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계 "안전성 검증·불법 유통 대책 선행돼야"
진료선택권·의료진 법적 보호 필요
처방 주체·사용 주수·상담 등도 쟁점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의 국내 도입을 공식화한 가운데 관련 규정과 의료체계를 정비·수립하는 일이 과제로 떠올랐다. 의약품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심사해 허가하는 것과 임신중지를 언제, 어떤 조건에서 허용할 것인지는 별개의 문제인 만큼 장기간 이어진 입법 공백을 서둘러 해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Why&Next]임신중지약 '미프진' 허용되는데…법·제도 구멍 '숭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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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정부와 의료에 따르면 현대약품이 2024년 12월 품목허가를 신청한 '미프지미소'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위해성관리계획 등에 대한 보완 심사가 진행 중이다. 식약처 허가 이후에도 수입과 품질검사, 물량 확보 등의 절차가 남아 있지만 정부는 업체와 협력해 내년 1분기 중 도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이 약물은 도입 초기 2년간은 의료기관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조제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정부는 임신 주수와 자궁외임신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의료적 역량을 갖춘 의사를 중심으로 처방체계를 마련하고, 이후 안전성과 부작용, 법 개정 상황 등을 살펴 운영 방식을 조정한다는 구상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등 산부인과계는 정부의 안전관리를 전제로 한 단계적 도입 방향에는 공감하면서도 약물 도입에 앞서 의료 현장에서 적용할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제도 밖에서 비공식적으로 유통돼 온 약물을 국가 의료체계 안에서 관리할 필요가 있지만, 의사의 전문적인 판단에 맡기는 것과 국가가 명확한 기준 없이 의료진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지적이다.


약물적 임신중지는 단순히 약을 복용하는 행위가 아니라 자궁외임신 여부를 확인하는 것부터 과다출혈, 불완전 유산, 감염, 지속 임신 등 발생 가능한 상황에 대한 판단과 사후관리가 필요하다. 특히 응급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구체적인 기준 없이 의료진의 재량만 강조할 경우 환자 안전뿐 아니라 의료진 역시 의료분쟁과 법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산부인과 의사들의 우려다.

김재유 직선제 대한산부인과개원의사회장은 "일각에서 약물적 임신중절을 단순한 알약 복용 수준으로 가볍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지만, 약물의 접근성을 확대하는 것만으로 여성의 건강권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며 "안전하게 약물을 사용할 수 있도록 명확한 법적 근거와 표준진료지침, 응급 대응 및 사후관리 체계, 의료진 보호장치 등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의사협회 역시 아직 식약처 허가를 받은 자연유산 유도 의약품이 없는 상태에서 충분한 안전성 검증과 불법 유통 대책을 갖추지 않은 채 도입할 경우 임신부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의협은 "의료인이 생명윤리나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임신중지 진료를 거부할 경우 의료법상 진료 거부로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입법과 함께 환자와 의료인을 보호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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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은 임신 9주 이내 허가 심사…법적 허용 주수와는 별개

국회입법조사처는 보다 근본적인 법적 공백을 문제 삼았다. 전윤정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최근 '미프진 허용의 쟁점과 과제' 보고서에서 "의약품의 안전성·유효성·품질은 식약처가 심사하되, 임신중지의 허용 기간과 사유, 절차 등은 국회가 법률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특히 '약을 몇 주까지 쓸 수 있느냐'와 '임신중지를 몇 주까지 허용할 것이냐'는 구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식약처는 그동안 약물 사용 가능 주수를 정하기 위해서는 임신중지에 관한 법적 정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법제처는 의약품의 허가상 사용 주수와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 주수는 서로 다른 문제라고 판단했다. 품목허가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된 의약품의 사용 범위를 정하는 것이지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 주수나 사유·절차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현재 미프지미소의 국내 품목허가 신청은 임신 9주 이내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식약처는 제출된 임상시험 자료에 근거한 신청 내용에 따라 심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약물이 9주 이내로 허가된다고 해서 임신중지의 법적 허용 범위까지 9주로 정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를 어디까지 허용할지는 별도의 입법 과제로 남는다.


상담과 숙려기간도 풀어야 할 문제다. 임신 유지와 출산·양육 지원, 임신중지 방법과 부작용 등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의무상담이나 숙려기간이 사실상의 허가절차로 작동할 경우 자기결정권을 제한하고 임신 주수를 오히려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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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조사관은 "임신중지 약물의 품목허용과 법률 개정을 선후관계로 설정하기보다 병행 추진할 필요가 있다"며 "식약처는 현행 약사법에 따라 안전성·유효성·품질에 관한 심사를 진행하고, 국회는 동시에 모자보건법 등을 개정해 임신중지의 제도 공백을 메우는 법적 기준과 의료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인경 기자 ikjo@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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