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 인터뷰
독일·스위스·태국 거친 30년 제약 외길
1955년 바이엘 국내 진출 이후 첫 한국인 대표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에겐 사내에서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붙지 않는다. 바이엘코리아는 직급 대신 이름 뒤에 '님'을 붙여 부르고 대표인 그도 예외가 아니다. 호칭은 시작일 뿐이다. 대표의 최종 승인이 꼭 필요한 사안이 아니면 비즈니스 의사결정은 부서 대표자들이 꾸린 '미션 팀' 안에서 끝난다. 성과 평가는 1년이 아니라 90일 단위로 돌아간다. 구성원 모두가 회사의 주인이 되면 조직은 얼마나 빨라질 수 있는가. 그가 대표 취임 후 지난 3년간 붙들고 있는 질문이다.


이 대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성과로 증명해가고 있다. 바이엘의 애자일(Agile) 모델인 'DSO'(Dynamic Shared Ownership)를 안착시키면서 1년 이상 걸리기도 했던 신약 도입 관련 의사결정이 6개월로 줄었다. 초고령 사회에 꼭 필요한 신약을 잇달아 국내에 들여오며 지난해부터 회사가 긍정적인 성장세로 진입했다. 여성 임원 비율 75%,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 26위라는 숫자도 그가 찾아가고 있는 답의 일부다. 올해로 한국 진출 71주년을 맞은 독일계 헬스케어 기업의 첫 한국인 수장인 그를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만나 조직과 리더십, 여성 리더의 성장에 관해 물었다.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있다. 바이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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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70년이라는 바이엘코리아 역사상 첫 한국인 대표를 맡게 됐을 때 소감은.

▲’아스피린’을 개발한 독일 기업으로 잘 알려진 바이엘은 1955년 한국 진출 이후 줄곧 외국인이 대표이사직을 맡아왔다. 2023년 최초의 한국인 대표가 되면서 자부심과 동시에 상당한 부담을 느꼈다. 기대된 역할은 두 가지였다. 지속 가능한 성장 동력을 만드는 것과 2024년부터 글로벌 차원에서 도입된 새 운영 모델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것이다.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경험이 든든한 밑바탕이 됐다.


-3년이 지난 현재 가장 자부하는 성과는.

▲취임 당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목표는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강화하고 글로벌에서 검증된 신약을 한국에 신속하게 도입하는 것이었다. 초고령 사회에 맞춰 의학적 미충족 수요가 높은 분야에서 2형 당뇨병 동반 신장질환 치료제, 고용량 황반변성 치료제 같은 혁신 치료제를 빠르게 들여왔다. 고용량 황반변성 치료제는 주사 간격을 최대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어 환자 부담을 크게 줄였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으로 기대한다.

-조직문화 차원의 변화는 없었나.

▲바이엘 최고경영자(CEO)인 빌 앤더슨(Bill Anderson)이 2023년 만든 DSO 체제를 안착시켰다. 이 체제에서 리더는 지시하고 결정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향을 설정하고, 협업의 기반을 설계하고, 장애물을 제거하고, 팀의 성장을 돕는 코치다. 바이엘은 이를 'VACC'(Visionary·Architect·Catalyst·Coach)라고 부르며 가장 핵심적인 리더십 모델로 삼고 있다. 의사결정도 수평적이다. 공통의 비즈니스 목적을 가진 부서 대표자들이 '미션 팀'을 꾸려 주기적으로 방향성을 논의하고 핵심성과지표(KPI)를 공유한다. 대표 승인이 꼭 필요한 사안 외에는 팀 안에서 의사결정이 이뤄진다. 과거 조직이 수직의 사다리형이었다면 미션 팀은 옆으로 펼쳐진 구조다. 권한과 책임을 함께 주는 만큼 시행착오를 보완하기 위해 평가는 1년이 아닌 90일 단위로 바꿨다.


-DSO가 추구하는 수평적 문화가 위계와 연차를 중시하는 한국 조직 정서와 부딪히지는 않았나.

▲한국 조직 문화는 연차와 경험을 존중하고 명확한 목적 아래 뭉쳤을 때 강한 결집력을 발휘하는 게 장점이다. DSO는 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그 장점을 더 효과적으로 살리는 접근이다. 핵심은 전문성 기반의 빠른 의사결정과 부서 간 사일로(부서 간 단절과 이기주의) 제거다. 사일로와 관료주의는 속도만 늦추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기회비용을 만든다. 변화 초기엔 매월 타운홀과 소규모 커피챗 등 다양한 소통으로 도입 취지를 설명하고 성공 경험을 쌓는 데 집중했다.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있다. 바이엘코리아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있다. 바이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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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지향하거나 가슴속에 품고 있는 ‘이상적인 리더의 상(像)’은 어떤 모습인가.

▲과거엔 고려할 요건이 10가지쯤 됐다면 경험이 쌓인 지금은 두 가지로 추려진다. 첫째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비저너리(Visionary)' 역량이다. 자율적 운영 모델에서도 리더는 전체 흐름을 놓쳐선 안 되고 잘못된 방향일 때는 명확히 피드백을 줘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는 리더의 신속하고 결정적인 의사결정이 중요하지만 평상시엔 혁신을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둘째는 직원 성장의 조력자 역할이다. 지금도 깊이 새기는 문구가 있다. "바이엘은 단순히 변화를 관리하는 게 아니라 변화를 위해 직원들의 성장을 관리한다"는 것이다. 리더는 이 변화를 왜 하는지,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 회사의 성장도 중요하지만 구성원 개개인의 성장에도 회사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발맞춰 나가는 환경을 만드는 게 좋은 리더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여성 임원 비율이 75%에 이를 만큼 높은데 그 이유는.

