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부씰에서 포토카드·책갈피까지
저가 상품 하나가 매장 방문·앱 유입 견인
편의점에서 빵 하나를 사기 위해 애플리케이션으로 재고를 확인하고, 원하는 캐릭터 스티커나 포토 카드를 얻기 위해 여러 매장을 찾아다니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과거 간식에 머물렀던 빵이 이제는 좋아하는 콘텐츠를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소유하고 경험하는 일종의 '팬덤 굿즈'로 진화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편의점 업계에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인기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협업 상품이 단순 판매를 넘어 매장 방문을 늘리고 자체 앱 이용자를 확보하는 '집객 상품' 역할까지 하고 있어서다. 국내 캐릭터 빵 열풍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것은 1999년 등장한 '국진이빵'이다. 당시 500원에 판매된 빵에는 인기 개그맨 김국진의 캐릭터 스티커가 들어 있었다. 하루 60만~70만개가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이후 핑클빵, 디지몬빵, 케로로빵 등 스티커를 활용한 상품이 잇달아 등장했다.
이후 한동안 주춤했던 캐릭터 빵 시장은 포켓몬빵의 재흥행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았다. 최근에는 협업 대상도 캐릭터를 넘어 프로야구 구단과 출판사, 아이돌까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특히 편의점 업계는 빵과 디저트를 팬덤을 매장으로 끌어들이는 핵심 상품군으로 활용하고 있다.
CU의 올해 1~8월 디저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65.6% 증가했다. 2024년 25.1%, 지난해 62.3%에 이어 가파른 성장세다. 대표 상품인 연세우유 생크림빵 시리즈는 2022년 출시 이후 올해 4월 누적 판매량 1억개를 넘어섰다. GS25가 출판사 민음사와 캐릭터 IP '오늘의 귀여움'을 결합해 선보인 '민음사빵'은 팬덤 협업의 효과를 보여주는 사례다. 지난달 21일 출시 이후 이달 9일까지 약 20일 만에 누적 77만개가 팔렸고, 출시 후 GS25 전체 빵류 매출 1~4위를 차지했다.
포켓몬 다음은 민음사·프로야구·아이돌…편의점 빵의 'IP 전쟁'
편의점 업계의 빵 경쟁은 결국 '팬덤으로 고객을 부르고 맛으로 다시 사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캐릭터와 스포츠, 출판, 아이돌 등 콘텐츠 산업과 유통업의 경계가 흐려지면서 빵 한 개가 매출뿐 아니라 고객 유입과 앱 트래픽까지 만들어내는 전략 상품으로 자리 잡는 모습이다.
상품 인기는 온라인 트래픽으로도 이어졌다. 출시 이후 우리동네GS 앱에서 '민음사' 관련 검색량은 약 600만건에 달했다. 지난달 앱 신규 설치 건수도 약 40만건으로 올해 월간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고, 월간활성이용자수(MAU)는 약 470만명으로 역대 최고 수준을 나타냈다.
빵 한 개가 상품 판매를 넘어 소비자를 편의점 앱 안으로 끌어들이는 '고객 유입 장치'가 된 셈이다. 프로야구 팬덤을 겨냥한 상품도 비슷한 효과를 내고 있다. 세븐일레븐이 올해 롯데자이언츠와 KIA 타이거즈 등 프로야구 구단과 협업해 내놓은 상품은 누적 300만개가 판매됐다. 특히 롯데자이언츠 협업 상품 출시 이후 사직구장 인근 세븐일레븐 점포 매출은 지난해 5월 2일부터 12월 31일까지 전년 동기 대비 67% 증가했다. 야구팬의 수집 수요가 실제 오프라인 점포 방문과 소비 확대로 연결된 것이다.
이마트24도 인기 애니메이션 '브레드이발소'와 협업한 디저트 상품을 선보인 뒤 지난달 7일부터 이달 9일까지 디저트 상품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65% 늘었다. 아이돌 팬덤까지 편의점 빵 시장으로 들어오고 있다. CU는 이달 걸그룹 리센느와 협업한 빵 5종을 출시할 예정이다.
멤버들이 선호하는 맛을 제품에 반영하는 동시에 포토 카드를 넣어 팬들의 수집 수요를 구매로 연결한다는 전략이다. 업계가 IP 협업에 적극적인 것은 빵의 특성과도 관련이 있다. 고가 굿즈와 달리 수천원 안팎의 비교적 낮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어 팬덤의 진입 장벽이 낮다. 동시에 식사 대용이나 디저트로 실제 소비할 수 있어 일반 상품보다 구매 명분도 뚜렷하다. 편의점 입장에서는 협업 상품을 사기 위해 방문한 고객의 추가 구매를 기대할 수 있고, 재고 확인 과정에서 자체 앱 이용까지 유도할 수 있다. 상품 판매뿐 아니라 오프라인 유입과 앱 활성화 효과를 동시에 노릴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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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유명 IP만 붙인다고 흥행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팬덤이 첫 구매를 유도할 수는 있지만, 반복 구매를 만들기 위해서는 결국 맛과 품질이 뒷받침돼야 한다. CU가 자체 베이커리 브랜드 '베이크405'를 중심으로 유명 제과 브랜드와 제빵 명장 등과 협업해 품질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 8월 기준 베이크405 시리즈 누적 판매량은 3500만개를 넘어섰고 이석원 명장과 공동 개발한 제품도 누적 170만개가 판매됐다.
500원 캐릭터빵에서 8500원 베이글까지…대한민국 '빵 소비' 변천사
이 가운데 빵 소비문화 자체도 변하고 있다. 2010년대에는 독일 전통 과자 슈니발렌이 '깨 먹는 재미'를 앞세워 인기를 끌었고, 2016년에는 6000~7000원대 대왕 카스텔라가 가성비 디저트로 전국적인 유행을 만들었다. 2020년대에는 베이글이 시장을 이끌고 있다. 2021년 서울 종로구 안국동에 문을 연 런던베이글뮤지엄이 젊은 소비자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베이글 전문점이 '오픈런' 명소로 떠올랐다. 기본 제품은 3000원 후반대지만 토핑과 형태에 따라 8000원을 넘는 제품도 등장했다.
1999년 500원이던 캐릭터 빵부터 수천원짜리 협업 편의점 빵, 8000원이 넘는 베이글까지 소비자가 빵에 지불하는 가격은 높아졌지만, 구매를 결정하는 기준은 오히려 더 다양해졌다. 이제 빵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식품이 아니라 브랜드와 콘텐츠, 공간 경험, 수집의 재미까지 함께 소비하기 '굿즈'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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