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에너지 병목에 빠진 대한민국
중동 긴장 다시 고조되며 천연가스 가격 급등
가스 가격 오르면 전기 도매 요금도 같이 올라
한전, 전기 구매 비용 증가로 재무구조 악화
"SMP상한제, 시장 왜곡 가능…비상시 석탄화력 활용을"

편집자주최근 중동 전쟁으로 인한 공급망 위기, 정부의 메가프로젝트 등으로 에너지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1차 에너지의 대부분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경제 성장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정부와 산업계에서 에너지 현장을 발로 뛰며 취재하는 기자들이 다양한 현안들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는 기획 기사를 연재합니다.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겨울을 앞둔 유럽 각국이 천연가스의 저장고를 서둘러 채우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도 액화천연가스(LNG) 비축을 늘리며 LNG 가격이 3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LNG 가격은 국내 전기 도매 요금과 직결된다. 전기 도매 요금이 오르면 한국전력의 재무구조가 악화하고 한전은 회사채를 더 발행해야 한다. 이는 한국 금융 시장을 뒤흔들 수 있는 시한폭탄과도 같다.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한국 금융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뒤늦게 천연가스 비축 늘리는 유럽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네덜란드 TTF에서 거래하는 천연가스 선물 가격은 9일(현지시간) 메가와트시(MWh) 당 80유로를 돌파하며 2023년 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이란 전쟁 발발 이후 2배 이상 오른 수준이다.


천연가스 가격이 크게 오르는 이유는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데 따른 결과다. 유럽의 천연가스 회사들은 난방 수요가 많은 겨울철에 대비해 통상 여름에 가스를 비축한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전쟁이 끝나고 가격이 내려가길 기다려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미국과 이란이 합의에 가까워졌다고 여러 차례 밝히며 이러한 기대를 부추겼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 간 갈등이 다시 고조되자 유럽이 뒤늦게 비축에 나서며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보도에 따르면 8월 마지막 주 유럽의 천연가스 비축량은 63%에 불과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유럽은 2021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에너지 위기가 고조될 당시 천연가스 비축량을 11월1일까지 90% 이상 확보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를 무기화하려는 시도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올해의 경우에는 이를 80%까지 낮추었지만 목표를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여기에 아시아 각국도 경쟁적으로 LNG 확보전에 나서며 천연가스 가격을 밀어 올리고 있다. 유럽은 파이프를 통해 천연가스를 공급받지만 아시아 국가들은 부피를 줄이기 위해 천연가스를 영하 162도로 액화한 LNG 형태로 수입한다.

[에너지 오디세이]③ 천연가스 가격에 금융 시장이 벌벌 떠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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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JKM(Japan Korea Maker) 시장에서 LNG 현물 가격은 10일 백만BTU당 24.815달러를 기록하며 2023년 1월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에너지경제연구원 김태식 연구위원은 "카타르의 LNG 생산시설 파괴로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시아 국가들이 현물 시장에서 구매를 확대하고 있다"며 "아시아와 유럽 국가들이 경쟁을 벌이며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가스공사나 민간 직수입자들은 주로 10~20년 장기 계약을 맺는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은 국제 유가다. 국제 유가는 약 3~5개월의 시차를 두고 국내 LNG 수입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국내 수입 LNG의 70~80%는 장기 계약 형태로 들어온다. 하지만 카타르가 올해 3월 불가항력을 선언하면서 장기 구매 물량 수급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다. 이에 부족한 물량만큼을 비싼 현물 시장에서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다.

카타르 LNG 생산시설 피해복구 늦어져

카타르는 전 세계 LNG의 5분의 1가량을 공급한다. 미국-이란 전쟁 이후 이란은 카타르 라스라판(Ras Laffan) 산업 단지를 잇달아 공격했다. 라스라판 지역은 '카타르 LNG의 심장'으로, 세계 최대 LNG 생산 및 수출 기지 중 한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LNG의 90%가 아시아 시장으로 향한다.


