헥토어 하르쾨터 '메모의 문화사'
빈치부터 루만까지…메모는 기억보다 ‘사유의 흔적’에 가까웠다
스위스 작가 로베르트 발저의 유고에는 526장의 이상한 종이가 있었다. 달력, 엽서, 봉투, 인쇄물의 여백 같은 자투리 종이 위에 연필로 깨알보다 작은 글씨를 빼곡히 적었다. 처음에는 암호인 줄 알았다. 해독하고 보니 시와 산문, 희곡이었고 장편소설 한 편까지 숨어 있었다. 글쓰기가 막혔던 발저가 1920년대 개발한 일종의 '연필 시스템'이었다. 쓰기 위해 글씨를 작게 만들었고, 작게 씀으로써 다시 쓸 수 있었다. 메모는 이렇듯 완성된 글의 반대편에 있는 하찮은 부산물일까. 아니면 글이 아직 무엇이 될지 결정되지 않았을 때만 존재하는, 가장 자유로운 형태의 글일까.
독일의 커뮤니케이션학자 헥토어 하르쾨터가 700쪽이 넘는 '메모의 문화사'에서 집요하게 뒤쫓는 것이 바로 이 작은 매체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인간의 정신은 보고서나 논문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생각은 갑자기 튀어나오고, 엉뚱한 곳으로 건너가고, 앞뒤 없이 끊어진다. 그러니 잘 정리된 문장보다 구겨진 쪽지가 오히려 생각을 더 닮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좋은 증거다. 대영도서관이 소장한 '코덱스 아룬델'에는 과학과 기계, 예술, 개인적 기록이 좌우도 없이 뒤섞여 있다. 다빈치 자신도 그것을 여러 종이에서 옮겨 적은 '질서 없는 모음'이라고 불렀다. 나중에 주제별로 정리하겠다고 했지만 그 '나중'은 제대로 오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바로 그 실패다. 후세는 정리되지 않은 283장의 종이에서 정리된 천재보다 움직이는 천재의 머릿속을 본다.
르네상스 사람들이 인용문과 생각을 항목별로 모은 '커먼플레이스 북', 비트겐슈타인이 철학과 사생활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적었던 공책, 아르노 슈미트의 카드, 발저의 미크로그램까지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대부분 비슷하다. 생각을 완성한 사람들이 아니라 생각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닌 사람들이다. 하르쾨터에게 메모는 그래서 기억의 창고가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다. 우리는 기억하려고 적는 것이 아니라 안심하고 잊기 위해 적는다. 전화번호를 적는 순간 외울 필요가 없어지고, 해야 할 일을 적는 순간 머릿속에서 지워도 된다.
1998년 철학자 앤디 클라크와 데이비드 차머스가 '확장된 마음'을 설명하며 제시한 오토의 공책도 이 지점에서 만난다. 기억장애가 있는 오토에게 늘 지니고 다니는 공책은 기억을 돕는 물건이 아니라 사실상 기억의 일부다. 어디까지가 머리고 어디부터가 종이인가. 메모를 오래 들여다보면 그 경계가 흐려진다.
이 책에서 가장 매혹적인 사람은 아마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일 것이다. 그는 40여 년 동안 약 9만장의 카드를 만들었다. 중요한 것은 9만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카드를 주제별 서랍에 얌전히 가둬두지 않고 서로 참조하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새 메모 하나가 기존 메모를 만나고, 그 사이에 다시 메모가 끼어들며 예상하지 못한 길을 냈다. 오늘날 루만 아카이브는 이 체텔카스텐을 그의 이론 작업의 중심이자 일종의 '지적 자서전'으로 부른다. 루만은 머릿속에서 완성된 생각을 카드에 옮긴 것이 아니다. 카드와 대화하다 생각을 얻었다.
프랜시스 베이컨에게는 상자조차 필요하지 않았다. 런던 리스뮤스 7번지 그의 작업실에서는 사진, 잡지, 책, 잘린 캔버스와 물감통 등 7000점이 넘는 물건이 발굴되듯 수습됐다. 더블린 휴 레인 갤러리는 바닥과 벽, 천장까지 통째로 옮겨 복원했다. 겉으로는 쓰레기장에 가깝지만 베이컨에게 그 혼란은 작업의 외부가 아니었다. 이미지가 발에 밟히고 우연히 뒤집히고 다른 이미지 옆에 놓이면서 그림이 시작됐다. 하르쾨터의 시선으로 보면 그 방 전체가 거대한 3차원 메모장인 셈이다. 여기까지 오면 이 책이 말하는 '메모'는 포스트잇이나 노트 앱이라는 물건에서 멀어진다. 벽의 낙서도, 감옥 바닥에 긁은 문장도, 화가의 어질러진 작업실도 메모가 된다.
정의가 너무 넓어지는 순간도 있다. 특히 "미디어는 기억이 아니라 망각을 위해 존재한다"는 저자의 선언은 멋지지만 모든 기록에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잘 만든 문장이다. 독일에서 출간됐을 당시에도 그의 이론이 반복되고, 매력적인 명제를 위해 예외를 성급하게 밀어낸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제로 메모는 잊기 위해서도 쓰지만 잊지 않기 위해서도 쓴다. 발저의 종잇조각이 한 세기 뒤까지 살아남은 사실부터가 그렇다.
그럼에도 이 과장은 책을 망치기보다 오히려 질문을 남긴다. 지금 우리의 휴대전화에는 수천 장의 사진과 캡처, 카카오톡 '나에게 보내기', 열지 않은 노션 페이지와 메모 앱 문장이 쌓여 있다. 저장 용량은 사실상 무한해졌는데 이상하게 우리는 더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저장했다는 사실이 기억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AI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간다. 이제는 보관뿐 아니라 정리하고 요약하고 문장으로 만드는 일까지 대신한다. 그러자 역설적으로 인간에게 가장 귀해진 것은 정돈되지 않은 상태인지 모른다.
아직 의미가 없고, 분류되지 않았으며, 무엇과 연결될지 모르는 생각 한 조각. 효율이라는 기준으로 보면 잡음이다. 창작의 역사에서 보면 바로 그 잡음이 시작이었다. 『메모의 문화사』를 덮고 나면 책상 위에 굴러다니는 쪽지 한 장을 쉽게 버리지 못하게 된다. 거기에 위대한 생각이 적혀 있어서가 아니다. 아직 위대한 것도, 쓸모없는 것도 아닌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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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문화사 | 헥토어 하르쾨터 지음 | 김인건 옮김 |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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