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범 8년간 156개사 지원…경영안정·신규 선박에 86%
중소선사까지 금융 확대…친환경 선박·해외 물류망 뒷받침

부산항에 HMM 컨테이너선이 정박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부산항에 HMM 컨테이너선이 정박돼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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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한진해운 파산은 국내 해운산업의 지형을 송두리째 바꿨다. 세계 7위권이던 국적 원양선사가 사라지면서 수출입 화물을 실어나를 국적선대의 경쟁력도 급격히 약화됐다. 해운업 불황이 길어지자 민간 금융회사들은 선박금융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고, 살아남은 선사들도 새 배를 확보하거나 유동성을 마련하기 쉽지 않았다.


한국 해운산업이 한진해운 파산의 충격을 딛고 다시 글로벌 경쟁 무대로 올라서는 과정에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의 대규모 정책금융이 있었다. 경영난에 빠진 선사에 유동성을 공급하고 부족해진 선박을 확충하는 데서 시작한 해진공의 지원은 중소선사와 항만·물류로 범위를 넓혀왔다. 이제는 친환경 선박 전환과 해외 물류망 확보 등 해운산업의 다음 경쟁력을 준비하는 역할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다.

10일 해진공에 따르면 2018년 7월 출범 이후 올해 6월 말까지 156개 해운기업에 공급한 금융은 약 17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해진공은 2016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위축된 국내 해운산업을 재건하기 위해 한국선박해양과 한국해양보증보험, 한국해운거래정보센터를 통합해 출범한 해양수산부 산하 정책금융기관이다.


17조5000억원의 쓰임새를 보면 지난 8년간 해운 재건의 방향도 읽힌다. 전체 지원액의 49%가 경영안정에 투입됐고 신규 선박 확보가 37%로 뒤를 이었다. 항만·물류에는 11%, 친환경 설비 개량에는 3%가 각각 투입됐다. 당장의 유동성 위기를 넘기는 동시에 선박을 새로 확보해 국적선대의 기초 체력을 다시 쌓는 데 정책금융이 집중된 셈이다.

지원 대상은 대형 원양선사에만 머물지 않았다. 금융지원을 받은 156개사 가운데 중소선사가 약 63%로 대형·중견선사(37%)보다 많았다. 전체 금융지원액 가운데 HMM을 제외한 비중도 약 73%에 달한다. 한진해운 파산 직후 원양선사의 경쟁력 회복이 급선무였다면 이후에는 중소·중견선사의 선박 확보와 경영안정까지 정책금융의 저변이 넓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HMM이다. 한진해운 파산 이후 국내 유일의 원양 컨테이너선사로 남은 HMM은 한때 심각한 경영 위기를 겪었다. 해진공과 산업은행의 정책금융을 바탕으로 선박 확보와 재무구조 개선을 추진하면서 정상화 기반을 마련했다. 이후 선대와 영업 경쟁력을 키운 HMM은 지난해 매출 10조8914억원, 영업이익 1조4612억원을 기록하며 세계 8위권 컨테이너선사로 성장했다.

배종윤  한국해양진흥공사 ESG경영팀장이 지난 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세미나에서 해운산업 재건 과정과 해진공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나훔 기자

배종윤 한국해양진흥공사 ESG경영팀장이 지난 7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세미나에서 해운산업 재건 과정과 해진공의 역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강나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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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업은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대표적인 사이클 산업이다. 선박을 확보하는 데 대규모 자금이 필요한 반면 불황기에는 선사의 수익성과 재무 여건이 나빠져 필요한 자금을 민간 금융만으로 조달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수출입 물동량의 대부분을 해상운송에 의존한다. 국적선대가 약해지면 외국 선사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고 운임 협상력이 떨어질 수 있다. 글로벌 공급망이 흔들리는 비상 상황에서는 수출입 화물을 실어나를 선복을 적기에 확보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해진공이 단기적인 금융 수익성보다는 해운산업의 존속과 경쟁력 유지에 정책금융의 초점을 맞추는 배경이다.


앞으로는 정책금융이 풀어야 할 과제도 달라진다. 과거에는 경영 위기에 빠진 선사를 정상화하고 부족해진 선박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었다면 이제는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대규모 투자가 새로운 부담으로 떠올랐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국적선사들도 친환경 연료 선박과 관련 설비에 대한 투자를 더 이상 미루기 어려워졌다.


해진공도 이에 맞춰 친환경 선박 도입과 설비 개량 등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해운산업의 친환경 전환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블루본드를 발행하는 등 자금조달 방식도 다변화했다. 금융지원뿐 아니라 해운기업의 경영 현황과 경쟁력을 진단하고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는 등 비금융 분야로도 역할을 넓히고 있다.


지원 영역은 해운을 넘어 항만·물류 등 해양산업 전반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해진공은 '글로벌 해양강국의 종합 해양지원기관'을 2030년 비전으로 세우고 금융을 기반으로 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신성장 동력 확보, 해양산업의 인공지능(AI) 전환 등을 추진하고 있다. 2030년까지 해양금융 24조원을 공급하고 신사업 매출 비중을 20%까지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장기적으로는 2040년 자산 100조원, 임직원 500명 규모의 종합 해양지원기관으로 성장한다는 구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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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년이 국적선대를 다시 세우는 시간이었다면 앞으로의 정책금융은 다음 위기와 산업 전환에 대비하는 역할까지 요구받고 있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지난 8년은 위기에 빠졌던 대한민국 해운산업이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재건의 시간이었다"며 "앞으로도 해운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하는 것은 물론 친환경·디지털 전환과 신성장 분야 지원을 확대해 대한민국이 세계 해양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오사카(일본)=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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