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티나 라발리아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인터뷰
"젊은 한국 작가들, 감정·공감·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에 주목"
"백남준의 유산은 기술을 인간화하는 태도…독창성도 문화적 맥락 속에서 봐야"
"현장 경험이 기사·전시로 이어지는 선순환 중요"…시장 노출 이후의 과제 짚어

백남준 이후의 한국미술은 어디로 가고 있을까. 텔레비전 다음에 컴퓨터가 왔고, 이제 인공지능이 등장했으니 더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는 작가를 찾아야 할까. 영국 테이트 모던의 발렌티나 라발리아 큐레이터가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기술의 진보보다 그 안에 놓인 인간의 문제였다.

발렌티나 라발리아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백남준 회고전 등을 기획한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작품을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면 독창성에 관한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문화적 맥락을 함께 살피는 미술관의 시선을 강조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발렌티나 라발리아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 백남준 회고전 등을 기획한 그는 아시아경제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작품을 피상적으로 이해한다면 독창성에 관한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다”며 문화적 맥락을 함께 살피는 미술관의 시선을 강조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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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젊은 한국 작가들이 감정과 공감, 인간 사이와 인간을 넘어선 연결에 관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기술과 관계를 맺거나 전자·디지털 도구를 작업 과정에 활용하면서도 말입니다."


백남준 회고전 기획에 참여했던 라발리아는 이번 한국 방문에서 기대 이상의 활력을 느꼈다고 했다. 상업적 관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실험적이고 비판적인 작업을 하는 작가들이 많았고, 그들의 문제의식이 생각할 거리를 던졌다는 평가였다. 최근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현장에서 만나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업과 세계 미술관의 수집 기준을 물었다.

백남준의 유산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

라발리아는 젊은 작가들이 포스트 코로나와 기술 과잉의 시대에 감정과 공감, 연결이라는 문제를 선명하게 다루고 있다고 봤다. 이를 백남준이 기술을 인간화하려 했던 태도의 연장선에서 읽었다. 백남준에게는 기술에 대한 낙관과 신랄한 비판이 함께 존재했다는 것이다. "백남준이 한국미술의 토대를 이루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한국 현대미술에서 기술을 활용하고 사유하는 데 풍부한 토양을 제공했을 것입니다. 그 영향이 드러납니다."


'백남준의 후예'를 찾는 익숙한 방식과는 조금 다른 시선이다. 어떤 장비를 사용하고 어떤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가보다, 그 기술을 통해 무엇을 경험하게 하고 어떤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가를 묻는다. 기술의 종류가 바뀌어도 예술이 붙드는 질문은 인간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한국미술을 '첨단기술을 잘 다루는 나라의 예술'로 소개하는 데서 한 걸음 더 들어가게 한다. 디지털 도구를 사용한다는 사실만으로 작품의 의미가 설명되지는 않는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과 관계를 어떻게 바꾸는지, 작가가 그 변화에 어떤 질문을 던지는지까지 살펴야 한다는 얘기다.

백남준의 ‘TV 부처’(1974)가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 회고전에 설치된 모습. 부처상이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작품으로, 기술과 인간,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탐구한다. 발렌티나 라발리아 큐레이터는 백남준이 기술을 인간화하려 했던 태도가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도 풍부한 토양이 됐다고 평가했다.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Andrew Dunkley  Tate

백남준의 ‘TV 부처’(1974)가 2019년 영국 테이트 모던 회고전에 설치된 모습. 부처상이 폐쇄회로 카메라를 통해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작품으로, 기술과 인간, 전통과 현대의 관계를 탐구한다. 발렌티나 라발리아 큐레이터는 백남준이 기술을 인간화하려 했던 태도가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업에도 풍부한 토양이 됐다고 평가했다. Estate of Nam June Paik, Photo: Andrew Dunkley T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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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모른다면 독창성도 피상적인 말"

그렇다면 테이트와 같은 세계 미술관은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까. 독창성인가, 지역적 맥락인가, 더 넓은 미술사와의 관계인가. 라발리아는 이 요소들을 따로 떼어 볼 수 없다고 답했다. "예술적 실천이 등장한 문화적 맥락은 근현대미술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는 데 근본적입니다. 작품을 피상적인 수준에서만 이해한다면 독창성에 관한 질문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독창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작품 자체의 힘과 감각적·정서적으로 소통하는 능력도 중요하다고 분명히 말했다. 작품이 어디에서, 어떤 역사와 사회적 조건 속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일과 작품 자체의 힘을 평가하는 일은 연결돼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적이어야 세계적이다'라는 오래된 명제로 돌아가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출신지가 작품의 가치를 보증하는 것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형식을 따랐다고 그 가치가 입증되는 것도 아니다. 작품이 놓인 구체적인 맥락을 이해해야 그 작업이 무엇을 새롭게 하고 있는지 판단할 수 있다는 논리다.


라발리아는 서구 모더니즘을 모든 근현대미술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삼는 시각에서도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구 모더니즘이 더 이상 모든 근현대미술을 재는 기준이 아니게 되면, 근대미술의 역사는 상당히 다르게 보입니다."


한국 작가가 세계 미술관에 들어가기 위해 기존의 서구 미술사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생각과 거리를 두는 발언이다. 오히려 다양한 지역의 작업을 통해 미술관이 이해해온 미술사의 범위 자체를 넓혀야 한다는 관점이다.

발렌티나 라발리아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가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기획한 전시 ‘일렉트릭 드림스: 인터넷 이전의 예술과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젊은 작가들이 기술을 통해 감정과 공감,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탐구하는 점에 주목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발렌티나 라발리아 영국 테이트 모던 큐레이터가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에서 자신이 기획한 전시 ‘일렉트릭 드림스: 인터넷 이전의 예술과 기술’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한국 젊은 작가들이 기술을 통해 감정과 공감, 인간과 비인간의 연결을 탐구하는 점에 주목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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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표 다음에 필요한 것

최근 한국미술의 시장적 활력은 작가들의 활동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다. 그러나 가격과 판매 실적은 그 작품이 어떤 역사적 맥락에서 나왔고 무엇을 새롭게 제안하는지까지 설명해주지는 않는다. 라발리아의 답변은 시장의 관심이 지속적인 미술관 전시와 소장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한 다른 종류의 작업을 생각하게 한다.


그가 강조한 것은 해외 큐레이터와 비평가가 한국의 미술계를 직접 경험할 기회였다. 작품을 보고 작가·큐레이터와 대화하는 경험이 기사와 전시로 이어지고, 다시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큐레이터들이 작품을 직접 경험하고 현지 작가·큐레이터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아질수록, 기사와 전시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그 작업을 접하게 됩니다. 그것이 다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선순환을 만들어냅니다."


라발리아는 이번 방문을 통해 과거의 작업들이 서로 어떻게 이어지고 젊은 세대의 작업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더 분명하게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웠지만, 더 오래 머물며 그 층위들을 깊이 살펴보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번의 방문이 곧바로 전시나 소장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가 말한 것은 작품을 보고, 대화하고, 역사적 맥락을 이해한 경험이 다시 기사와 전시, 새로운 관심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다.


한국미술이 세계에 더 많이 알려지는 것과 세계미술사를 더 풍부하게 만드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그 사이에는 작품을 오래 들여다보고, 그 맥락을 연구하며, 아직 충분히 알려지지 않은 작업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시간이 놓여 있다. 시장이 작품의 현재 가격을 묻는다면, 미술관과 비평은 그 작품이 앞으로 어떤 의미로 남을지를 묻는다. 라발리아의 한국 방문은 그 두 질문이 만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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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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