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위기 '위급' 단계 라쿤, 200마리 남아
침팬지 등에게만 보이던 '문화적 학습' 현상

야생 라쿤이 관광객이 버린 휴지와 영수증을 모아 공을 만든 뒤 축구를 하는 광경이 포착됐다. 이에 학계에서는 동물들이 장난감을 직접 만들어 갖고 노는 지능형 행동과 사회적 학습 과정이 이례적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첫째 라쿤이 공을 만들자 관심을 보이는 둘째 라쿤. Discovery Wildlife 캡처

첫째 라쿤이 공을 만들자 관심을 보이는 둘째 라쿤. Discovery Wildlife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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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현지시간) 디스커버 와일드라이프에 따르면, 미국 마이애미대학교 연구진은 멕시코 코수멜섬에 서식하는 멸종 위기종 '피그미 라쿤'을 관찰하던 중 이 같은 놀이 행동을 포착했다. 해당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야생 (Wild)'에 게재됐다.

쓰레기로 공 만들고 축구까지

연구진이 섬 남서부의 한 해변에서 64시간 동안 관찰한 기록에 따르면, 어린 피그미라쿤 자매가 쓰레기통에서 냅킨과 영수증 등 종이류를 꺼냈다. 이를 모은 라쿤은 물그릇에 종이를 적신 뒤 모랫바닥에 놓고 앞발로 반복적으로 누르고 굴리면서 동그랗게 뭉쳐 공을 완성했다.

첫째 라쿤이 종이에 물을 묻혀 공을 만들고 있다. Discovery Wildlife 캡처

첫째 라쿤이 종이에 물을 묻혀 공을 만들고 있다. Discovery Wildlife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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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4차례의 시도 중 8번 공 만들기에 성공한 이들은 직접 만든 종이공을 앞발로 굴리고 뒤쫓으며 서로 주고받는 등 축구와 유사한 놀이를 이어갔다. 다른 날에는 섬에 살고 있던 소형 포유류 '긴코너구리' 새끼 2마리까지 '축구판'에 합류하기도 했다.


라쿤은 영리하고 손재주가 좋으며 장난기가 많은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미국에서는 이들이 쓰레기통을 뒤지는 성향 때문에 쓰레기 판다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하지만 라쿤이 쓰레기로 놀이 도구를 만들고 이를 공유하면서 학습까지 하는 모습이 관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언니 잘 봐"…가족 내에서 대물림된 '문화적 학습' 현상

특히 주목할 점은 이들의 학습 과정이다. 첫째 라쿤이 공을 만드는 모습을 본 자매 라쿤이 곧바로 따라나섰으나, 종이를 물에 적시지 않아 제대로 뭉치지 못했다. 그러자 첫째가 둘째의 손에서 종이를 빼앗아 직접 물에 적시고 굴려 시범을 보였고, 이를 유심히 지켜본 둘째 라쿤도 마침내 스스로 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코수멜섬의 고유종 피그미 라쿤(Procyon pygmaeus). 연구에 등장한 라쿤자매와는 다른 라쿤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코수멜섬의 고유종 피그미 라쿤(Procyon pygmaeus). 연구에 등장한 라쿤자매와는 다른 라쿤이다. 위키미디어 커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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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흥미로운 것은 섬 안의 30km 떨어진 다른 지역 라쿤들에게서는 이 같은 행동이 전혀 관찰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특정 라쿤 가족 집단 내에서 대물림된 고유한 '문화적 학습' 현상으로 분석했다.

이처럼 동물이 주변 재료를 선택하고 조작·변형해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문화적 행동은 그동안 침팬지나 돌고래 등 일부 고등 동물에게서만 드물게 관찰되어 왔다. 체코 동물과학연구소 마레크 슈핀카 선임연구원은 이를 두고 "동물의 놀이 행동이 얼마나 복잡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인간이 파괴하는 '야생 동물' 서식지

한편 관광객들이 버린 쓰레기 때문에 야생동물이 위험한 환경에 노출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연구진은 "관광객들이 흘린 술을 마신 어미 라쿤이 비틀거리다 쓰러져 두 시간 동안 일어나지 못했고, 그 곁에서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과자 조각을 받아먹기 바빴다"고 꼬집었다.

사람들이 준 과일을 먹으려고 하는 라쿤. 뉴시스

사람들이 준 과일을 먹으려고 하는 라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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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공놀이를 하던 첫째 라쿤은 인근 해변 클럽에서 흘러나온 폐수와 살포된 화학 약품, 영양실조가 겹치면서 건강이 급격히 악화했다. 결국 재활 치료를 받던 중 안타깝게 목숨을 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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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한 해 동안 코수멜섬을 찾은 관광객만 900만명을 웃돈다. 이 중 절반가량이 크루즈선을 통해 유입됐다. 현재 코수멜에 남은 피그미 라쿤은 200마리도 채 되지 않아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멸종위기 '위급' 단계에 놓여 있다.

신은서 인턴기자 els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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