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 법인세 헤택 활용해 여유 자금 운용
반값 전기료·인건비 쫓아 동남아 생산거점 확대

싱가포르에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 총괄 본부를 둔 중견기업 A사. 이 기업은 베트남·태국·인도네시아 등 주변국 사업장에서 올린 수익 일부를 이곳 싱가포르 본부로 송금한다. 현지의 세제 혜택과 우수한 금융 인프라를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이렇게 운용하는 자산만 수십조 원에 달한다. 원금 손실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산 대부분을 단기 안전자산으로 운용한다.


국내 주요 기업의 자금과 생산기반이 해외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세제 혜택과 금융 인프라를 활용해 자금을 운용하고, 말레이시아에서는 낮은 전력비와 안정적인 노동 환경을 바탕으로 생산기지를 확대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자국 내 생산 압박까지 거세지면서 반도체 기업들은 미·일 현지 생산망 확보에도 나섰다.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선택이지만 국내 투자와 고용 기반이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자금 컨트롤타워' 싱가포르

“금고는 싱가포르, 생산은 말레이”…韓기업 해외 지도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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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아시아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A사는 싱가포르에 동남아시아 및 오세아니아 지역 법인들을 관할하는 총괄본부를 두고 '자금 컨트롤 타워'로 운영하고 있다. 동남아 주요 10여 개국 현지 법인에서 발생한 영업이익 중 일부를 배당금이나 경영·기술 지원에 따른 수수료 명목으로 싱가포르 지역본부에 송금하는 방식이다.

싱가포르 거점에 축적된 자금은 수십조원에 달한다. A사는 이를 현지 금융기관에 예탁해 유동성을 관리한다. 원금 손실 위험을 최소화하고 자산 유동성도 확보해야 하므로 대부분을 만기 30~60일 이내의 단기 채권이나 머니마켓펀드(MMF) 등 초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한다. 기업의 자금 운용 중심축이 국내 본사에서 해외 지역본부로 분산되는 셈이다.


싱가포르는 법인세율이 17%로 한국(최고 25%)이나 미국(21%)보다 낮은 데다 외환 규제가 적고 금융 인프라가 뛰어나다. 국내보다 유리한 세제와 규제 환경이 기업 자금의 해외 이동을 촉진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재계 관계자는 "지역본부는 관할 국가 현지 법인들의 여유 자금을 효율적으로 집행하고 환율 등 리스크를 관리하는 중앙 금융 창구 역할을 한다"며 "싱가포르를 거점으로 여유 자금을 집결해 재투자하거나 본사로 이전하는 구조는 다국적기업에선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반값 전기료에 안정적 노사… SKC·OCI·롯데, 말레이시아로 집결

싱가포르 거점이 자금과 유동성 관리에 초점을 맞춘 금융 허브라면, 말레이시아는 국내 주요 기업들의 핵심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다. SK그룹에서는 SKC의 이차전지용 동박 제조 자회사 SK넥실리스가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공장을 생산 거점으로 활용한다.


SK넥실리스는 코타키나발루 동박 공장 가동률을 끌어올리며 생산·판매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비중국산 전지용 동박에 대한 주문이 늘면서 하반기 말레이시아 공장이 풀캐파(최대 생산 능력)에 들어갈 정도로 수요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정읍 공장은 연구개발(R&D) 중심의 '마더 팩토리' 역할을 맡고 있다.

OCI홀딩스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OCI테라서스 전경. OCI홀딩스

OCI홀딩스의 말레이시아 자회사 OCI테라서스 전경. OCI홀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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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현지 생산은 전기료와 인건비 등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는 데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과 글로벌 공급망 대응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동박 생산은 전력비가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전력비 절감 효과가 경쟁력으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 현지 공장의 전력비 단가는 기존 공장 대비 절반 이하 수준으로 알려졌다.


현지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도 긍정적 요인이다. 코타키나발루 공장은 현지 인력과의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원활한 생산체계를 유지하며 경영상 불확실성을 낮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OCI홀딩스도 말레이시아를 주요 생산거점으로 활용하며 비용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OCI홀딩스의 말레이시아 생산법인인 OCI테라서스는 연간 3만5000t 규모의 비금지외국기관(Non-PFE) 태양광용 폴리실리콘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말레이시아 공장은 수력 발전을 기반으로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력비 절감뿐 아니라 탄소 배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국제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기준 대응에도 유리하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도 말레이시아 생산기지의 가동률을 높이고 있다. 회사는 지난 2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전지박 중심인 말레이시아 공장 가동률을 76%까지 끌어올렸다고 밝혔다. 전지박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능력도 확대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 말레이시아 5공장을 본격 가동했으며, 당초 내년 가동 예정이었던 6공장도 일정을 앞당겨 올해 4분기 내 조기 가동할 계획이다.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말레이시아 공장.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말레이시아 공장.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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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넘어 미·일로

동남아 지역을 넘어 선진국으로 해외 생산 거점을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가속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SK하이닉스는 미국과 일본 등을 무대로 메모리 반도체 생산 다각화를 모색 중인 대표적인 기업이다.


SK하이닉스는 미국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 40억달러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첨단 패키징 생산 공장을 착공한 데 이어, 최근에는 현지 전공정(팹) 생산 기지 확보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인텔의 오하이오주 반도체 생산 시설 일부를 임차하거나 주요 클라우드 기업들과 합작법인(JV)을 설립해 미국 내 메모리 생산 라인을 마련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일본에서도 생산 거점을 다원화하는 방안을 모색하며 해외 현지화 전략을 정교하게 다듬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 기업들의 해외 거점 다변화를 글로벌 노동 환경 변화와 미·중 갈등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흐름으로 분석한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국내의 노동 규제와 인건비 부담이 커진 데다 과거 저임금 시장이었던 중국마저 2000년대 이후 인건비가 크게 상승했다"며 "중국과 인접해 지리적 이점을 누리면서도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하고 미·중 갈등에 따른 통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동남아로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것"이라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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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교수는 이어 "중국을 벗어나 동남아 등 대체 시장을 찾는 움직임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돼 온 흐름"이라며 "최근 싱가포르를 비롯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으로 생산 및 금융 거점이 정교하게 확장되는 추세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장보경 기자 jbg@asiae.co.kr
기자가 작성하고 AI가 부분 보조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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