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영혼
대박 한 번보다 덜 어리석은 선택을 오래 반복하는 편이 부에 더 가깝다. 행동금융 전문가 대니얼 크로스비는 시장을 맞히는 능력이나 종목 선별의 재능보다, 큰 실수를 피하고 저축과 투자를 지속하며 건강·관계·시간을 지키는 일이 장기적인 부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50개의 짧은 장에는 '비교는 기쁨을 훔친다', '예산을 보면 가치를 알 수 있다',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는다', '시간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이다', '최악의 경우를 없애라' 같은 문장이 이어진다. 투자책의 외형을 하고 있지만, 돈을 얼마나 모았는가보다 돈이 삶에서 무엇을 가능하게 해야 하는가를 계속 되묻는 쪽에 가깝다.
제목의 '영혼'도 허공의 수사가 아니다. 크로스비는 돈이 긍정적 감정과 관계, 의미를 살 수 있는 도구라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숫자가 목적이 되는 순간 그 도구가 삶을 잠식한다고 본다. 시장이 출렁일 때 현금으로 숨고 싶어지는 공포, 주가가 오른 뒤에야 뛰어드는 조바심처럼 부를 무너뜨리는 것은 정보 부족보다 행동의 오류인 경우가 많다. 마지막 장들이 '돈의 본질은 인간이다', '우리가 진짜 원하는 건 부가 아니라 자유다', '아무도 혼자 부자가 되지 않는다'로 향하는 것도 그래서다. 재테크의 기술을 기대하면 다소 느슨할 수 있지만, 부를 잔고가 아니라 시간과 선택권의 문제로 다시 정의한다는 점에서는 꽤 오래 남는다. (대니얼 크로스비 지음ㅣ고영훈 옮김ㅣ알레)
클릭 히어
마케팅 업계에는 새 도구가 나올 때마다 새 시대가 열린다는 말이 따라붙는다. 알렉스 슐츠는 그 호들갑을 걷어내고 아주 오래된 문장 하나를 다시 꺼낸다. 마케팅은 결국 팔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 메타 최초의 최고데이터책임자이자 전 CMO인 그는 이베이와 페이스북에서 20여 년간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북극성' 지표에서 시작해 퍼널, 전환, 타기팅, 채널, 크리에이티브, 측정, 팀 구축, 검색·소셜, 마지막 AI까지 디지털 마케팅의 전 과정을 펼친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메신저가 각각 10억 명 이상의 사용자를 확보하는 과정에 관여했고 메타 리브랜딩을 주도한 이력 때문에, 교과서의 원칙이 실제 성장 조직의 내부 언어와 맞물리는 순간들이 특히 흥미롭다.
의외로 가장 자주 돌아오는 단어는 '기본'이다. 슐츠가 메타에서 성과를 냈던 제안 가운데 하나도 동영상 광고를 이용자가 휴대전화를 드는 방향에 맞추고, 주변 콘텐츠와 어울리는 음악을 넣으라는 식의 소박한 원칙이었다. 그는 화려한 채널 전략보다 측정 가능한 전환, 증분 효과, 반복 실험을 중시하고, 기업이 기본적인 베스트 프랙티스조차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다고 인정한다. 그래서 이 책은 틱톡이나 AI의 최신 기능을 좇는 매뉴얼이라기보다, 채널이 바뀌어도 무엇을 측정하고 무엇을 버릴지 결정하는 사고법에 가깝다. 다소 미국 빅테크의 성장 문법에 기울어 있다는 한계는 있지만, '클릭' 자체보다 그 클릭이 정말 매출과 성장으로 이어졌는지를 끝까지 묻는 태도는 실무자에게 꽤 유효하다. (알렉스 슐츠 지음ㅣ김태훈 옮김ㅣ최창석 감수ㅣ알에이치코리아)
미고객의 이해
브랜드 회의실에는 늘 고객이 앉아 있다. 충성 고객의 구매 빈도, 헤비 유저의 만족도, 이탈 고객의 불만은 열심히 분석하면서도 "관심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애초에 분석 대상에서 지워진다. 세리자와 렌은 바로 그 빈 의자를 '미고객(未顧客·Uncustomer)'이라 부른다. 우리 제품을 사지 않았고, 써볼 생각조차 없는 논유저와 라이트 유저가 사실 시장의 대부분일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치즈케이크라는 친숙한 사례로 타깃·베네핏·포지셔닝을 재해석한 뒤, 더블 제퍼디 법칙, 카테고리 진입점(CEP), 내러티브 접근법, 대안 모델을 통해 '왜 안 사는가'가 아니라 '어떤 맥락에서는 살 이유가 생기는가'를 파고든다.
