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진 오티스예술디자인대 국제입학처 부처장 인터뷰
신간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 출간, "손보다 기준, 기술보다 선택"
AI로 완성도 높아진 포트폴리오…"이젠 결과보다 과정과 선택 봐"
그래픽디자이너 고용 전망은 흔들리고 AI 창작 직군은 급증

"기본기가 없으면 다 괜찮아 보입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의 인체 드로잉 수업 모습. 정유진 작가는 생성형 AI 시대일수록 결과물의 완성도뿐 아니라 기본기와 관찰력,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창작자의 판단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

미국 로스앤젤레스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의 인체 드로잉 수업 모습. 정유진 작가는 생성형 AI 시대일수록 결과물의 완성도뿐 아니라 기본기와 관찰력, 작업 과정에서 드러나는 창작자의 판단이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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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성형 인공지능(AI)이 내놓은 이미지가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그럴듯해진 것이 문제다. 색도 맞고, 구도도 안정적이고, 몇 분이면 수십 장이 나온다. 그렇다면 그중 하나를 고르는 일은 창작일까.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아는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정유진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 국제입학처 부처장은 AI 시대의 예술을 이야기하면서 자꾸 '만드는 능력'보다 '고르는 능력'으로 돌아갔다. 그는 매년 세계 각국 학생들의 포트폴리오를 검토한다. 최근 출간한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도 학생과 학부모에게 반복해서 받은 한 질문에서 시작됐다. "AI가 다 해주는 시대에 굳이 예술·디자인을 배워야 하나요."

정 부처장이 본 입시 현장의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한 패션디자인 지원자는 직접 그린 스케치를 AI 플랫폼에 넣어 3차원 이미지로 발전시키고, 사용한 도구와 프롬프트, 작업 과정까지 포트폴리오에 공개했다. 그는 이런 작업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아이디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만들어야 한다는 기준보다 AI가 제시한 수많은 가능성에서 무엇을 취하고, 버리고, 다시 손댔는가가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학교의 기준도 그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티스대학은 현재 구조화된 입학 포트폴리오에 최소 3점의 전통적 비디지털 매체 작업을 포함하도록 하고 있다. AI는 아이디어 탐색과 실험에 사용할 수 있지만 사용 과정은 밝히도록 한다. 학교의 AI 정책에는 이전 작업본과 프롬프트 기록을 남겨 자신의 기여를 입증해야 한다는 원칙도 들어 있다. 완성품이 너무 쉽게 매끈해지자 역설적으로 러프 스케치와 실패한 버전, 수정 흔적의 값이 올라간 셈이다.

"결국 보고 싶은 것은 '얼마나 잘 만들었는가'만이 아닙니다. 무엇을 궁금해했고, 수많은 가능성 중 무엇을 선택해 자기 작업으로 만들었는지를 봅니다."


여기까지는 AI 시대에도 인간 창작은 건재하다는 익숙한 낙관론처럼 들린다. 현실은 조금 거칠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미래 일자리 보고서 2025'에서 그래픽디자이너는 처음으로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종군 바로 바깥까지 내려왔다. 2030년까지 노동자들이 가진 기술의 39%가 바뀌거나 낡을 것으로 전망됐다. 기업의 40%는 AI 도입에 따라 인력을 조정할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동시에 창의적 사고를 핵심 역량으로 꼽은 기업은 57%였다. AI는 창작자를 없앤다는 한 문장으로도, 단지 연필 같은 도구라는 한 문장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를 쓴 정유진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 국제입학처 부처장. 그는 “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보다 AI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며 창작자의 기준과 안목, ‘자기만의 질문’을 강조했다. 부키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를 쓴 정유진 오티스예술디자인대학 국제입학처 부처장. 그는 “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보다 AI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중요하다”며 창작자의 기준과 안목, ‘자기만의 질문’을 강조했다. 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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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부처장도 이 대목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신입 디자이너가 맡아온 스톡 이미지 검색과 보정, 단순 렌더링, 텍스처 작업, 기본 편집 같은 일은 이미 AI로 이동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사실이고, 그 일을 하며 배우던 신입들의 진입로가 좁아지는 것도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가 책에서 "직업은 사라지지 않고 일의 구조가 바뀐다"고 쓴 뜻도 직업명을 지키자는 낙관론보다는 직업을 이루던 과업이 재배치되고 있다는 진단에 가깝다.


