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원 쿠폰' 줄 서서 받아가는데 1억8000만원 위스키 완판…추석 장바구니 '극과극'[르포]
추석 소비의 두 얼굴
차례상 재료는 몇백 원 차이에도 발품
전통시장 비용, 대형마트보다 16% 저렴
백화점 선물 매출 45%가 50만원 이상
추석을 닷새 앞둔 20일 오전 서울 도봉구 하나로마트 창동점 고객센터 앞에는 4000원짜리 할인 쿠폰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쿠폰을 받은 고객들은 하루 800개 한정으로 1792원에 판매되는 대파와 1320원짜리 무가 쌓인 매대로 향했다. 장을 보러 온 60대 여성은 "명절에는 살 게 많아 몇백 원, 몇천 원 차이도 쌓이면 크다"며 "채소와 고기가 저렴해 일부러 찾아왔다"고 말했다.
백화점에선 1억8000만원짜리 위스키가 주인을 찾았다. 신세계백화점이 이번 추석을 맞아 선보인 '맥캘란 레드 컬렉션 71년'이다. 롯데백화점이 한 병씩 한정 판매한 1000만원대 와인 '샤토 르팽 2015'와 '샤토 페트뤼스 2010'도 출시 직후 모두 팔렸다.
올해 추석 장바구니의 온도차는 뚜렷했다. 차례상 재료를 살 때는 할인 쿠폰을 챙기고 시장과 마트 가격을 비교하며 몇백 원이라도 아끼려는 모습이다. 반면 부모나 사돈, 중요한 거래처에 보낼 선물은 수십만 원을 쓰고 일부는 억원대 상품까지 찾았다. 고물가로 장보기 부담이 커지면서 제수용품은 가격표를 더 꼼꼼히 살피면서, 명절 선물은 품질과 희소성을 먼저 따지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대파 500원 차이에도 갈린 발길
이날 하나로마트 창동점은 오전 11시부터 장을 보러 나온 시민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서울에서도 규모가 큰 점포지만 통로마다 카트와 장바구니를 든 고객들로 빼곡했다. '추석맞이' 문구를 내건 매대에는 전감류와 데친 나물 등 제수용 식재료가 가득 쌓였다. 계란은 판매대 위에 산처럼 쌓였고 과일과 정육 코너에는 명절 선물세트가 전면에 배치됐다.
특히 정육 코너가 붐볐다. 국거리와 전감, 불고기용 고기를 고르는 고객들 사이로 한우 선물 세트를 찾는 발길도 이어졌다. 한 고객은 한우 선물 세트 10여개를 한꺼번에 카트에 실었다. 직원들은 "선물 세트는 무료 배송이 가능하다"고 거듭 안내하며 막바지 주문을 받았다.
정부는 이번 추석 장바구니 물가를 낮추기 위해 농협과 함께 877억원을 투입했다. 하나로마트에도 농림축산식품부의 농축산물 할인 지원인 '농할'이 적용된 상품에는 할인 안내판이 붙었다. '하나 가득 백색 특란'은 6960원에 판매됐다. 이 같은 대규모 할인 행사로 하나로마트는 인산인해를 이룬 것이다.
반면 자동차로 5분 떨어진 이마트 창동점에 들어서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하나로마트에서 카트를 밀기 어려울 정도였던 것과 달리 매장 통로에는 여유가 있었다. 채소와 정육 코너에도 고객이 드문드문 보였다.
일부 채소 가격은 하나로마트가 더 저렴했다. 하나로마트에서 1792원에 판매한 흙대파는 이마트에서 2296원이었다. 하나로마트가 504원, 약 22% 쌌다. 무도 하나로마트에서는 1320원, 이마트에서는 1710원이었다. 당근 100g 가격은 각각 390원과 478원이었다.
