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굽는 타자기]문명은 길을 넓힌다…인간이 헤맨 길을 따라서
본능·욕망에 휘둘리며 실수해도
다음세대에 지식과 경험 물려줘
문명은 모르는 새 조금씩 축적돼
글쓴이는 책의 첫 페이지에서 역사가인 자신에게 질문을 던진다. "책을 그리 많이 읽지 않은 길거리의 그 어떤 사람보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웠는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의 저자 윌 듀런트는 미국의 철학자이자 문명사학자다. 그는 제자이자 아내였던 에어리얼 듀런트와 함께 40여년에 걸쳐 인류 문명사를 집대성한 대작 '문명 이야기'를 썼다. '문명 이야기'는 총 11권으로 완간됐는데, 10권까지 펴낸 뒤, 그때까지의 연구를 토대로 역사의 교훈을 정리한 에세이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이다.
평생 책에 파묻혀 인간과 문명을 연구하고 글을 쓴 사람이 길을 지나는 평범한 사람보다 인간을 더 잘 이해하게 됐는지 스스로 묻는 대목에서는 괴테의 '파우스트'가 떠오른다. 파우스트는 생의 마지막을 앞두고 철학·법학·의학·신학을 두루 공부했지만 전보다 더 현명해진 것이 없다며 스스로를 '불쌍한 바보'라고 탄식한다.
듀런트 부부의 질문은 인간과 역사를 안다고 자부하는 태도를 경계하라는 뜻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이기보다 본능과 욕망에 휘둘려 같은 실수를 되풀이해왔기 때문이다.
듀런트 부부는 인류의 역사와 문명을 정치와 경제, 도덕, 인종, 사상, 종교 등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본다. 경제적 측면에서 역사는 부의 집중과 재분배가 반복되는 과정이었다. 사람마다 생산 능력에 차이가 있고, 능력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부의 격차로 이어진다. 듀런트 부부는 부가 집중되는 정도가 도덕과 법이 허용하는 경제적 자유에 비례한다고 본다. 자유가 확대될수록 부를 축적할 기회 역시 커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도 부의 집중이 심화할 수 있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빈부 격차가 로마제국의 금권정치 이후 어느 시대보다 커졌다고 비판한다.
부의 격차가 사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면 대개 두 가지 형태로 재분배가 뒤따른다. 재분배는 정치를 통해 평화적으로 이뤄지기도 하고, 혁명을 통해 강제적으로 이뤄지기도 한다.
사회주의는 이러한 부의 집중과 재분배가 되풀이되는 역사의 호흡 속에서 나타난 하나의 현상이다. 자본주의는 경쟁과 사적 이익을 통해 생산성과 혁신을 높이지만 불평등을 키운다. 반면 사회주의는 평등을 확대할 수 있지만 생산의 동기를 떨어뜨릴 수 있다. 듀런트 부부는 이 때문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가운데 어느 한 체제가 역사적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어렵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치의 문제는 결국 자유와 질서를 어떻게 조화시키느냐로 귀결된다.
본능과 욕망에서 비롯돼 끊임없이 반복되는 전쟁 역시 인간의 한계를 보여주는 역사의 한 단면이다. 듀런트 부부에 따르면 기록된 역사 3421년 가운데 전쟁이 없었던 기간은 268년에 불과하다.
문명의 성장과 쇠퇴가 반복되는 과정을 살핀 듀런트 부부는 마침내 하나의 질문에 도달한다. 인간은 과연 진보하는가.
이들은 인간과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을 구분해 답을 내린다. 본능과 욕망에 휘둘리는 인간 자체는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삶을 통해 지식과 경험을 축적하고 이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면서 문명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인간은 반복하지만, 문명은 축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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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 | 윌·에어리얼 듀런트 지음 | 안인희 옮김 | 돌베개 | 2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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