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파워 시대 적대적 관리에서 해법 경쟁으로

윤종록(KAIST 겸임교수)

윤종록(KAIST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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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대의 리더십은 그 시대의 문제를 닮는다. 산업화 시대의 과제는 비교적 분명했다.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나라에서 목표를 하나로 모으고, 속도를 높이며, 정해진 방향으로 전진해야 했다.


'나를 따르라'는 깃발리더십은 그 시절에 강한 추진력이었다. 선두가 깃발을 들면 조직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성과는 얼마나 빨리 따라붙느냐로 측정됐다. 그것은 명령과 동원, 통제를 통해 힘을 집중시키던 하드파워 시대의 리더십이었다.

그러나 세계는 이미 매력과 공감, 연결과 협력으로 사람과 자원을 움직이는 소프트파워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오늘의 문제는 하나의 깃발 아래 줄을 세운다고 쉽게 풀리지 않는다. 인공지능 세상은 기술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노동·윤리·에너지·안보가 얽힌 문명사적 전환이다. 기후위기, 저출생, 지역소멸, 공급망 재편도 어느 한 부처, 한 기업, 한 세대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다.


0과 1만 존재하는 2진법이 아니라 그 사이에 수많은 변수가 박혀 있는 다진법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제 리더의 능력은 있지도 않은 정답을 고집스럽게 독점하는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답을 조합해 더 나은 해법을 만드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정치는 여전히 낡은 운동장에 머물러 있다. 진영은 깃발을 더 높이 세우고, 상대를 설득할 대상이 아니라 제거할 장애물로 취급한다. 끼리끼리, 올 오어 낫싱(all or nothing), 상호부정이 정치의 문법이 되면 타협은 배신으로, 경청은 나약함으로 오해된다. 정책의 옳고 그름보다 '누가 말했는가'를 먼저 따지는 순간 정치는 해법의 경쟁이 아니라 적대의 관리로 전락한다.


세계가 연결의 밀도를 높이는 동안 우리가 편 가르기의 밀도를 높이고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역주행이다. 우리가 2020년 세계 10위의 국내총생산(GDP)을 달성한 이후 거의 매년 한 단계씩 내려가는 역주행 상황이다. 한 자릿수 진입 전략은 달라야 한다.


반면 세계의 혁신기업들은 정반대로 움직인다. 반도체 하나에도 설계, 소재, 장비, 소프트웨어, 데이터, 에너지와 글로벌 공급망이 함께 작동된다. 인공지능 역시 뛰어난 알고리즘 하나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연구자와 현장 전문가, 디자이너와 법률가,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서로의 빈틈을 메워야 시장에 도달한다.


혁신기업은 '내 편인가'를 묻기보다 '어떤 문제를 함께 풀 수 있는가'를 묻는다. 있지도 않은 완벽한 하나를 고집하기보다 불완전한 여러 힘을 연결해 전에 없던 가치를 만든다. 조직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부서마다 자기 성과만 지키면 기술은 연구소에, 고객의 목소리는 영업 현장에, 위험 신호는 감사 부서에 갇힌다.


혁신은 이 흩어진 조각들이 같은 문제를 바라볼 때 시작된다. 어울리더는 가장 뛰어난 부서를 뽑는 심판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부서가 정보와 권한을 나누도록 공동의 목표와 책임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어울림은 좋은 분위기가 아니라 성과가 흐르는 구조다.


나는 이 시대의 소프트파워를 순 우리말이 결합된 '어울리더십'이라 부르고자 한다. 어울린다는 말은 자기 색을 지우거나 한발 물러 양보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사람이 자기다움을 지닌 채 공동의 목적을 향해 힘을 보태도록 만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지휘자가 모든 악기를 직접 연주하지 않듯, 어울리더는 모든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질문으로 관점을 열고, 경계를 넘어 자원을 연결하며, 실패를 견디고, 이견을 경청하며, 마지막에는 결과에 책임지는 사람이다.


우리 역사에도 그 뿌리는 깊다. 세종은 신분의 벽을 넘어 장영실의 재능을 쓰고, 집현전의 다양한 지혜를 국가의 역량으로 엮었다. 정조는 규장각과 초계문신제를 통해 인재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새로운 생각의 통로를 만들었다. 다산은 경전의 이상과 백성의 현실, 학문과 기술, 원칙과 실행을 한데 묶어 개혁의 설계도로 바꾸었다. 이들의 위대함은 혼자 빛난 데 있지 않다. 서로 다른 지식과 생각을 공공의 성과로 바꾼 데 있다.


진영은 나눌수록 반감(半減)된다. 국가도 기업도 이제 리더에게 '누가 나를 따르는가'보다 '누구와 무엇을 연결했는가'를 물어야 한다. 여야가 상대의 정책에서도 쓸 것을 찾고, 정부가 기업과 시민사회의 지혜를 빌리며,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속도와 지역의 현장을 품을 때 해법은 비로소 입체화 된다. 중간지대는 회색지대가 아니라 가능성이 발아하는 공간이다. 반대편의 장점을 인정하는 것은 자기 신념의 후퇴가 아니라 공동체를 앞으로 움직이는 실력이다.


물론 어울리더십은 '협치하자'는 구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함께 풀 공동의 의제를 먼저 정하고, 사실과 데이터를 공유하며, 작은 시범사업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공은 함께 나누되 실패의 책임은 지도자가 먼저 져야 한다. 이견을 공개적으로 말해도 불이익이 없고, 일단 합의한 뒤에는 한 팀으로 실행하는 규칙도 필요하다. 어울림을 선의에 맡기지 않고 제도와 습관으로 만드는 것, 그것이 AI시대의 리더십이다.


깃발은 사람을 줄 세우지만 어울림은 역량을 엮는다. 깃발 아래에서는 선두 한 사람만 보이지만, 어울림 속에서는 각자의 다름이 공동의 자산이 된다. 산업화의 성공을 이끈 깃발리더십을 부정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하드파워가 역할을 다하고 소프트파워가 국력을 가르는 세상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성공의 문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강한 지도자는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아니다. 다른 목소리들이 하나의 해법을 만들도록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이다. 오로지 0과 1밖에 모르는 우리 사회, 이제는 깃발을 내리고 그 사이에 숨어있는 수많은 연결의 손을 꼭 쥐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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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록(KAIST 겸임교수,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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