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목 이 판결]법원 "손해배상액 예정 아냐"…KB부동산신탁 책준소송 첫 승소
"의무 불이행 따른 실제 발생 손해 배상해야"
기존 판결 뒤집고 새로운 해석 내놓아
피고 대리 법무법인 YK 주장 대부분 수용돼
부동산신탁회사가 대주단과 책임준공형 관리형 토지신탁계약을 체결하면서 책임준공기한 내에 준공하지 못한 경우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를 배상하도록 정한 약정은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볼 수 없고, 의무 불이행에 따라 실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기로 한 조항으로 봐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그동안 유사한 사건에서 법원이 신탁사의 책임준공 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 약정을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봐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를 전액 지급하도록 판결했던 것과 상반된 해석으로 향후 상급심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손해배상액 예정, 전 손해 배상" vs "예시에 불과, 실제 손해 배상"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제46민사부(재판장 김형철)는 뉴스테이트제이차 주식회사가 KB부동산신탁 주식회사를 상대로 '40억원과 이자를 지급하라'며 낸 손해배상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지난 9일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쟁점조항은 피고가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와 관계없이 대출원리금 전액 및 연체이자를 배상할 것을 정한 손해담보계약 또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이라고 볼 수 없다"고 전제했다.
이어 "따라서 피고는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으로 인해 실제 원고에게 발생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으나, 원고는 위 손해가 피고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상태에서 회수했거나 회수할 수 있는 대출원리금의 차액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이에 관해 구체적인 주장·증명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결국 원고의 이 사건 청구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원고인 뉴스테이트제이차는 주식회사 아이엠디씨가 시행사로, 신원건설이 시공사로 참여한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한 오피스텔 신축·분양 사업의 자금 조달 과정에서 설립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원고를 포함한 대주단은 시행사이자 차주인 아이엠디씨와 차주가 대주단으로부터 총 460억원을 차입하는 대출약정을 체결했고, 원고는 후순위 대주(Tranche C)로서 차주에게 대출금 40억원을 이자 연 8%, 연체이자 11%, 대출만기일을 '최초 대출실행일로부터 35개월이 되는 날'로 정해 대여했다.
KB부동산신탁은 뉴스테이트제이차와 관리형 토지신탁 계약을 체결했는데, 해당 계약에는 '신탁사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 그로 인해 대주단에게 발생한 손해(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를 배상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었다.
시공사는 대출금 최초 인출일(2021년 10월13일)로부터 29개월 이내인 시공사 책임준공기한을 지키지 못했고, KB부동산신탁 역시 대출금 최초 인출일로부터 35개월 이내(2024년 9월12일)인 신탁사 책임준공기한을 준수하지 못했다. 결국 대주단의 대출금 채권 만기가 도래했지만 차주가 대출원리금을 상환하지 못했고, KB부동산신탁은 2025년 10월20일 건물을 준공하고 사용승인을 받았다.
재판에서는 대출약정 중 대출 관련 담보에 관한 조항과 관리형토지신탁계약상 '신탁사의 책임준공의무' 조항에서 정한 신탁사의 배상 범위가 쟁점이 됐다. 즉 '신탁사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하지 못한 경우 그로 인해 대주들에게 발생한 손해(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를 배상한다'는 문구의 해석을 둘러싸고 양측의 주장이 엇갈렸다.
먼저 원고 측은 책임준공의무를 불이행한 KB부동산신탁 측에 양자 간 체결된 손해담보계약 내지 손해배상액의 예정에 따라 대출원금 40억원과 약정이자, 지연손해금 전부를 지급할 것을 요구했다.
