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시연회
음성 명령 듣고 도구 인식해 전달·회수
2029년 내시경 보조부터 첫 임상
"클리퍼(혈관을 묶는 수술 기구) 주세요."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진행된 '휴머노이드형 수술보조로봇 공개시연회'에서 집도의가 지시하자 왼쪽에 선 로봇이 움직였다. 로봇은 수술도구 가운데 지시받은 도구를 인식해 집도의에게 건넸다. 사용이 끝난 뒤 집도의가 "툴(도구) 가져가"라고 하자 집도의의 팔 위치를 찾아 도구를 받아갔다.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 '휴머노이드형 수술보조로봇 공개 시연'에서 수술실 간호사 역할의 휴머노이드(왼쪽)가 트레이 위 복강경 수술도구를 집어 집도의에게 건네려 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맞은편 로봇은 한 손에 내시경을, 다른 손에 견인기를 쥐고 있었다. "따라가"라는 명령이 떨어지자 모니터 속 내시경 화면이 수술도구를 따라 움직였다. 수술대 위에는 염소 간이 놓였다. 의사 1명과 휴머노이드 2대는 담낭관을 클립으로 묶고 잘라 담낭을 떼어냈다.
삼성서울병원은 이날 개발 중인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을 처음 공개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이 지원하는 '한국형 ARPA-H' 과제로, 2029년 12월까지 54개월간 정부 연구개발비 138억3500만원이 투입된다. 컨소시엄 '오케스트라(ORchestra)'에서 레인보우로보틱스가 로봇 본체를, 에이딘로보틱스가 그리퍼와 로봇손을 만든다. 성균관대·서울대는 인공지능(AI)을, 국립암센터·전북대병원 등은 데이터 수집과 실증을 맡았다.
원격 집도부터 '솔로 서저리'까지
시연은 세 단계로 진행됐다. 첫 번째는 휴머노이드 1대가 원격조작으로 집도하고 2대가 보조하는 방식이었다. 의사가 조작 장치를 움직이면 원격지의 로봇이 양팔로 동작을 따라 했다.
두 번째 시연에서는 원격 집도 로봇이 빠지고 사람 집도의가 그 자리에 섰다. 의사 1명이 휴머노이드 2대의 보조만 받아 수술하는 '솔로 서저리(Solo surgery)'다. 한 로봇은 수술실 간호사 역할을 맡았다. 음성 명령을 알아듣고 도구를 건넨 뒤 회수·정리한다. 또 다른 로봇은 보조의사 역할을 맡아 내시경 시야 유지와 조직 견인을 동시에 수행했다. 병원에 따르면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2대가 사람 의사와 협업해 수술하는 장면이 공개된 세계 첫 사례다.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 '휴머노이드형 수술보조로봇 공개 시연'에서 집도의가 복강경 수술 모사 장치에 수술도구를 넣어 수술하고 있다. 보조의사 역할 휴머노이드는 복강경 내시경을 잡고 시야를 유지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연구팀에 따르면 실험실 평가에서 로봇은 수술도구 5종 집기 성공률은 100%, 전달 성공률은 98.7%를 기록했다. 음성 명령 후 2초 안에 동작을 시작한다. 음성 명령을 받은 뒤 동작을 시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2초 이내였다. 수술보조로봇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정용기 삼성서울병원 이비인후과 교수는 "도구를 한 번 건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요청?전달?사용?회수?정리'로 이어지는 도구 순환을 완결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세 번째 시연에서는 에이딘로보틱스의 다관절 로봇손이 공개됐다. 시연자가 장갑형 조작 장치를 끼고 손을 움직이자 로봇손이 개복수술용 견인기를 잡아 당겼다. 마디마다 센서가 달려 기구를 쥐는 힘이 데이터로 쌓인다. 연구진은 과제 종료 시점에 맞춰 이 손을 수술실에 적용할 계획이다.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 '휴머노이드형 수술보조로봇 공개 시연'에서 에이딘로보틱스 연구원이 양손에 장갑형 원격조작 장치를 끼고 휴머노이드의 다관절 로봇손을 조작하고 있다. 박정연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수술실 인력난 대안…"경제성도 유망"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개발의 배경에는 수술실 인력난이 있다. 지방이나 중소병원은 숙련된 수술 보조 인력을 구하기 어렵고, 야간·응급 수술 때는 공백이 더 커진다. 연구팀은 도구 전달, 내시경 잡기 같은 단순·반복 업무를 로봇이 맡으면 의료진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휴머노이드가 인건비 부담을 줄이면서도 인력 공백을 메우는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정 교수는 "수술실 간호사 한 자리를 24시간 채우려면 5명이 필요하다. 연봉을 5000만원으로만 잡아도 연 2억5000만원인데, 로봇 도입 비용이 그보다 비싸지는 않을 것"이라며 "간호사 한 명 역할을 온전히 하는 로봇이라면 1년만 운영해도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말했다.
16일 서울 강남구 삼성생명 일원역빌딩에서 열린 삼성서울병원 '휴머노이드형 수술보조로봇 공개 시연'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3대가 수술 모사 장치를 둘러싸고 원격 집도 시연을 하고 있다. 수술 가운을 입은 로봇들은 등에 붙인 표시에 따라 수술간호사(왼쪽), 내시경·견인 보조(가운데), 원격 수술 집도(오른쪽)를 각각 맡았다. 박정연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속도·출혈 환경·제도 마련 과제
상용화까지는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이날 로봇의 도구 전달·회수 속도는 사람보다 느렸다. 정 교수는 "아직 사람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과제가 끝날 때는 충분히 사람처럼 빠른 진료보조로봇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출혈 등이 발생하는 실제 수술 환경에서 AI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도 과제다. 조직 긴장도를 느끼며 당기는 정밀 견인, 절개·봉합 같은 고난도 술기도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 휴머노이드가 수술실에 들어왔을 때 적용할 법적·제도적 기준도 아직 없다.
연구팀은 2029년 첫 임상시험을 목표로 하고 있다. 위험도가 낮은 내시경 유지부터 복강경 시야 맞춤, 조직 견인 순으로 적용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대상 수술은 담낭절제술과 뇌하수체종양절제술이며, 4개 병원에서 임상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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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교수는 "수술보조로봇에게 어떤 역할을 주느냐에 따라 도입 시점이 달라질 것"이라며 "내시경을 잡는 역할 정도는 과제가 끝날 때쯤 충분히 임상에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서울병원 휴머노이드 수술보조로봇 개발진. 오른쪽부터 정용기 이비인후과 교수, 배주영 성형외과 교수, 정규환 지능형의료로봇연구센터 교수, 오남기 이식외과 교수. 삼성서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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