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던 기업연금 되살리는 美 기업들
PECO, 145년 만에 첫 파업까지 벌어져
회사 부담 정해진 '캐시 밸런스'가 열쇠
미국 기업들이 사라져가던 '평생 연금'을 되살리고 있다. 직원을 붙잡기 위해서다.
12일(현지시간)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IBM과 육류가공 대기업 JBS푸즈, 뉴욕과 코네티컷의 대형 의료시스템 노스웰헬스 등이 연금을 다시 열거나 새로 시작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직원이 매달 자기 급여를 떼어 적립하고 운용 성과에 따라 노후자금이 달라지는 401(k)와 달리, 기업연금은 회사가 비용을 대고 퇴직 후 평생 일정한 금액을 지급한다. 한국의 확정급여형(DB) 퇴직연금과 비슷한 구조다.
이 제도가 밀려난 계기는 지난 2008년 금융위기였다. 주가가 폭락한 데다 적립금을 더 쌓으라는 규제까지 새로 생기자 기업들은 부담을 감당하지 못했다. 상당수가 연금을 동결해 더는 쌓이지 않게 막았고, 직원들을 401(k)로 옮겼다. 비영리 조사기관 종업원복지연구소(EBRI)에 따르면 미국 민간부문 근로자의 기업연금 가입률은 1988년 약 30%에서 지난 2024년 10% 아래로 떨어졌다.
"연금 있으면 떠날 이유 없어" 안정성 좇는 직원들
그러나 이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WSJ에 따르면 전기·천연가스 공급업체 PECO에서 고객의 전력망 연결 업무를 맡고 있는 매슈 크로닌(27)은 최근 연금 혜택을 새로 받게 됐다. 그는 401(k)에도 계속 돈을 넣을 계획이지만, 사회보장연금이 줄어들 가능성에 대비해 기업연금이 부족분을 메워주기를 기대한다. 크로닌은 "연금이 있다는 건 회사에 계속 남아있게 만드는 큰 동기"라고 말했다.
부활의 배경에는 제도 자체가 달라진 점이 있다. 전통적인 연금은 근속연수와 퇴직 직전 임금에 따라 평생 지급액이 정해져, 오래 일한 직원이 많을수록 회사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이를 대체한 것이 '캐시 밸런스 연금'이다. 회사가 매년 직원 임금의 일정 비율을 개인 계좌에 넣어주고 국채금리와 연동된 수익률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회사가 얼마를 부담할지 미리 계산할 수 있다.
연금 비용 불확실성 해소…곳간 사정도 나아져
올리비아 미첼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이런 변화로 "기업들이 가장 꺼리던 적립 부담과 비용 불확실성이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짚었다. 미첼 교수는 "연금 중심 시스템으로 완전히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선택적인 부활이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곳간 사정도 나아졌다. 주가가 오르고 채권금리가 높아지면서 앞으로 지급할 연금을 충당하기가 수월해졌다. 연금 컨설팅업체 '밀리먼'에 따르면 미국 100대 기업연금의 자산은 부채의 112%를 채울 수 있는 수준으로, 지난 2012년 77%에서 크게 올랐다. 남는 돈을 현재 직원들의 연금 혜택에 돌릴 여력이 생긴 셈이다.
IBM은 2008년 동결했던 '캐시 밸런스 연금'을 2024년 다시 열면서 401(k) 기업 기여를 중단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급여계좌(RBA)'를 새로 운영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연금 관리업체 퓨처플랜 바이 어센서스에 따르면 '캐시 밸런스 연금'을 운영한 고용주는 지난 2001년 1477곳에서 2020년 약 2만 3000곳, 지난 2023년 약 2만 6000곳으로 늘었다. IBM은 지난 2008년 동결했던 '캐시 밸런스 연금'을 2024년 다시 열면서 401(k) 기업 기여를 중단하고, 전 직원을 대상으로 '퇴직급여계좌(RBA)'를 새로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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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노동조합도 연금을 협상 카드로 들고나오고 있다. 델타항공과 사우스웨스트항공 등은 최근 조종사를 위한 '캐시 밸런스 연금'을 도입했다. PECO에서는 지난 7월 창사 145년 만의 첫 파업이 벌어졌고, 사흘 만에 캐시 밸런스 연금 도입을 포함한 합의가 타결됐다. 미국 보험 컨설팅 업체 밀리먼의 조라스트 와디아 수석은 WSJ에 "가입자 측에서 기업연금 제도를 다시 시작하자는 요구가 상당히 강하게 올라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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