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개인'·'호명사회'·'경량문명' 잇는 '시대예보' 네 번째 키워드
"균질한 일은 AI에 맡기고 인간은 비균질해져야"…숙련·안목·책임 강조
"불필요한 고생 아닌, 의미 있는 일에 시간 쓰는 사람"이 AI 시대 경쟁력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광화문 필원. 신간 '시대예보: 수고인류의 시간'을 들고 기자들 앞에 선 송길영 작가는 인공지능(AI) 시대 인간의 경쟁력을 뜻밖에도 '수고'라는 오래된 단어에서 찾았다. 버튼 한 번, 이른바 '딸깍'으로 그럴듯한 문장과 이미지, 음악까지 만들어내는 시대. 기술이 인간의 일을 덜어낼수록 역설적으로 사람의 시간과 숙련이 들어간 결과물은 더 귀해진다는 얘기다.
그가 올해의 '시대예보'로 꺼낸 단어는 '수고인류'다. 무작정 더 오래 일하고 고생하는 사람을 뜻하지 않는다. 송 작가는 불필요한 고생은 기술에 넘기는 대신, 자신이 의미 있다고 판단한 일에는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고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전작들이 조직에서 독립한 개인인 '핵개인', 이름으로 불리는 '호명사회', 기술로 조직과 생산의 몸집이 작아지는 '경량문명'을 짚었다면 이번에는 그 변화 뒤에 남는 질문, '그래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로 들어간다.
송 작가는 산업화 이후의 노동자를 '사본인간'에 빗댔다. 공정을 잘게 나누고 매뉴얼을 익히면 누가 들어가도 비슷한 결과물을 낼 수 있었던 시대에는 개인의 이름보다 직무와 조직이 중요했다. AI는 이제 그 '사본'을 훨씬 빠르고 저렴하게 만들어낸다. 그러니 인간이 같은 자리에서 AI와 속도와 효율을 겨룰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가 제시한 반대편에는 '원본인간'이 있다. 오랜 경험에서 생긴 판단, 취향, 숙련처럼 쉽게 복제할 수 없는 것을 가진 사람이다.
간담회에서 송 작가는 이를 "균질한 것은 로봇이 하고, 인간은 더 많이 흐트러질수록 가치가 있다"고 압축했다. 대량생산 아이스크림과 손이 많이 가는 젤라토, 표준화된 음식과 파인다이닝을 비교하며 소비자가 결과물뿐 아니라 그 안에 축적된 시간과 솜씨에도 값을 지불한다고 설명했다. "수고하고, 숙련하고, 그만큼의 에너지와 열정을 쏟는 대상에게 더 큰 영예를 주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수고'는 고생의 미화와도 거리가 있다. AI가 대신할 수 있는 일을 굳이 사람이 붙들라는 주장이 아니다. 오히려 반복과 대행을 기술에 넘긴 뒤 확보한 시간을 무엇에 쓸 것인가에 방점이 찍힌다. 책은 '딸깍과 한 땀 한 땀', '사본인간과 원본인간', '수고조직', '조예와 안목' 등의 키워드를 통해 그 선택을 추적한다. 처음에는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결과물도 오랜 시간과 반복을 거치면 '그 사람만 만들 수 있는 것'이 된다는 논리다. 책 역시 AI 시대의 경쟁력을 속도가 아니라 축적에 둔다.
그렇다면 직장인은 어떻게 '원본'이 될 수 있을까. 송 작가는 거창한 창업이나 퇴사를 먼저 말하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그 분야에서 성취하기 위해 어떤 시간과 사회적 자원이 필요한지를 탐색하고 전문성을 깊게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했다. 조직의 이름 뒤에 숨기보다 자신이 판단하고 만든 결과에 자기 이름을 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행과 외주를 주지 않고 온전히 내가 하고, 나의 이름을 걸고 발행하고 이 결과가 증명된다면 온전히 영예가 자신에게 올 것"이라는 설명이다.
AI 시대의 불안에 대한 그의 답도 이 지점에서 나온다. 모든 영역에서 기계보다 잘하려 애쓰기보다, 자신에게 시간과 수고를 들여 복제하기 어려운 영역을 만드는 것. 송 작가는 "시간을 건너뛸 수 없다는 그 불편한 진실"이 오히려 수고인류의 강력한 무기가 된다고 했다. 빠른 생성과 무한 복제가 일상이 될수록, 시간을 들였다는 사실 자체가 희소성이 된다는 역설이다.
2023년 '핵개인의 시대'로 시작한 그의 '시대예보'는 '호명사회', '경량문명의 탄생'을 지나 이번 책에 닿았다. 이전 세 권이 기술과 조직의 변화를 예고했다면 네 번째 책은 그 변화 속에서 개인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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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작가는 이번 책을 "장기예보"라고 했다. 변화에 휩쓸리지 않을 비법을 제시하기보다, 매일 무엇에 시간을 쓰고 어떤 결과에 자신의 이름을 걸 것인지 생각해보라는 제안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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