민법 제398조에 규정돼 있는 손해배상액의 예정은 계약을 체결할 때 계약 위반이 발생할 경우 지급할 손해배상액을 당사자 간에 미리 정해두는 것으로, 채권자가 채무자의 채무불이행 사실만 증명하면 실제 손해의 발생 여부나 손해액을 따로 증명할 필요 없이 약정한 금액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반면 KB부동산신탁 측은 "위 조항의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는 각 약정의 문언 및 체계상 손해의 예시 및 설명에 불과할 뿐, 손해배상액을 예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으므로 피고는 원고에게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에 따라 실제 발생한 손해만을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그리고 그 같은 손해란 ▲책임준공의무를 이행했을 때 원고가 신탁재산에서 회수할 수 있었던 대출원리금에 대한 책임준공기한일 다음 날부터 실제 사용승인일까지 발생한 법정이자 상당의 지연손해금 내지 ▲책임준공기한일 당시 건물의 가치평가액과 사용승인일 당시 건물의 가치평가액 사이에 변동이 발생해 원고가 신탁재산에서 회수할 수 있는 대출원리금 금액에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 그 차액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원고는 피고의 책임준공의무 지체와 상당인과관계에 있는 구체적인 손해액의 발생 및 범위에 대한 주장입증이 없을뿐더러, 이 사건 건물의 준공 당시인 2025년 10월20일 당시의 가액을 고려하면 대출원리금 및 연체이자를 모두 회수할 수 있으므로 원고에게 손해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없다"고 했다.
재판부는 이 같은 KB부동산신탁 측 주장을 받아들여 원고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피고 측 YK "자본시장법을 비롯한 법률 위반" 주장 수용돼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준공 지연의 모든 책임을 신탁사에게 물었던 유사 사건에 대한 기존 판결들과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서울중앙지법에서만 지난해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모두 7건 이상의 유사 사건에서 신탁사가 패소한 가운데 이 같은 법원의 해석이 향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의 위험을 누가 어느 범위에서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으로 확립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먼저 기존 판결들은 문제가 된 쟁점조항의 내용이 책임준공의무의 미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채무이기 때문에 이는 보증이 아닌 신탁회사의 독자적인 자기 채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번 소송에서 KB부동산신탁 측을 대리한 법무법인 YK는 ▲원고들의 주장대로 해석할 경우 자본시장법이 금지하는 지급보증 및 손실보전에 해당할 뿐 아니라 ▲신탁법 제38조에 따른 수탁자의 유한책임원칙에 반하며 ▲나아가 금융위원회의 허가 없이 보증보험업을 영위하는 것이 돼 보험업법에 위반되고 ▲민법 제103조의 반사회질서 행위에 해당돼 효력이 없다는 등 새로운 주장을 펼쳤고, 이 같은 주장이 상당 부분 받아들여졌다.
재판부는 "대출원리금 전액 및 연체이자를 손해배상예정액이라고 보는 경우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는 손실보전 내지 이익보장 행위에 해당하며, 실제 손해 발생 여부를 묻지 않고 대출원리금 전액 및 연체이자를 배상하게 하는 것은 손해의 공평·타당한 분담이라는 손해배상제도의 기본 취지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또 YK에서는 관련 사건에서 대주들이 대출금 채권을 양도·양수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책임준공의무 미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채무가 보증이자 대출금 채권에 부수하는 인적 담보에 해당한다"고 밝혔던 사실을 찾아내 재판부에 어필했고, 기존 판결처럼 신탁회사에 손실을 전가할 경우 금융시장에 심각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법원의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적극 호소했다.
박재완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이 사건 판결은 이 사건 쟁점조항의 성격을 실제 발생한 손해를 배상하는 조항으로 해석하고, 대주단의 주장과 같이 손해배상액의 예정으로 본다면 자본시장법 등에서 금지하는 신탁업자의 지급보증, 손실보전 내지 이익보장에 해당하며, 손해배상제도의 기본 취지에 반해 허용될 수 없다고 판단한 첫 사례"라며 "이번 판결을 통해, 책임준공형 관리형토지신탁에서 통용돼 온 신탁회사의 책임준공 관련 조항의 정확한 의미와 법적 성격이 명확하게 밝혀졌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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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박 변호사는 "'책임준공의무 불이행에 따른 손해배상'이라는 외피를 쓴다고 해서 자본시장법 등 관련 법률의 적용을 회피할 수 없음을 명확하게 확인했다는 점, 그리고 책임준공기한을 불과 단 하루 도과하는 등 실제로 발생한 손해가 있는지가 불분명함에도 수탁자인 신탁회사에 일방적으로 손실을 전가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는 점이 확인돼, 우리 금융시장에 불필요한 혼란이 초래되는 것을 막는 큰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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