시장 전집은 긴 줄, 과일가게는 한산
전통시장도 추석 장을 보러 나온 고객들로 붐볐다. 20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은 인파에 밀려 서서 기다리듯 걸어야 할 정도였다. 시장의 한 상인은 "평일에도 손님이 많은 편이지만 이번 주에는 추석을 앞두고 평소보다 30% 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평소 눈에 띄던 외국인 관광객보다 장바구니를 든 내국인 고객이 많았다.
가장 붐빈 곳은 정육점과 전집이었다. 정육점마다 한우와 돼지고기를 사려는 손님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한우 양지 국거리는 100g당 5500원이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전통시장의 탕국용 한우 양지 600g 가격은 3만3050원으로 대형마트(5만610원)보다 1만7560원, 약 35% 저렴했다.
전집에서는 호박전과 꼬치전, 명태전, 동그랑땡, 깻잎전, 육전 등을 담은 모둠전 400g을 1만8000원에 팔았다. 모둠전을 산 60대 이모씨는 "재료를 따로 사고 직접 만드는 것보다 오히려 저렴하다"며 "가족들이 좋아하는 전을 골고루 샀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최근 가격이 급등한 채소와 과일 가게는 상대적으로 한산했다. 애호박 한 개 가격은 지난해 1250원에서 올해 2410원으로 92.8% 뛰었다. 무 한 개도 2040원에서 2530원으로 24% 올랐다. 배 5개 가격은 2만3540원에서 2만7300원으로 16% 상승했다. 올해 추석이 예년보다 일러 출하 시기가 앞당겨지면서 제수용으로 쓰이는 대과 비중이 줄어든 영향이다. 가격이 많이 오른 채소와 과일은 필요한 만큼만 사려는 분위기가 뚜렷했다.
한국물가협회에 따르면 올해 전통시장에서 차례상을 차리는 비용은 30만3750원으로 지난해보다 4.1% 늘었다. 그래도 대형마트(36만1300원)보다는 5만7550원, 약 16% 저렴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같은 차례상을 준비하려면 36만2970원이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50만원 넘는 선물이 매출의 45%
백화점 식품관의 분위기는 달랐다. 사과와 배, 샤인머스캣, 애플망고 등을 담은 과일 선물 세트에는 20만~40만원대 가격표가 붙었다. 고객들은 직원에게 산지와 구성을 물으며 여러 상품을 비교했다. 평소 장바구니에 담기에는 부담스러운 가격이지만 40만원대 과일 세트를 고르는 고객도 눈에 띄었다.
서초구에서 온 60대 장모씨는 "사돈댁에 보낼 선물이라 가격보다 품질을 먼저 따지게 된다"고 말했다. 매대 뒤에서는 직원들이 주문받은 선물 세트를 포장하고 상품을 다시 채워 넣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기프트 배송 접수 데스크에도 여러 곳으로 선물을 보내려는 고객들이 몰렸다. 직원들은 수취인과 주소, 배송 일정을 하나씩 확인하며 주문을 처리했다.
신세계백화점의 추석 예약판매 매출 가운데 50만~100만원 상품 비중은 30.5%, 100만원 이상 상품은 14.2%였다. 선물 세트 매출의 44.7%가 50만원 이상 상품에서 나온 셈이다.
1++ 등급 한우 가운데 상위 3% 암소만 선별한 '명품 한우 더 시그니쳐'는 320만원, 35㎝급 굴비로 구성한 '명품 참굴비 특호'는 350만원에 달한다. 신세계가 국가유산청과 협업해 선보인 350만원짜리 백자 달항아리와 450만원짜리 청화백자 모란문 항아리에도 고객 문의가 이어졌다. 가격뿐 아니라 희소성과 스토리를 갖춘 선물을 찾는 수요가 이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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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 업계 관계자는 "명절에는 누구에게 선물하느냐에 따라 평소보다 과감하게 지출하는 고객이 있다"며 "고물가에도 품질과 희소성이 확실한 프리미엄 선물 수요는 꾸준하다"고 밝혔다.
권재희 기자 jayful@asiae.co.kr
한예주 기자 dpwngk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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