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베네치아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질문 계속하라는 뜻"(종합)
'가능한 사랑' 한국 영화 14년 만의 쾌거
"노동·관계 단절 시대, 영화가 할 일 물어"
월드 프리미어 기립박수·FIPRESCI상까지
이창동 감독의 '가능한 사랑'이 제83회 베네치아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로는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황금사자상)' 이후 14년 만의 쾌거다.
시상식은 12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베네치아 팔라초 델 치네마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진행됐다. 이 감독은 심사위원인 두기봉 감독으로부터 트로피를 받았다. 2002년 '오아시스'로 감독상과 신인배우상을 품은 이후 24년 만의 수상이다. 3대 영화제(칸·베를린)로 범위를 넓히면 다섯 번째 트로피다. 2007년 칸에선 전도연이 '밀양'으로 여우주연상을, 2010년 칸에선 '시'로 각본상을 받았다.
무대에 오른 그는 "이 영화를 같이 만든 모든 분과 지금의 감정을 나누고 싶다"며 넷플릭스와 배우 전도연·설경구·조인성·조여정, 스태프에게 감사를 전했다. 이어 "노동이 사라져 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가 끊어져 가는 시대에 영화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 묻기 위해 만든 작품"이라며 "이 상을 주신 것을 그 질문을 계속하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말했다.
'가능한 사랑'은 해고 노동자와 그의 아내 그리고 다큐멘터리 감독과 그의 남편, 두 부분가 다큐멘터리 영화 제작을 위해 만나 서로 다른 삶을 마주하고 숨겨졌던 욕망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설경구는 해고 노동자 호석, 전도연은 호석의 아내 미옥, 조여정은 다큐멘터리 연출자 예지, 조인성은 예지의 남편 상우를 각각 연기했다. 각본은 이 감독과 오정미 작가가 함께 집필했다.
두기봉 감독은 "이창동 감독의 작품 가운데 가장 성숙하다. 스타일이 섬세하고 은은하다. 영화 속 디테일과 그 안에 담긴 성찰이 마음에 들었다"며 "저는 절대 이런 영화를 만들지 못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감독은 "영화가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담아야 하는지 스스로 묻고 관객과 나누고 싶었다"며 "영화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고통을 나누고 치유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시상식 직후 별도 인터뷰에서 "황금사자상이 아니어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이걸로 충분하다"며 "이 상도 상이지만, 베네치아에서 처음 관객과 만나고 그 반응과 표정을 보는 것이 제게는 더 중요했다"고 개인적 소회를 밝혔다. 함께하지 못한 배우들을 향해서는 "이 영화에서 보여준 앙상블을 많은 이들이 칭찬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한국 관객에게는 "베네치아영화제를 지켜봐 주셔서 감사하다.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한다"며 "얼마나 많은 관객과 만나 영화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을지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참석으로 불참한 주연 배우들도 제각각 소감을 보탰다. 전도연은 "이창동 감독님이 다음 작품을 써 내려가는 데 동력이 되길 바란다"며 "벌써 다음에 보여주실 영화가 궁금해진다"고 말했다. 설경구는 "이 영화를 했다는 것만으로 감격스럽고 자랑스럽다"고 밝혔다. 조인성은 "큰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하고 영광스럽다"며 "한국 영화를 사랑해준 분들의 노력과 응원 덕분에 거둔 결실"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조여정은 "멋진 영화를 만들어주신 이창동 감독님께 축하와 감사를 전한다"며 "하루빨리 더 많은 분과 이 영화가 주는 감동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수상은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다. 지난 6일 경쟁 부문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공개되고 객석에서 7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지난 11일 국제비평가연맹상(FIPRESCI)도 수상했다. 비평가연맹은 "미묘한 힘의 관계를 완벽한 속도감과 여러 층위로 그려내며 착취와 계급을 비롯해 환멸, 사랑, 욕망, 이야기의 윤리를 탐구한다"고 호평했다.
해외 평단의 반응도 뜨거웠다. 할리우드 리포터는 "트라우마와 존엄성 상실, 계급에 대한 갈망을 성찰한 슬프고 아름다운 실내극"이라고 평가했다. 앤드 사운드는 "기업의 횡포가 남긴 트라우마가 가족과 공동체로 번져가는 과정을 절제된 시선으로 포착했다"고 짚었다. 슬랜트 매거진은 "계급과 젠더, 노동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균열을 예리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극찬했고, 데드라인 또한 "감독의 명성을 모르는 관객도 감탄할 만한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가능한 사랑'은 제99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출품작으로도 선정됐다. 이 감독이 오스카 한국 출품작에 이름을 올린 건 '오아시스' '밀양' '버닝'에 이어 네 번째다. 베네치아 이후에도 토론토, 뉴욕, 산세바스티안, 취리히, 밴쿠버, 부산 등 주요 영화제 출품이 이어질 예정이다. 국내 극장에선 오는 23일 개봉하고, 넷플릭스에선 11월 6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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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화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은 덴마크 마이 엘투키 감독의 '우먼 언노운'에 돌아갔다. 2차 대전 직후 덴마크를 배경으로 독일군과의 관계를 의심받는 과거를 가진 여성이 생존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주연 배우인 마틸드 아르셀이 볼피컵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하며 2관왕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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