이란의 공격으로 카타르의 LNG 생산 및 수출은 크게 감소했다. 카타르는 이란의 공격으로 LNG 생산시설이 파괴되자 지난 3월 '불가항력'을 선언했다. 불가항력 선언이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 통제할 수 없는 예외적인 상황으로 인해 기업이 계약상 의무를 이행할 수 없을 때 발동한다. 카타르는 불가항력 선언을 10월까지 연장한 상태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전쟁 발발 이후 6개월 만에 카타르의 LNG 수출량은 96% 감소했다. LNG 생산 시설을 복구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국영 에너지 기업인 카타르에너지는 피해 복구에 3~5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보도에 따르면 라스라판의 14개 LNG 생산 시설 중 6개만이 가동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에너지 오디세이]③ 천연가스 가격에 금융 시장이 벌벌 떠는 이유 원본보기 아이콘

우리나라는 주로 중동아시아(카타르, 오만, 예멘, 이집트), 동남아시아(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러시아(사할린), 호주, 미국 등 해외에서 천연가스를 수입하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우리나라의 최대 천연가스 수입국은 호주로 전체 수입액의 32.8%를 차지했다. 이어 카타르(15.8%) 말레이시아(15.0%), 미국(9.2%), 러시아(5.1%), 오만(4.5%), 인도네시아(3.5%) 순이었다.


천연가스의 중동산 수입 의존도는 2016∼2019년 49.2∼44.9% 등 40%대를 유지했으나 지난해에 19.7%로 떨어졌다. 카타르, 오만으로부터의 수입 비중을 줄이면서 호주산 도입을 늘리는 등 천연가스 수입을 다변화한 영향이 컸다. 중동산 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낮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핵심 수입국 중 하나다.

LNG 가격은 전기 도매 요금과 직결

우리나라는 한국가스공사 혹은 민간 직수입사 통해 LNG를 수입한다. 수입 물량의 절반은 발전용으로 사용한다. 한국전력은 발전사로부터 도매 요금으로 전기를 사 온 뒤 가정, 기업 등 최종 소비자에게 전기를 판매한다. 발전사로부터 사 오는 도매 요금을 계통한계가격(SMP·System Marginal Price)이라고 부른다.


국내 전력 시장은 발전 단가가 가장 높은 발전기의 원가가 그 시점 전체의 전력 도매 단가를 결정하는 구조다. 대개 LNG를 연료로 사용하는 발전 단가가 그 시점의 SMP가 된다. LNG 발전 단가가 원자력이나 석탄화력보다 비싸기 때문이다.


SMP는 한국전력과 국내 발전사의 매출과 영업이익을 결정하는 핵심 변수다. SMP가 올라가면 한전의 수익은 악화할 수밖에 없다. 한전이 소매 요금을 마음대로 올리지 못하는 상황에서 도매 요금이 올랐다고 해서 바로 소매 요금으로 전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장기화로 LNG 가격이 치솟으며 SMP도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육지의 가중 평균 SMP는 지난 9월 11일에는 177원까지 올랐다. SMP는 올해 들어 지속적인 상승세를 나타냈다. 1월 103.53원이었던 월평균 육지 SMP는 2월 108.52원, 3월 109.99원, 4월 118.92원, 5월 121.32원, 6월 114.1원, 7월 133.8원, 8월 148.39원으로 꾸준히 올랐다.


한전의 손익 분기점이 되는 기준은 SMP 146원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준대로라면 한전은 이미 8월에 적자 구간에 들어섰다. LNG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한다면 한전의 적자는 불 보듯 뻔하다.

제2의 한전채 사태 오나

이미 한전의 재무구조는 악화할 대로 악화한 상태다. 2026년 상반기 기준 총 누적 부채는 210조 7000억원에 달한다. 하루 이자만 115억원 수준이다.


