했는데, 이게 아주 묘미가 있다는 게 고 박상천 전 의원의 얘기였다. 본회의장 5분 발언, 15분 발언 제도가 있으나 법안 얘기로 한정된다. 상임위원회 소위는 국민이 직접 보기 어렵다. 필리버스터는 요새 같으면 국회가 유튜브 방송이 되는 것이다. 그저 신문 기사를 읽는 건 필리버스터가 아니다. 야당으로선 고통스럽겠으나 진지하게, 진정성 있게 발언해야 국민도, 상대방(여당)도 귀담아듣는다. 실제 필리버스터로 법안이 폐기된 사례도 있지 않나. 제도를 선용하면 묘미를 줄 수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도 형식적 절차가 됐단 지적도 있다.
-안건조정위원회를 둔 건 사실 협상장에서 논의가 안 되면 한 단계 격상해 원로끼리 논의를 하란 취지였다. 그래서 안건조정위에는 중진의원을 배치해야 한다. 초·재선 의원을 배치하면 결국 이래라저래라 싸우는 자리가 된다. 그래도 양당의 원로, 중진의원들은 얘기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취지를 살리면 재미나게 국회를 운영할 수 있다.
▲제도적으로 손 볼 방안은 없나.
-대통령은 취임 선서에서 '헌법을 준수해 직책을 수행하겠다'고 하지만, 국회의원은 '직무를 양심에 따라 수행하겠다'고 한다. 결국 국회의원을 실질적으로 컨트롤 하는 것은 양심이다. 그렇기에 국회에선 어떤 규율보다 '관행'이 중요하다. 국회법 개정은 한계가 있다. 사실 국회법이 구구절절 상세할수록 문제가 많은 국회다. 영국 국회는 국회법 자체가 없다. 수 백년간 쌓아온 관습, 관례, 선례가 국회법을 대체한다. 일례로 영국 예산안은 국왕의 이름으로 발의되고, 최종으론 국왕의 최종 서명을 거친다. 수 백년간 내려온 관행을 고치지 않는다. 우리 국회도 관행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잘 지켜나가면 영국처럼 국민이 사랑하는 정치 전통이 세워지지 않겠나.
▲그렇다면 제도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강제할 방법은 없나.
-이제 양당 원내 팀이 고려해야 할 것은 선거법 개정 문제다. 김 전 총리와 국회 선진화법을 논의할 때 중요하게 합의했던 것이 바로 (국회 선진화법 무력화 기준인) 180석이다. 한 정당이 180석을 차지해 입법을 좌지우지하면 그게 정상적인 국회가 아니란 취지다. 그러나 최근엔 한 정당이 180석을 넘게 차지하는 국회가 이어지고 있다. 이건 국민 탓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미비한 선거제도를 가지고 있느냐의 문제다. 결국 중요한 건 한 정당이 180석 이상을 차지 않는 안정적인 국회를 만드는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례로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경우, 일부 광역시에만 도입하더라도 의석 쏠림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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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에 조언한다면.
-자꾸 강행만 한다면 국회의원 선거에서 51%를 득표한 정당이 혼자 정치를 하면 된다. 49%를 획득한 정당은 집에 가서 낚시나 하는 게 낫지, 세비는 왜 받나. 이런 상황은 더 안 된다는 점에서 국회 선진화법이 출발한 것이다. 아무리 우리가 다수라고 해도, 소수의 목소리를 어떻게라도 반영하라는 제도적 장치를 만든 것이다. 야당도 모든 걸 문제 삼을 게 아니라 핵심이 되는 법 1~2개를 추려 대응해야 한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사학법 개정 문제로 당력을 집중하지 않았나. 필리버스터 등 제도도 진정성 있게 대응해야 한다.
유제훈 기자 kalama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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