반대편에서는 새 직업들이 생긴다. 오토데스크가 올해 400만건이 넘는 글로벌 채용공고를 분석한 결과 디자인·제조·미디어 등 'Design & Make' 산업의 AI 관련 채용은 2년간 147% 증가했다. AI UX 디자이너는 1년 사이 145%, AI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는 123% 늘었다. AI를 '만드는 사람'만이 아니라 AI로 무엇을 할지 결정하는 사람의 수요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정 부처장은 그 변화를 "손보다 기준이, 기술보다 선택이 더 큰 무게를 갖는 시대"라고 표현했다. 레픽 아나돌을 한 사례로 들었다. 아나돌의 '언수퍼바이즈드(Unsupervised)'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품 가운데 200여년에 걸친 작품 데이터를 기계학습으로 해석해 끊임없이 새로운 화면을 만들어낸다. 작품은 2023년 MoMA 컬렉션에 정식 편입됐다. 아나돌의 스튜디오에는 예술가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술자와 과학자, 사운드 디자이너 등 서로 다른 전문 인력이 모인다. 작가의 역할은 혼자 모든 것을 손으로 완성하는 데서 전체를 지휘하고 마지막 선택에 책임지는 쪽으로 이동한다는 게 정 부처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그는 AI를 능숙하게 쓰는 학생과 좋은 창작자를 같은 말로 쓰지 않는다. "기본기가 있으면 결과를 보고 '여기는 좋은데, 여기는 아니네'라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자기 기준이 있으니까요. 기본기가 없으면 다 괜찮아 보입니다. 무엇을 골라야 하는지를 모르는 겁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AI에서 가장 무난한 답을 골라 쓰면 결과도 닮는다. 일러스트레이션 현장에서 쓰이는 말이라며 그는 "Technically correct but emotionally wrong", 기술적으로는 맞지만 감정적으로는 틀린 작업을 언급했다. 매끄러움과 창작은 같은 말이 아니다.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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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정 부처장은 그 차이를 '나만의 결'이라고 부른다. 나뭇결처럼 겉에 드러나지만 실제로는 안에서 보낸 시간이 만든 흔적이다. 어떤 기술을 썼느냐보다 무엇을 오래 궁금해했고, 무엇을 유난히 좋아했고, 무엇을 끝내 포기하지 않았는가가 쌓여 나온다고 썼다. 책의 중심도 AI 활용법에서 이 지점으로 조금씩 이동한다.


최근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런의 영화 '오디세이'를 그는 흥미로운 사례로 봤다. 놀런은 20여년 전부터 품어온 이미지를 영화에 옮겼고, 실제 목선을 바다에 띄웠다. 배우들은 노를 젓고 돛을 올리는 법을 배웠다. 놀런은 촬영을 "다큐멘터리처럼 했다"고 설명했다. 디지털로 더 편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대에 일부러 몸과 시간, 실제 바다를 택한 '굳이'의 선택. 정 부처장은 그런 비효율 속에서도 창작자의 결이 드러난다고 강조했다.


결국 책 제목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 정 부처장의 대답은 "괜찮다"보다 조금 까다롭다. AI를 배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아니고, AI만 잘 배우면 된다는 말도 아니다. 도구는 빨리 익히되 그 도구로 무엇을 할지는 오래 고민하라는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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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를 얼마나 잘 다루느냐보다 AI를 가지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더 중요합니다. 기술은 계속 바뀝니다. 결국 자기 안에서 계속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AI는 답을 만드는 데 점점 능숙해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창작자에게 남은 일은 오히려 반대편에 가까워 보인다. 무슨 답을 만들지 결정하기 전에, 어떤 질문을 자기 것으로 오래 품을지 정하는 일이다.


AI 시대에 예술을 해도 될까요? | 정유진 저 | 부키 | 288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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