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된 계(系·system)는 밖에서 에너지를 공급하지 않는 한 질서에서 무질서로 향해간다(엔트로피의 법칙). 얼음이 녹아 물이 되는 현상은 대표 사례다. 네팔 대홍수 역시 빙하가 녹아서 벌어진 참사라는 점에서 엔트로피의 법칙이 인간 세상에 던지는 화두를 곱씹게 된다.
비유하자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도 이와 비슷한 처지가 아닐까 싶다. 물리적 엔트로피처럼 수식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개방성을 잃고 혁신이라는 '에너지'가 줄어든다면 시스템은 무질서로 향해간다는 얘기다.
트럼프의 자국우선주의(MAGA)와 미·중 갈등으로 글로벌 경제가 점점 블록화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자본과 기술이라는 '에너지'를 주고받던 개방계에서, 교류가 줄어든 '고립계'로 향해가는 흐름이다.
40조 달러를 넘어선 미국의 나랏빚은 이 흐름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수록 미국 정부는 인위적으로 금리를 억누르는 방식에 기대고 있다. 시장 본연의 가격 발견 기능을 갉아먹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선 2차대전 종전 전후 정부와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위적으로 억눌렀던 YCC(Yield Curve Control) 정책을 다시 쓰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YCC의 작동 원리는 단순하다. 미 국채 금리를 명목 경제성장률 아래로 억눌러 놓는 게 핵심이다. 다른 조건이 같다면 정부의 이자 부담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을 낮출 수 있다. 다른 이름의 정책을 쓰더라도 본질은 비슷하다. 국채 금리를 인위적으로 낮춰 시간이 흐름에 따라 빚 부담을 녹여버린다는 것이다.
이처럼 '보이는 손'이 작용하는 자본주의는 자유 시장이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무질서)을 높인다. 이는 자원 배분의 왜곡과 함께 인플레이션을 구조적으로 고착화할 위험을 안고 있다. 원자재비, 물류비, 인건비 등이 상승해 기업을 압박한다.
이러한 무질서는 수출주도형 한국 경제에 큰 위협이지만, 다행히 지금까지 완전히 닫히지 않은 시스템 속에서 한국은 경쟁우위의 혜택을 봤다. 코스피(유가증권시장) 소속 전체 기업 영업이익은 올해 상반기 388조원에 달했다. 작년 연간 245조원을 훌쩍 넘었다. 가격 결정력을 가진 반도체, 전력기기 분야 대기업 덕분이다.
하지만 다른 대기업들은 안심할 수 없다. 연구개발(R&D)과 설비투자(CAPEX)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까닭이다. 삼전닉스(삼성전자·하이닉스) 같은 절대적 기술 우위를 확보하거나 스마트 팩토리 등을 통해 월등한 생산성을 확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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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무질서)가 쌓여가는 시스템 속에서 '외부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내 활력을 유지하는 생존 전략이다. 지금처럼 잉여현금흐름(FCF)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을 때 R&D와 CAPEX를 최대치로 늘려야 한다.
결국 녹아서 사라지는 운명을 마주하지 않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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