한전의 부채가 늘어난 것은 2021년 러-우 전쟁 이후 LNG, 석탄 등 연료비가 폭등했으나 이를 소매 요금에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국제 LNG 가격이 폭등하면서 SMP가 치솟았으나 정부는 물가 안정과 국민부담 완화를 이유로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했다. 한전은 2022년 32조7000억원의 연간 최대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한전은 운전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매달 수조원대의 한전채를 발행했다. 초우량 한전채가 시장에 최고 5~6%의 금리로 풀리자 자금이 한쪽으로 쏠렸다. 대신 민간기업의 회사채는 외면받아 자금 경색에 빠졌다. 이른바 '한전채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정부는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한국전력공사법을 개정해 한전채 발행 한도를 '자본금+적립금의 2배'에서 한시적으로 최대 5~6배까지 대폭 확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은 2027년 말 일몰될 예정이다. 또 전력 도매가격을 정해진 기준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SMP 상한제'를 한시적으로 도입하고 단기 금융 시장 안정을 위해 50조원 이상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가동했다.


하지만 빛으로 빚을 돌려막는 해법으로 한전의 재무 상황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한전채 발행 한도의 확대 조치의 일몰 시한이 1년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한전의 재무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 중동 전쟁으로 연료 가격이 고공 행진하면서 금융 시장의 불안감은 고조되고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발간한 '2026 국정감사 이슈 분석 보고서'에서 "일몰 조항이 연장되지 않을 경우 한전은 자본금과 적립금을 합한 금액의 2배를 초과해 사채를 발행할 수 없게 되고 이 경우 한전이 전력 구매 대금을 지급하지 못해 전력 생태계 및 금융·자금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전기 도매 요금을 일정 기준 이상 올리지 못하는 SMP 상한제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SMP 상한제를 실시할 경우 민간 발전사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이 피해를 보전하기 위해 결국은 국민의 세금을 들여야 할 수 있다. 인위적인 가격 통제로 시장이 왜곡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는 한전의 전기요금을 연료비에 연동해 결정할 수 있는 구조를 안착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전의 주택용, 일반용 전기 요금은 올해 3분기까지 12분기 연속, 산업용 요금은 6분기 연속 동결된 상태다.


한전의 재무 상황이 개선되지 않은 상황에서 투자 부담은 점차 가중하고 있다. 반도체, AI데이터센터 등 정부의 메가 프로젝트를 지원하기 위해 대규모 송배전망을 확충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내년 한전에 5000억원을 추가 출자할 계획이지만 근본적인 해법은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전문가들은 SMP가 급등할 때는 석탄 화력을 이용하는 방안도 제안하고 있다. 정용헌 ㈜유빅 대표(전 아주대 교수)는 "현재 동해안에 있는 민간 석탄화력발전소들은 송전망 포화 등으로 인해 이용률이 20~30% 수준에 머물고 있다"며 "비상시에는 송전망 활용을 높이기 위해 신뢰도 기준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현행 N-2(두 개 송전선이 동시에 고장 상황을 가정) 기준을 완화한다면 동해안 석탄화력발전기를 더 가동할 수 있다. 저렴한 석탄화력발전소의 가동을 늘리면 한전의 전력 구매 비용이 줄어든다.


정부의 2040년 석탄화력발전소 폐쇄 방침에도 불구하고 국회는 지난 8월 일부 석탄화력발전소를 안보 전원으로 남겨둘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포함된 '석탄화력발전소 노동자 및 폐지지역 지원 특별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LNG, 장기적으로 하향 안정화될 수도

현재 LNG 가격은 중동 전쟁 이전보다는 2배 정도 가격이 오른 수준이지만 러-우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위기 때보다는 낮다. 전문가들은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내년까지도 LNG 가격이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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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2028~2029년에는 다시 LNG 가격이 하향 안정화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김태식 연구위원은 "미국이 LNG 공급량은 가파른 속도로 올리고 있다"며 "2028년부터는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강희종 에너지 스페셜리스트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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