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별 신용평가 등급으로 조기경보 강화
PEF 등 민간자본 통한 구조조정 활성화
민간자본 유입 위한 세제혜택과 규제완화 필요

편집자주기업의 부실에는 징후가 있다. 매출과 이익이 줄고 차입금이 늘어나는 신호가 수년간 이어지지만, 상당수 기업은 구조조정에 따른 낙인을 우려해 이를 외면한 채 빚으로 버티다 결국 무너지고 만다. 반면 선제적으로 칼을 꺼내든 기업들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도 한다. 아시아경제는 3회에 걸쳐 한국 기업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진단하고, 기업이 부실에 빠지기 전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구조조정 생태계 구축 방안과 정부, 금융권, 민간자본의 역할을 모색한다.

① "죽기 직전까지 돈 빌린다"…구조조정 골든타임 놓치는 기업들
①[인터뷰]"현금 떨어진 뒤엔 늦다…구조조정, 실패 아닌 경영수단"
② "돈 더 빌려준다고 살아나나"…구조조정 핵심은 '기업 경쟁력'
②[인터뷰]"가장 중요한 건 원인분석, 다음은 선택과 집중"
③ 정부가 판 깔아라…기업·금융이 움직이는 '선제적 구조조정' 생태계

"조금이라도 덜 아플 때 병원에 가는 게 좋잖아요. 산업별 평가 구조를 디테일하게 짜고, 정부부터 선제적으로 판을 깔아줘야 합니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위해서는 기업·금융기관·민간자본이 움직일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기업 부실 징후를 더 빨리 포착할 수 있도록 신용평가체계를 산업별로 세분화하는 것은 물론, 민간 자본의 역할이 확대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돼야 한다. 선제적 사업재편에 동참하는 금융기관 등에 대손충당금 부담을 완화하는 등 실질적 인센티브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확인된다.

23일 아시아경제가 인터뷰한 기업 구조조정 및 자본시장 전문가들은 기업·금융기관·민간자본이 사전에 스스로 움직일 수 있도록 정부가 제도와 자금 기반을 깔아주는 구조가 선제적 구조조정 생태계 조성의 출발점이라고 봤다. 현재 한국의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 중심의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개선)과 법원 중심의 회생절차로 주로 진행되는데, 두 방식은 기업 부실이 표면화된 단계에서 이뤄지는 사후적 방식이라는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AI)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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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기경보 강화하고 민간자본 유입 늘려야"

먼저 부실기업을 선제적으로 솎아내기 위해 한층 세분화된 신용위험평가 등급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 산업에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평가 등급 체계가 아닌 산업별 특성을 고려해 각기 다른 기준으로 평가하는 방식으로 조기 경보 시스템을 강화하자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구정한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은 자발적으로 구조조정을 하지 않고 부도가 올 때까지 버티기 때문에 정부와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금융기관이 산업별 기준을 마련해 위험 징후를 빨리 포착하고 정부는 이를 통해 관련 지원 프로그램을 매칭시켜줘야 한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을 통한 구조조정 활성화 역시 주요 과제로 꼽혔다. 사모펀드(PEF) 등 민간자본을 통한 구조조정 방식은 부실 징후가 보이는 초기 단계에 개입해 자금 조달이나 사업부 매각 등으로 위기를 예방할 수 있다. 임정주 알바레즈앤드마살(A&M) 한국 구조조정 부문 대표는 "부실기업이 이미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된 뒤 자본을 찾는 게 아니라 정상화 가능성이 남았을 때 전문 어드바이저와 민간자본이 함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그래야 기업에 더 많은 선택지가 생기고 기존 채권자에게도 회수 기회가 생긴다"고 강조했다.


민간 자본시장 활성화와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

최근 한국에선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의 구조조정에 난항을 겪으면서 민간 구조조정 시장이 더 위축되는 분위기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생태계 조성의 마중물 역할을 할 필요성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중심의 기업 구조조정펀드 확대 방안이 거론된다. 빈기범 명지대 경상·통계학부 경제학전공 교수는 "대기업은 사모펀드 운용사(PE)가 관심을 가지지만 중소·중견기업은 그렇지 않으니 중소·중견기업 쪽에 정부 자금을 더 매칭해줘야 한다"며 "현재까지 캠코에서 관련 펀드를 6호까지 조성했는데 늘어난 세수를 바탕으로 지원 규모를 늘릴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기업개선 2.0]③ 정부가 판 깔아라…기업·금융이 움직이는 '선제적 구조조정' 생태계 원본보기 아이콘

인공지능(AI), 생산적 금융과 연계해 중소·중견기업들의 체질 개선을 돕는 펀드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나왔다. 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전 더불어민주당 의원)는 "전통 제조업과 중소기업은 업종 사이클에 따라 갑작스레 위기에 내몰려 선제적 지원이 제때 이뤄지지 못할 때가 많다"며 "AI를 통해 생산성 혁신과 체질 개선이 이뤄지도록 지원하는 'AI 전환펀드'를 결성해 정책금융이 마중물 역할을 하고 은행의 리스크 평가를 기반으로 생산적 금융을 공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간자본 유입을 위한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빈 교수는 "벤처캐피털(VC) 펀드 투자 시 3000만원까지 100% 소득공제 혜택이 주어지듯, 기업 구조조정펀드에도 같은 혜택을 부여하면 자금이 몰리면서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명은진 룩센트 파트너는 "제도적인 측면에서 기업이 쓸 수 있는 수단이 다소 경직돼 있다"며 "인력이나 사업 조정 과정에서 무조건 규제를 풀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기준이 지나치게 경직되지 않도록 유연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금융기관 유인책과 회생 안전망 구축

선제적 사업재편에 나서는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실질적인 유인책 마련도 시급하다. 박래수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채권은행이 선제적 자금 공급에 나설 수 있도록 신규 자금 지원에 대한 대손충당금 적립 부담을 완화해주고 우선변제권을 보장하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조조정 전문성과 사후관리 강화를 위해 외부 전문가와 컨설팅사의 역할도 재정비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명 파트너는 "구조조정은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실제 실행 단계에서 좌초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회생절차에서 최고구조조정책임자(CRO)의 역할과 관련해 "인력의 전문성과 역할 범위, 선임·평가 방식을 손봐야 한다"고 했다.


[기업개선 2.0]③ 정부가 판 깔아라…기업·금융이 움직이는 '선제적 구조조정' 생태계 원본보기 아이콘

이 밖에 개별 기업을 넘어선 구조적 산업 위기의 경우, 정부가 큰 틀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업이 자율적으로 개편하는 방식이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지난해 석유화학업계 사례처럼 정부가 나프타분해시설(NCC) 감축 목표 등 산업별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금융·세제 지원책을 마련하되, 사업재편 계획은 기업이 자율적으로 세우고 실행하게끔 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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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조기경보 체계 구축부터 맞춤형 구조조정 제도, 금융 및 자금 공급, 전문 컨설팅, 민간자본 유입, 실패 시 신속한 회생으로 연결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 생태계 구축의 핵심으로 평가된다. 박 교수는 "신뢰할 수 있는 정보공유 네트워크를 구축해 신규 자금이 시장에 원활하게 유입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미국의 소기업회생법(SBRA) 사례처럼 비용과 절차를 간소화해 재빨리 회생으로 넘어가는 맞춤형 안전망(Multi-door)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리즈 끝-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김대현 기자 kd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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