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이름과 새기려는 이름, 그 값은 누가 매기나
'본 대로, 들은 대로'와 '내 이름을 새겨라' 사이
케네디는 케네디센터에 자기 이름을 붙인 적이 없다. 원래 이름은 '내셔널 컬처럴 센터'였다. 존 F. 케네디가 암살된 뒤인 1964년, 미 의회가 그의 이름을 붙여 '살아 있는 기념물(living memorial)'로 삼았다. 죽은 대통령에게 산 사람들이 이름을 선물한 셈이다.
미국 워싱턴DC 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센터에서 작업자들이 건물 외벽에 새겨진 센터 이름을 ‘도널드 J 트럼프-존 F 케네디 기념 공연예술센터’로 바꾸고 있다. AFP=연합뉴스
62년 뒤 그 건물에서 이름 하나가 떨어져 나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이사회가 센터 이름 앞에 'Donald J. Trump'를 붙였지만, 법원은 이름을 바꿀 권한이 의회에 있다고 판단했다. 지난 6월 새벽 3시께 작업자 14명이 건물 외벽에서 'The Donald J. Trump and'라는 18개 글자를 떼어냈다. 이사회가 8월 다시 트럼프 이름을 건물과 광장에 새기려 했지만 이달 법원은 또 제동을 걸었다.
비슷한 시기 한국에서는 한 정치인의 이름을 다시 쓰는 작업이 끝났다. 노무현재단이 노무현 전 대통령 탄생 80주년에 맞춰 처음 낸 공식 '노무현 평전'이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은 10년 동안 노무현사료관의 구술·연설문, 비공개 기록 160여 건과 자신이 남긴 수첩 600여 권 등을 뒤져 928쪽을 썼다. 집필 원칙은 고인이 생전 남긴 말이었다. "자네가 본 대로 들은 대로만 쓰게. 과장할 것도 없고 일부러 빼놓을 것도 없네."
한쪽에서는 살아 있는 대통령의 이름을 돌에 새기려 하고, 다른 쪽에서는 죽은 대통령의 이름을 928쪽의 문장으로 다시 읽는다. 이 대비를 누구는 겸손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다는 품평으로 끝내면 별로 재미가 없다. 더 흥미로운 것은 정치인의 이름이 언제부터 본인의 것이 아니게 되는가다.
'이름값'이라는 우리말에는 묘한 이중성이 있다. 유명한 이름이 가진 가치이면서 동시에 그 이름에 걸맞게 행동해야 한다는 책임이다. 정치인의 이름은 둘을 한꺼번에 가진다. 살아 있을 때는 선거 포스터에 인쇄되고 정책과 정당을 대표하는 브랜드지만, 권력을 내려놓은 순간부터는 타인이 그 이름을 쓰기 시작한다. 지지자는 계승하고 반대자는 비판한다. 연구자는 해석하고 후대의 정치인은 필요할 때 소환한다. 이름의 주인은 한 사람인데 사용자는 갈수록 많아진다.
케네디센터에서 벌어진 일은 그래서 간판 싸움 이상의 의미가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입수한 내부 자료에 따르면 트럼프 측이 센터 운영을 장악한 뒤 티켓 판매가 줄었고, 이름 변경 뒤에는 기부와 사업수익 감소폭이 더 커졌다. 올해 센터의 총수입 전망치는 당초 예산 약 2억2000만달러보다 크게 낮은 약 1억2400만달러였다. 센터 측은 이전 경영진의 재정 부실을 물려받은 결과라며, 오히려 트럼프 이름이 새로운 기부를 끌어왔다고 반박한다. 이름 변경 하나가 재정 악화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사회가 이름을 붙일 수 있다고 해서 관객에게 그 이름의 값을 정해줄 수는 없다. 법원은 법적 권한을 판단하고, 관객은 표를 사고, 후원자는 지갑을 연다. 정치인의 이름값은 이런 각기 다른 판단이 겹치면서 만들어진다.
'노무현 평전' 역시 '공식'이라는 두 글자가 역사적 평가의 마침표를 뜻하지는 않는다. 20여 년 가까이 곁에 있었던 참모가 썼고 노무현재단이 기획한 책이다. 윤태영도 자신의 판단보다 노무현의 말과 기록을 최대한 원형대로 남기려 했다고 설명했다. 노무현을 원칙을 지킨 정치인으로 기억하는 사람도 있고, 그의 결정에 실망하거나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평전은 그 논쟁을 끝내는 최종판이라기보다 다시 읽을 두꺼운 한 판본에 가깝다.
케네디는 자신의 이름을 건물에 붙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붙였다. 트럼프의 이름은 이사회가 붙였지만 법원이 떼게 했다. 노무현의 이름은 이제 책 안에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정치인은 자신의 이름을 크게 쓰게 할 수는 있다. 책을 내고 기념관을 만들고 건물에 새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사람들이 어떻게 읽을지까지 결정할 권력은 없다. 노무현이 남겼다는 말이 그래서 오래 남는다.
"본 대로, 들은 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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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이름값은 결국 그 말 다음부터 매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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