주방용 세제는 이용 장면을 넓히고, 구직 사이트는 메시지를 바꿔 전환율을 높이며, 소이푸드는 새로운 행동 습관을 만들고, 스마트 가전은 기존 습관을 흔든다. 고성능 청소기 사례에서는 구매자와 실제 이용자의 '합리'가 서로 다르다는 점까지 짚는다. 충성도를 높이면 자연스럽게 성장한다는 익숙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부록에서는 NBD-디리클레 모델과 더블 제퍼디의 수학적 구조까지 내려간다는 점도 이 책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결국 미고객을 잡는다는 것은 관심 없는 사람을 억지로 설득하는 일이 아니다. 그 사람이 지금까지 브랜드를 필요로 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해하고, 제품이 들어갈 수 있는 삶의 장면을 새로 만드는 일이다. 마케팅이 고객을 깊이 사랑하는 기술만큼이나, 아직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을 정확히 보는 기술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세리자와 렌 지음ㅣ신정원 옮김ㅣ박세용 감수ㅣ책만)
사고의 품격
사람은 생각을 '한다'고 믿지만, 투리 문테는 먼저 생각이 우리에게 어떻게 '도착하는가'를 묻는다. 싱가포르의 엄격한 사회 규범에서 고온다습한 기후와 병원체의 흔적을 찾고, 화강암과 석회암의 지질 차이에서 종교와 교육의 형성을 살피며, 쌀농사와 밀농사가 동서양의 사고방식에 남긴 차이를 추적한다. 몸도 예외가 아니다. 위험 신호에 민감한 정도, 불쾌한 이미지에 시선을 다시 돌리는 습관, 음식 취향과 정치 성향 사이의 상관관계까지 끌어오며 '내 생각'이라 부르던 것의 배후에 기후·지리·문화·유전자·감정·집단이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었다고 말한다. 428쪽의 책이 기후학에서 진화유전학, 문화인류학까지 넓게 건너가는 이유다.
이런 책은 인과를 지나치게 매끈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더운 지역과 권위주의, 신체 반응과 정치 성향 사이의 상관관계를 개인의 운명처럼 읽어서는 곤란하다. 문테도 후반부에서 그 결정론을 비켜간다. 침팬지와 보노보, 좌파와 우파, 집단 지성과 사후 합리화를 거치며 도착하는 곳은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서로 다른 사고방식이 어떻게 함께 더 나은 판단을 만들 수 있는가'다. 혼자 옳기보다 집단과 함께 틀리는 인간의 본능을 인정한 뒤, 논쟁을 승패가 아니라 공동 사고의 기술로 되돌려놓는다. 제목의 '품격'은 점잖게 말하는 태도가 아니라, 내 확신 역시 우연과 환경의 산물일 수 있음을 견디는 능력에 가깝다. (투리 문테 지음ㅣ이영래 옮김ㅣ21세기북스)
우울 덮기
가장 힘든 사람이 반드시 가장 힘들어 보이는 것은 아니다.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가 30년 넘는 임상 경험 끝에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Perfectly Hidden Depression·PHD)'이라는 이름을 붙인 사람들은 오히려 책임감이 강하고, 성취도가 높고, 다른 사람을 잘 챙긴다. 문제는 그 능숙함이 갑옷이 됐을 때다. 책 속 브리태니는 상처를 털어놓다가도 눈물을 곧바로 거두고 화제를 돌린다. 또 다른 이들은 일을 끝내지 못하면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붙잡혀 휴식을 죄책감으로 받아들인다. 저자가 겨누는 것은 우울한 표정이 아니라, 슬픔과 분노와 수치심을 들키지 않는 데 너무 익숙해진 삶이다.
중요한 점은 '완벽하게 숨겨진 우울'이 표준화된 임상 진단명이 아니라 러더퍼드가 제안한 개념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책의 가치는 새로운 병명을 하나 더 만드는 데 있지 않다. '의식-몰입-직면-연결-변화'의 다섯 단계를 따라가며, 스스로 만든 규칙을 알아차리고 오래 눌러둔 정서적 고통과 다시 접촉하게 하는 데 있다. 칭찬을 받아도 충분하지 않고, 도움을 청하면 약해지는 것 같고, 존재 자체보다 성취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완벽주의의 이면을 꽤 집요하게 보여준다. 송섬별의 특별 해제가 덧붙은 한국어판에서 제목을 '우울 덮기'로 옮긴 선택도 적확하다. 우울을 없애는 기술보다, 잘 덮여 있어서 보이지 않았던 마음을 다시 펼쳐보는 책이다. (마거릿 로빈슨 러더퍼드 지음ㅣ송섬별 옮김ㅣ오리지널스)
인간 판박이
5월의 맑은 정오, 재봉틀 외판원처럼 보이는 남자가 찾아온다. 라디오 프로그램 '안녕하세요 화성인'의 작가인 '나'는 마침 화성 로켓 발사 이후 프로그램이 허황된 방송이라는 비난에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그 남자는 자신이 열성 청취자라고 말한 뒤 조심스럽게 정체를 밝힌다. 화성인이라고. 곧 그의 아내라는 여자가 전화를 걸어 남편은 정신분열증 환자이며 폭력성도 있으니 함부로 자극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제 독자도 '나'와 같은 함정에 빠진다. 그는 인간인가, 인간을 너무 닮은 화성인인가, 아니면 화성인 흉내를 내는 인간인가. 1967년 처음 나온 아베 고보의 SF는 우주보다 훨씬 가까운 곳, 현실이라고 믿는 감각 자체를 흔든다.
