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제정 100돌 맞아 10월 한 달간 개최
김상옥·박완서·오정희·조정래·김병종 등 문인·화가의 부채 한자리

부채는 글을 담기에는 이상하게 좁은 화면이다. 더구나 길이가 일정하지 않은 한글 문장을 얹으려면 정해진 형식을 따르기도 어렵다. 그런데 바로 그 제약이 한글을 그림처럼 만든다. 글자의 크기를 달리하고, 행을 비틀고, 여백을 비워내는 순간 문장은 읽는 대상에서 보는 대상으로 바뀐다.

영인문학관이 한글날 제정 100돌을 기념해 마련한 ‘한글서화 부채전’ 포스터. 전시는 10월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며, 문인과 서화가들이 한글과 그림으로 꾸민 부채 작품을 선보인다. 영인문학관

영인문학관이 한글날 제정 100돌을 기념해 마련한 ‘한글서화 부채전’ 포스터. 전시는 10월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영인문학관에서 열리며, 문인과 서화가들이 한글과 그림으로 꾸민 부채 작품을 선보인다. 영인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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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인문학관은 한글날 제정 100돌을 맞아 오는 10월1일부터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평창동 영인문학관에서 '한글서화 부채전'을 연다고 21일 밝혔다. 문학관이 소장한 접선과 단선 가운데 한글로 꾸민 서화 부채를 골라, 한글이 부채라는 제한된 화면 안에서 만들어내는 조형성과 구성 방식을 살펴보는 전시다.


전시가 주목하는 것은 '잘 쓴 글씨'만이 아니다. 영인문학관의 컬렉션에는 전통적인 선면화 방식을 따른 작품과 기존 구도를 벗어나 화면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작품이 함께 있다. 전문 서예가가 아닌 문인들은 붓뿐 아니라 볼펜과 플러스펜까지 사용했다. 정해진 서법보다 저마다의 문장과 손맛이 화면을 결정한 셈이다.

전시의 중심에는 시조시인 초정 김상옥이 2002년 만든 대형 부채가 놓인다. 그는 부채의 거의 전면을 산문으로 채웠다. 좋아하는 네 시인의 시를 끌어오며 자신의 시론을 풀어놓고, 낙관과 글자의 굵기, 불규칙한 여백을 하나의 화면으로 엮었다. 김상옥은 이 작품을 추사와 미당, 솔거, 청마 등이 시회를 벌이는 모습을 그린 일종의 '반차도'라고 설명했다. 글씨로 그림을 만든 작품인 셈이다.


소설가 오정희의 부채도 비슷하면서 다르다. 작은 부채를 펜으로 촘촘하게 채우다 화면 한가운데를 비워 뜻밖의 여백을 만들었다. 송영은 얇은 글자들을 꽃잎처럼 부채 면 전체에 흩뜨렸고, 김단희는 조지훈의 '승무'와 정지용의 '유리창'을 기존 서예의 구도와 다른 방식으로 풀어냈다. 화가 김병종의 작품에서는 그림과 글씨가 한 화면 안에서 맞물린다.

이름만으로도 한국 현대문학사의 한 페이지를 펼쳐놓은 듯하다. 김남조·고은·김지하·이근배·정진규·정현종 등 시인과 박화성·최정희·박경리·박완서·한말숙·오정희·송영·조정래 등 소설가, 이종상·김병종·김단희 등 서화가의 작품이 나온다. 박완서의 글과 김점선의 그림이 만난 부채, 서정주의 글과 이종상의 그림이 함께한 작품, 이어령과 이석조·이종상이 협업한 작품도 선보인다.


결국 이 전시는 한글을 '무엇을 적는 문자'가 아니라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질문으로 옮겨놓는다. 먹의 농담과 글자의 크기, 행간과 여백, 그림과의 관계가 각기 다른 화면을 만들면서 한글은 문학과 서예, 회화의 경계를 넘나든다. 작은 부채 하나가 한 편의 글이면서 동시에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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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기간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작가와의 만남'도 열린다. 10월10일 강인숙 영인문학관장이 '한국 고어의 아름다움', 24일 권재일 한글학회 이사장이 '가가날 100년-한글을 되살펴 보다', 31일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이 '왜 이어령인가?'를 주제로 강연한다. 강연은 사전 예약제로 운영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이며 일·월요일은 휴관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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