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DC 도입 따른 사생활침해 우려
2계층 화폐시스템과 '토큰화' 결합
정부 감시·통제 구조적으로 불가능

이종렬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이종렬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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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로 물건을 구매하든 모바일 뱅킹으로 자금을 이체하든, 전자적 방식으로 금융거래를 이용하면 일정한 거래 기록이 남게 된다. 그래서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관련 논의가 나올 때마다 정부나 중앙은행이 개인의 거래를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곤 한다. 이러한 대중의 불안감은 직관적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실제 구조를 살펴보면 판단은 달라진다.


먼저 우리가 거래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수단이 무엇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 지난해 4~6월 1단계 실거래 테스트를 마치고 올해 2단계를 추진 중인 프로젝트 한강에서 이용자가 실제 사용하는 것은 시중은행이 고객 예금을 토큰화한 예금토큰이다. 한국은행이 발행하는 기관용 디지털화폐는 금융기관 간 거래에만 쓰이며 일반 국민은 보유할 수 없다. 중앙은행 지급준비금과 상업은행 예금이라는 기존 2계층 화폐 시스템(two-tier monetary system) 위에 토큰화 기술을 결합한 구조다.

다음으로 거래가 기록되는 원장이 어떻게 설계돼 있는지 살펴보자. 원장 역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비허가형이 아니라, 한국은행과 참가은행만 참여하는 허가형 분산원장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원장에 기록되는 것은 난수 형태의 전자지갑 주소와 금액, 거래 시각 등 결제 성립에 필요한 최소 정보다. 그 주소가 누구의 것인지 식별하는 정보는 전자지갑을 발급한 거래 은행만이 보관하며 관련 법령에 따라 관리된다. 정부나 한국은행이 참가자 개인별 예금토큰 보유 현황을 파악하거나 통제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결국 이용자가 직면하는 프라이버시 환경은 현행과 동일하다. 지금 은행 앱으로 계좌를 이체할 때와 비교해도 개인정보를 보관하고 관리하는 주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국민들이 기존 금융기관을 신뢰하고 거래하듯, 예금토큰 역시 거래 은행에 대한 신뢰 바탕 위에서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프로젝트 한강은 이 기존 구조를 분산원장으로 옮긴 것이며, 기존에 없던 정보 접근 경로를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민간 스테이블코인이 사생활 보호에 더 유리하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비허가형 블록체인은 거래 내역이 영구 공개되므로, 신원이 단 한 번만 연동되면 과거 거래까지 모두 추적되는 치명적 한계가 있다. 더욱이 국경 없는 네트워크 특성상 법적 보호나 통제가 미치기 어려워 프라이버시 방어의 책임을 이용자 개인이 감당해야 한다. 반면 프로젝트 한강은 거래기록을 관리하는 주체가 명확하고 엄격한 법률의 적용을 받아, 개인정보를 제도적으로 확실하게 보호받을 수 있다.


물론 보완이 필요한 영역은 남아 있다. 분산원장은 기록의 삭제를 어렵게 만드는 기술인데, 개인정보 법령은 보존기간이 경과한 정보의 파기를 요구한다. 이에 은행이 별도로 관리하는 정보, 즉 원장 기록과 개인 신원을 연결하는 정보를 파기하는 방식으로 해당 법령의 조건을 충족하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영지식증명, 동형암호 등 프라이버시 강화기술(PETs) 연구도 지속 추진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현금은 어떻게 되는가. 한국은행은 디지털화폐 발행 여부와 무관하게 현금을 계속 발행·유통하겠다고 밝혀 왔고, 현금 사용 선택권 보장을 위한 조치도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화폐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주요국 중앙은행들도 동일한 입장이다. 즉, 현금은 그대로 남고, 새롭게 구축되는 디지털 인프라는 안전한 선택지를 하나 더할 뿐 현금을 대체하지 않는다. 기술의 진보가 사생활의 침해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그러나 사생활에 대한 우려가 기술의 진보를 가로막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막연한 불안에서 벗어나 제도와 기술이 맞물린 안전장치를 살펴볼 때, 대한민국 미래 지급결제 인프라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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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렬 자본시장연구원 초빙연구위원(전 한국은행 부총재보)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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