아베 고보는 이 수수께끼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남자는 화성의 토지를 중개한다고 하고, 자신을 모델로 소설을 쓰라고 권하며, 계속 논리의 바닥을 한 칸씩 빼낸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나'가 정상이고 상대가 망상에 빠졌다는 최초의 구도부터 의심스러워진다. '모래의 여자'와 '타인의 얼굴'에서 집과 얼굴, 신분을 흔들었던 작가가 여기서는 '인간'이라는 범주 자체를 실험대에 올린 셈이다. 1960년대 우주개발 시대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사실과 허구가 구분되지 않고 상대의 말이 현실을 잠식하는 지금 읽으면 오히려 더 현대적이다. 낯선 존재가 인간을 닮아서 무서운 것이 아니다. 끝내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무엇으로 증명해야 할지 알 수 없어진다는 것이 이 소설의 진짜 공포다. (아베 고보 지음ㅣ곽형덕 옮김ㅣ현대문학)
쓰는 유령
시를 그만두겠다는 말은 대개 시와 가장 오래 붙어 있던 사람이 한다. 제43회 김수영문학상을 받은 윤지양은 첫 에세이에서 시를 잘 쓰는 방법보다, 왜 쓰지 않으려 해도 결국 다시 쓰게 되는지를 돌아본다. 41편의 글과 숨어 있는 3편의 비밀 원고는 '시-사이-시 아닌' 세 장에 놓였다. 환상·꿈·불안·기억에서 필명·질투·차별을 거쳐 개발자·고양이·운전·수영까지 간다. 특히 시인과 개발자라는 두 삶이 흥미롭다. 좋은 코드를 간결하고 이해하기 쉬운 문서에 견주는 순간, 시적인 것과 시적이지 않은 것의 경계가 슬쩍 무너진다. 공백기 역시 비어 있던 시간이 아니었다. 시를 안 쓴 날에도 보고, 걷고, 아프고, 사랑한 사람이 있었으므로.
그래서 제목의 '유령'은 창작욕을 낭만적으로 포장하는 존재와는 조금 다르다. 어린 시절의 성희롱 전화, 온라인 공간의 여성 혐오, 등단 뒤 받은 기괴한 협업 제안, 이방인과 여성으로 겪은 소외까지 살아온 시간이 쓰기의 몸을 만든다. "모든 시는 추모"라는 생각이나 예술적 개입과 폭력의 닮은 점을 살피는 대목에서는, 시가 아름다운 언어 이전에 세계를 오래 들여다보는 태도라는 윤지양의 문학관도 선명해진다. 시보다 세계가 궁금해서 그 그림자에 가까이 가려 쓴다는 사람. 그렇다면 유령은 시가 아니라, 한번 본 것을 못 본 척하지 못하게 만드는 마음인지도 모른다. (윤지양 지음ㅣ라우더북스)
절대 쫄지 마
스티븐 킹의 악당들은 자신을 악당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 가장 무섭다. 66번째 장편 '절대 쫄지 마'에는 그런 확신에 중독된 범죄자가 둘 등장한다. 하나는 오판으로 무고한 사람이 죽었다며 '죄 없는 사람의 죽음은 죄 없는 사람의 죽음으로 갚아야 한다'는 기괴한 논리를 세운 연쇄살인범 트리그다. 그는 무죄 추정의 정신을 담은 블랙스톤 원칙을 뒤집어 죄 없는 13명과 책임 있는 1명을 죽이겠다고 예고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1200만 팔로워를 지닌 여성 인권 운동가 케이트 매케이가 출간 투어 도중 임신중지권에 반대하는 스토커의 위협을 받는다. 두 개의 광기가 서로 다른 선로에서 달리고, 홀리 기브니가 그 사이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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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자연적 존재 없이도 긴 서사를 밀어붙이는 힘은 '신념'이 폭력의 면허가 되는 과정을 킹이 너무 잘 안다는 데 있다. '미스터 메르세데스'의 단역으로 시작해 '아웃사이더'와 '홀리'를 지나온 홀리 역시 영웅답게 무모한 사람이 아니다. 불안하고 조심스럽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물러서지 않는다. 2021년 레이디 가가의 반려견 납치 사건에서 처음 착상했다가 집필 도중 전혀 다른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는 탄생 과정도 재미있다. 결국 제목의 '절대 쫄지 마'는 두려움을 없애라는 주문이 아니다. 두려움을 독점해 타인을 굴복시키려는 사람들 앞에서, 겁을 먹고도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에 관한 말에 가깝다. 킹의 공포가 여전히 생생한 까닭도 괴물이 아니라 인간의 확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스티븐 킹 지음ㅣ이은선 옮김ㅣ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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