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P 쓰는 '루프 압출' 외에 에너지 없는 '다리 놓기' 규명
효모부터 인간까지 공통…염색체 조직화 원리 새롭게 제시
사람 세포 하나에 들어 있는 DNA를 한 줄로 늘이면 길이가 약 2m에 달한다. 이 긴 DNA가 지름 약 10㎛에 불과한 세포핵 안에 정교하게 접혀 들어가는 또 하나의 원리가 밝혀졌다. 에너지를 사용해 DNA에 고리를 만드는 기존 방식과 달리 단백질이 DNA 사이에 '다리'를 놓아 여러 가닥을 한데 모으는 방식이다.
서울대는 10일 류제경 물리천문학부 교수와 장재원 계산과학협동과정 연구원이 주도한 연구팀이 영국 프랜시스 크릭 연구소,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일본 교토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진과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진핵생물에 공통으로 보존된 새로운 염색체 조직화 원리를 규명했다고 밝혔다. 장 연구원과 류 교수가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하고, 류 교수는 교신저자도 맡았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뉴클레익 애시즈 리서치(Nucleic Acids Research)'에 게재됐다.
SMC 단백질의 'DNA 다리 놓기'를 통한 염색체 형성 과정. 코헤신과 콘덴신이 서로 떨어진 DNA를 연결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DNA가 한곳에 모여 응축체를 형성한다. 연구팀 제공
DNA가 어떻게 접히느냐는 단순히 긴 유전물질을 좁은 공간에 집어넣는 문제가 아니다. DNA상에서 멀리 떨어진 유전자와 이를 조절하는 부위가 접힘을 통해 서로 만나면서 유전자가 켜지거나 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구조에 이상이 생기면 유전자 조절이 흐트러져 발달질환이나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염색체를 접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코헤신과 콘덴신으로 대표되는 'SMC 단백질 복합체'다. 지난 10년간 SMC의 주요 작동 원리는 ATP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해 DNA를 끌어당기면서 고리를 점점 크게 만드는 '루프 압출(loop extrusion)'로 설명돼 왔다.
하지만 이 방식만으로는 여러 DNA 고리가 한곳에 겹쳐 모이거나 분열기의 염색체가 짧고 단단하게 응축되는 현상을 완전히 설명하기 어려웠다.
ATP 없이 DNA 모았다…'다리 놓기'의 발견
연구팀은 출아효모와 분열효모, 인간에서 얻은 코헤신과 콘덴신 등 네 종류의 SMC 복합체를 단일분자 형광 이미징으로 관찰했다. 그 결과 네 종류 모두 ATP가 없어도 DNA를 한곳에 모아 응축체를 형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간 코헤신의 경우 ATP 유무와 관계없이 약 22초 만에 응집이 이뤄졌다.
원자힘현미경(AFM)으로 관찰한 결과 코헤신 한 분자가 두 가닥의 DNA를 동시에 붙잡는 모습도 포착됐다. 하나의 단백질이 서로 떨어진 DNA에 '다리'를 놓고, 이로 인해 주변 DNA가 모이면 또 다른 다리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응축체가 커지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를 '다리 놓기 유도 상분리(BIPS)'로 설명했다.
사람 세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현상이 확인됐다. 초해상도 현미경으로 관찰한 코헤신은 세포핵 전체에 고르게 흩어져 있지 않고 지름 약 90㎚의 덩어리를 형성했다. 고해상도 염색체 접촉지도(Micro-C)에서는 하나의 염색체 구역에 15~25개의 DNA 고리가 겹쳐 있는 구조도 관찰됐다.
연구팀은 이를 토대로 SMC 단백질이 ATP를 사용하는 '루프 압출'과 에너지를 별도로 사용하지 않는 '다리 놓기 응집'을 함께 이용해 염색체를 조직화한다는 원리를 제시했다. 특히 효모에서 인간까지 같은 현상이 확인돼 진핵생물 전반에 보존된 염색체 조직화 방식일 가능성을 보여줬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이대로 가면 집값 폭등…발언 접겠다" 李 콕 집었...
이번 연구는 코헤신과 콘덴신 이상과 관련된 선천성 발달질환과 암이 발생하는 분자적 원리를 이해하는 데도 단서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