▲여성 임원이 현저히 적었던 시기엔 성별 균형 자체에 신경을 썼다. 하지만 균형이 갖춰진 단계에 이르면 초점은 능력주의로 옮겨간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성비 자체보다 개인이 가진 전문성과 역량, 그리고 조직에 기여한 정도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결국 성별 균형은 기회의 공정성, 성장 경로의 다양성, 의사결정 참여의 실질성으로 관리돼야 한다.


-'2026 대한민국 일하기 좋은 100대 기업'에서 26위에 선정됐다. 원동력은.

▲제도 자체보다 조직 문화와 환경 조성이 핵심이다. 바이엘은 다양성·형평·포용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지난해 기준 그룹 전체 매니지먼트의 여성 비율이 44.2%였다. 2030년까지 이사회를 제외한 전 세계 관리직의 성별 균형 달성이 목표다. 이런 노력으로 지난해엔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여성 친화 기업'에 올랐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이후 유연근무를 축소하는 기업들과 달리 코어 타임 외 출퇴근이 자유로운 유연근무제와 주 2~3회 재택근무를 운영하고 있다. 남녀 모두 육아휴직도 자유롭게 쓴다. 3년 전부터는 '디벨롭먼트 위크'를 열어 이력서 작성법부터 인공지능(AI) 리터러시까지 교육한다. 여기에 글로벌 인재 관리 프로그램인 '탤런트 마켓플레이스(Talent Marketplace)'를 결합해 다양한 국가에서 진행되는 글로벌 프로젝트에 직급·부서·연차에 관계없이 모든 직원에게 동등한 프로젝트 참여와 맞춤형 학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있다. 바이엘코리아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가 아시아경제와 인터뷰 하고있다. 바이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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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엘코리아에서 궁극적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바이엘의 미션은 'Health for all, Hunger for none'이다. 전문의약품뿐 아니라 크롭 사이언스, 컨슈머 헬스를 아우르는 전 영역에 걸쳐 환자와 소비자, 농업인이라는 다양한 고객에게 끊임없이 혁신적인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난제인 '초고령 사회 진입'이라는 현실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은 건강검진 시스템이 매우 잘 갖춰져 있어 건강하게 수명이 연장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질환 자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종양학, 안과 질환, 심혈관 질환, 여성 건강, 면역 질환 등의 분야에서 과거엔 증상 완화나 수치 관리에 머무는 솔루션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앞으로 등장할 치료제들은 유전자와 세포 등을 활용해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한 솔루션들이다. 이런 혁신 치료제를 글로벌 본사와 긴밀하게 협업해 국내 환자들에게 신속하게 공급하는 게 바이엘코리아의 주요 목표다.


-다음 세대 여성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주한독일상공회의소(KGCCI) 여성 리더십 멘토링에 해마다 참여하는데 후배들의 질문은 결국 공통적이다. 기회를 어떻게 포착하고 리더가 되려면 어떤 기반이 필요한가다. 세 가지를 말하고 싶다. 우선 도전을 두려워하지 말았으면 한다. 70%의 가능성만 보이면 무조건 도전하라. 커리어는 사다리처럼 직선으로만 오르는 게 아니라 옆으로, 나선형으로도 간다. 그 과정 자체에 깨달음과 배움이 쌓인다. 자기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는 것도 중요하다. 글로벌 기업은 순응하는 직원보다 아이디어와 메시지가 확실한 직원을 중요하게 여긴다. 신뢰 형성과 관계 맺기에도 힘써야 한다. 여성 직원과 임원들은 일을 잘하지만 간혹 자기 성공을 앞세우는 자기중심성이 강해질 때가 있다. 윗세대는 롤모델 없이 유리천장을 뚫느라 자기 성취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지만 리더로 성장하려면 반드시 함께 갈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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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여성 리더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게리 하멜의 '휴머노크라시(Humanocracy)'다. 조직 운영의 핵심은 결국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책이다. 구성원을 명령을 실행하는 도구가 아니라 주인의식을 갖고 움직이는 주체로 본다. DSO 도입과 함께 권장 도서로 추천돼 바이엘코리아 리더 대부분이 읽었다. 리더가 먼저 바뀌지 않으면 조직도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기업가다'라는 챕터처럼 진정한 주인의식은 스스로 기업의 주인이라고 느낄 때 발휘된다. 자기중심성을 줄이고 사람 중심의 신뢰를 기반으로 삼을 때 여성 리더들도 더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는
이진아 바이엘코리아 대표는 대학에서 약학을 전공하고 약 30년간 제약·헬스케어 분야에서 경력을 쌓았다. 독일·스위스·태국·싱가포르 등 해외 근무를 거쳐 2013년 바이엘코리아에 합류해 심혈관질환 사업부를 총괄했고 2020년부터 바이엘 태국 법인 제약사업부 총괄 겸 대표이사를 지냈다. 2023년 바이엘코리아 대표이사 겸 제약사업부 총괄에 취임했다.

최동현 기획팀장 ne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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