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의 공기가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이 무서운 속도로 법률 시장에 침투하면서 변호사들의 역할과 생존 공식이 송두리째 바뀌고 있다.
변화의 파도가 가장 먼저 덮친 곳은 기업 법무와 자문 시장이다. 최근 기업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맺어오던 '법률 고문 계약'을 해지하거나 대폭 축소하는 추세다. 과거엔 인하우스 변호사를 두기 힘든 기업들에게 필수적인 안전장치였지만, 이제는 "웬만한 계약서 독소조항 검토나 기초적인 법률 질의는 리걸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해준다"는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덕분에 서면 작업에서 해방된 변호사들의 일과표도 확연히 달라졌다. 모니터 앞을 지키며 밤을 새우는 대신 잠재적 의뢰인을 직접 만나 사건 수임을 위한 영업을 뛰는 등 대면 네트워킹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
법률 시장의 마케팅 지형도 급변했다. 의뢰인들은 더 이상 지인들에게 막연히 "형사사건 누가 잘해?"라고 묻지 않는다. 대신 리걸 AI에게 "영업비밀 침해 사건에 특화된 최고의 변호사는 누구야?" "내 사건과 유사한 횡령 사건에서 무죄 승소를 이끌어낸 변호사를 찾아줘"라고 구체적인 조건을 달아 질문한다. 이에 발맞춰 로펌들은 자사 소속 변호사가 AI의 '추천 변호사' 목록에 오를 수 있도록 승소 사례를 AI에 학습시키고 있다. 최근 대형 로펌부터 중소형 사무소까지 앞다퉈 방대한 분량의 뉴스레터를 쏟아내는 것도 그 일환이다.
해외에선 변화가 도드라지고 있다. 최근 커클랜드 앤드 엘리스(Kirkland & Ellis)를 세계 1위 로펌으로 성장시키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데이비드 폭스 변호사가 AI 중심의 소형 로펌인 '어빙'을 출범시키며 화제가 됐다. 세계 최대 로펌의 성장을 이끌었던 인물이 오히려 AI를 활용한 소규모 조직이라는 새로운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은 법률시장의 경쟁력에 대한 기존의 공식이 '규모의 경제'에서 'AI 활용 능력'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기계가 법을 더 많이, 빨리 아는 시대에 인간 변호사의 진짜 무기는 무엇일까. 베테랑 법조인들은 '규제 컨설팅'과 '송무'를 꼽는다. 로펌의 핵심 먹거리가 된 공정거래, 개인정보 유출, 중대재해, 노란봉투법 관련 사건과 자문이 대표적이다. 이 분야는 정부나 수사기관의 주관적 판단과 정무적 고려가 짙게 개입되어 AI로는 결코 예측하거나 방어할 수가 없다. 로펌이 영입하는 전관의 휴민트를 기반으로 한 로비력과 협상력이 중요한 영역이기도 하다. 법정 공방(송무) 역시 마찬가지다. 상대의 예기치 못한 주장에 즉각 논리를 재구성해 반박하는 것은 사람을 닮은 '피지컬 AI'가 법복을 입고 출석하지 않는 한 영원한 인간의 무대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지금 사두면 17배 된다고?"…'2030년까지 1665%' ...
AI가 서초동에 던진 화두는 명확하다. 산업과 비즈니스에 대한 깊은 이해, 복잡한 상황에서의 판단과 전략 수립, 서로 다른 전문성을 연결해 해결책을 만드는 데 더욱 집중하는 변호사들이 각광받고 있다. 기계는 결코 알 수 없는 '사람의 마음'과 '현장의 공기'를 가장 깊이 이해하는 자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온 것이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