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 세력 안방 된 빌라 시장
원룸형 다세대 신축 급증
인허가·착공 늘었다 자랑할 때 아냐
서울시·구청, 내용 살피고 적극행정 펴야
재개발을 추진하는 동네에 두 얼굴이 있다. 앞에서는 주민에게 찬성 동의서를 받고, 뒤에서는 서둘러 땅을 사 쪼개 판다. 재개발을 바라는 듯 보이지만 '업자들'이 노리는 건 사업의 성공이 아니다. 쪼개서 파는 과정에서 남기는 이득이다. 이들은 단독·다가구 주택이나 꼬마빌딩을 사들여 원룸형 다세대(빌라)를 지어 판다. 작은 땅에 초소형 근린생활시설(근생)을 짓고 수십 개씩 쪼개 분양하기도 한다.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진다. 아파트값이 뛰고 재개발 바람이 불자 기획부동산과 같은 투기 세력이 일부 정비업체와 손을 잡는다. 정비업체가 홍보성 주민설명회를 열어 판을 깔면, 업자는 그 설명회를 근거 삼아 쪼갠 빌라와 근생을 판다. '설명회'라는 형식이 공신력처럼 비치는 것이다. 여기에 블로거와 유튜버가 가세해 개발 정보나 유망지를 알려준다며 바람을 잡는다. "빌라만 사두면 아파트를 분양받을 권리가 나온다" "근생을 사면 주택 수에 안 잡히고, 재개발되면 주거용 오피스텔을 받는다"는 식이다.
쪼개기는 재개발 자체를 어렵게 한다. 한 필지가 여러 채로 갈리면 나눠 가질 조합원이 늘어난다. 분양 수입은 그대로인데 몫을 챙길 사람은 불어나니 분담금이 오르고 사업성은 떨어진다. 심하면 사업이 무산되고 동네는 슬럼으로 남는다. 서울시가 규제를 풀어 사업성을 높인다지만 그렇게 생긴 개발이익의 상당 부분은 첫 삽을 뜨기도 전에 업자와 투기 세력의 주머니로 흘러든다.
용산구 한남뉴타운 인근 한 지역을 살펴봤다. 한 구역 건물 63개 동 가운데 8개 동이 최근 1년 사이 새로 지어졌거나 신축 중이다. 단독·다가구가 대부분 원룸형 다세대 주택으로 바뀌었다. 당초 이 8개 동의 소유자는 8명이었다. 모두 준공되면 소유자는 100명 안팎까지 늘어나게 된다. 동시 다발적 다세대 신축 중에 주민설명회가 열리고 재개발 추진 현수막이 나붙었다. 또 다른 곳에서는 50평 토지가 소유권 30개짜리 초소형 근생으로 쪼개졌다.
이들이 시청과 구청에 넣는 민원도 치밀하다. 서울시와 구청이 재개발 세력 간 다툼으로 여기는 사이 쪼개기는 계속된다. 지금 서울 곳곳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지자체가 실태 파악이라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이런 와중에 서울시는 실적 자랑에 바쁘다. 시는 지난 7일 "1~7월 비아파트 인허가가 5154호로 작년보다 64.4%, 착공은 4512호로 80.9% 늘었다"며 '공급 확대'라고 반색했다. 늘어난 물량이 어떤 집인지, 눈 가리고 아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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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건 더 섬세하고 적극적인 행정이다. "정비구역 지정 전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만 할 일이 아니다. 권한을 쥐고도 쓰지 않은 채 인허가 숫자만 세는 것으로는 책임을 다했다고 하기 어렵다. 구청도 마찬가지다. 건축허가와 착공, 토지분할·집합건물 전환을 들여다보고 제한할 여지가 있는지 살펴야 한다. 쥐고 있는 권한부터 촘촘히 살펴 실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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