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독립출판인 '지적 자본' 출동
AI 시대 대체불가 문화공간으로 떠올라
올가을, 독서의 계절답게 전국에서 일일이 다 열거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북페어'가 열리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서울국제도서전'의 성공과 함께, 다양한 지역들에서도 북페어가 시도되고 있다. 군산 북페어에는 국내외 200개 이상의 팀이 참여했고 전국에선 사람들이 몰려왔다. 공주에서도 수십 개의 출판사와 독립 서점 부스가 참여했다. 나는 이번에 익산청년시청에서 열린 '익산읽페어'에 참여해서 작가들과 대담을 나누기도 했다. 10월에는 대전 유성독서대전에 강연차 참여할 예정이다.
지역의 여러 축제나 행사들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혈세를 성과 없이 쓴다는 비판이 많지만, 북페어에는 어째서인지 실패가 없어 보인다. 어느 북페어를 가도, 부스마다 알찬 콘텐츠들이 가득하고 강연회나 북토크 등은 값진 이야기들로 채워진다. 나는 그 이유가, 북페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수많은 '지적 자본'을 가진 참여자들이 모인 협의체이기 때문이라고 본다. 상명하달식 억지로 만들어낸 행사가 아니라 참여하는 모든 이들이 저마다 취향과 관점을 가지고 모든 '구석구석'을 채우니, 구색 맞추기식 가짜 문화 행사가 될 수 없다.
일본에서 한때 전국 1400여개까지 매장을 운영했던 츠타야서점(CCC)의 최고경영자(CEO) 마스다 무네아키는 '지적 자본론(민음사)'에서 책을 단순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제안"으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모든 책은 하나하나가 독자들에게 각각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가치의 보물창고'다. 따라서 그는 책을 큐레이션 하는 '접객담당자'도 "아무나 할 수 없다"고 못 박는다. "그들 각자야말로 지적 자본을 보유한 자본가"이기 때문이다.
북페어에 가면, 바로 그런 지적 자본을 보유한 자본가들이 가득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부스마다 자기가 내놓은 책들의 모든 내용을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지적인 접객담당자들'이 가득하다. 지역에서 오랫동안 동네를 지켜온 독립서점들, 자신만의 뜻과 색깔을 가지고 출판을 이어온 출판사들, 그 밖의 책과 지역을 사랑하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특별한 '지적 자본가들'이다. 그냥 돈 받고 행사를 수행하는 용역들이나 어쩔 수 없이 동원된 직원들이 아니라, 한 명 한 명이 고유한 '세계'인 사람들이 모여 있기에 북페어는 필연적으로 풍요롭다.
요즘 나는 전국의 각 지역으로 강의를 다니면서 시간이 나면 꼭 그 지역의 동네 책방들을 찾아본다. 그러면 책방마다의 각기 다른 개성과 큐레이션에 감탄하곤 한다. 그 지역에 특별한 문화시설이 없더라도, 책방 하나로 동네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 보이기도 한다. 동네 책방은 책이라는 수많은 세계를 품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우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총출동한 '북페어'니만큼 어느 동네에서 이루어지든, 실패할 리가 없다고 믿는다.
출판계에서는 늘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말이 들린다. 요즘에는 인공지능(AI)으로 양산한 저품질 콘텐츠, 일명 '슬롭(AI slop)'들이 출판계마저 뒤덮어서 양서를 골라내기가 힘들다는 한탄도 더해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지적 자본가들이 좋은 책들을 꿋꿋이 만들고 큐레이션하는 북페어만큼은, 양질의 콘텐츠를 만날 수 있는 소중한 자리가 아닐까 싶다. 북페어는 AI 시대에 여전히 인간의 지적 감수성을 경험할 수 있는 드물고도 값진 자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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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우 문화평론가·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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