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전문 샤프켓도 롱 행동주의 전환
상법 개정 등 韓 시장 체질 개선
외국자본은 투자 기회로 인식
"자본 유입 늘면 글로벌 스탠더드 가까워져"
외국계 행동주의 자금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는 배경으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기대감이 꼽힌다. 과거 한국 증시는 낮은 주주환원율과 복잡한 지배구조, 지배주주 중심 의사결정 등 고질적인 약점으로 저평가받았지만, 최근에는 이 약점이 오히려 투자 기회로 읽히고 있다. 상법 개정과 자기주식 소각 의무화, 밸류업 프로그램 등 제도 변화가 맞물리면서 저평가 기업의 가치 개선을 요구할 명분이 커졌기 때문이다.
"지금이 제일 싸다"…체질 바뀌는 한국 시장
11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이재명 정부 들어 일반주주 보호와 기업가치 제고를 겨냥한 자본시장 제도 개편이 잇따르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개정 상법에 따라 상장사가 보유한 자사주 보유 현황과 처분 계획을 더 폭넓게 공시하도록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자사주가 단기 주가관리 또는 경영권 방어 수단이 아니라, 중장기 기업가치 제고 수단으로 돼야 한다는 취지다.
또한 금융당국은 오는 11월부터 세계산업분류기준(GICS) 11개 업종별로 최근 3년간 주가순자산비율(PBR)이 코스피 하위 25%, 코스닥 하위 10%에 지속해서 머문 기업을 공표할 방침이다. 회사가 가진 자산보다 주가가 지나치게 낮은 기업을 정부가 나서서 압박하는 셈이다.
이런 변화는 행동주의 투자자에게 한국 시장을 주목할 '명분'을 제공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이 자사주 보유, 낮은 배당, 복잡한 지배구조를 유지해도 외부 주주가 문제를 제기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주식 소각, 이사회 책임, 일반주주 보호가 제도권 의제로 들어오면서 행동주의 자금이 요구를 제기할 공간이 넓어진 것이다.
국내 행동주의가 단순한 주주환원 요구에서 이사회와 자본배치 문제로 진화하고 있다는 증권가 분석도 나왔다. 한화투자증권이 지난달 발표한 '거버넌스 임팩트' 보고서에 따르면 2025~2026년 상반기까지 개시된 국내 행동주의 캠페인에서 이사회 진입 요구 비중이 24.7%로 가장 높았다. 2025년 이전보다 13.8%포인트 상승한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주주환원 요구 비중은 7.9%포인트 하락했다. 박세연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행동주의 요구가 배당·자사주 같은 단기 환원에서 이사회 구성, 자본배치, 전략 변화 등 장기 이행이 필요한 의제로 넓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 경험 이후 '다음 시장'은 한국
외국계 운용사들이 한국을 보는 시각에는 일본의 선례도 깔려 있다. 일본은 최근 몇 년간 글로벌 행동주의 자금의 주요 무대였다. 한화투자증권은 2025년 글로벌 행동주의 캠페인이 765건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고, 증가 속도의 무게중심이 아시아로 이동했다고 분석했다. 2018~2025년 글로벌 행동주의 캠페인 증가분 163건 중 81%는 일본이 차지했고, 한국을 포함하면 92%가 두 나라에서 나왔다. 박 연구원은 "한국이 일본을 5~7년 시차로 뒤쫓는 초기 국면"이라고 평가했다.
한국 시장 진출을 검토 중인 패럴론캐피탈매니지먼트는 이미 일본 시장에서 이 같은 변화를 활용한 운용사다. 2022년 도시바 지분 6% 이상을 보유한 3대 주주로서 회사 분할안에 반대하고, 매각 제안을 공개적으로 받아야 한다고 요구했다. 당시 패럴론은 도시바가 사모펀드 인수 등 대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분할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스텔라스제약 사례도 있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지난해 패럴론은 일본 대형 제약사 아스텔라스제약의 지분 3% 초과를 확보해 상위 주주로 올라섰고, 비용 절감과 연구개발 전략 개편, 인수합병(M&A) 전략 재검토를 요구했다.
공매도 전문가도 '롱 행동주의'로 돌아서
사프켓캐피탈 사례는 한국 시장의 달라진 위치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공매도 전문 투자자로 알려진 파미 콰디르 사프켓캐피탈 창업자 겸 최고투자책임자(CIO)도 한국을 새로운 무대로 선택했다. 그는 캐나다 제약사 발리언트, 독일 핀테크 기업 와이어카드 등의 회계·지배구조 문제를 파고들며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숏 전략으로 이름을 알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문제가 있는 기업을 공격해 주가 하락에 베팅하는 대신, 저평가 기업을 사들여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을 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한국 시장이 단순히 저렴한 시장이 아니라 '변화 가능성이 생긴 시장'으로 바뀌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저평가가 해소될 제도적 촉매가 없다면 행동주의 자금은 장기간 묶일 수밖에 없지만, 제도 개혁과 주주 자본주의 인식 개선 등이 동시에 진행되면 승산이 있다고 본 셈이다. 이미 한국거래소가 내놓은 코리아밸류업지수는 올해 들어 전날까지 85.2% 상승하며 코스피 수익률 66.9%를 웃돌았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오랫동안 한국 시장의 약점이었다면, 이 약점이 바뀌는 순간은 행동주의 자금에는 투자 적기인 셈"이라며 "외국계 행동주의 자본이 많이 들어올수록 한국 시장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갈 수밖에 없고, 주가의 변동성도 더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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