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기메박물관 세실 다조르 현대미술 큐레이터 인터뷰
한국 작가 28명 작품 46점 기증받아…"1960년대 역사전 계기 되길"
"유명 작가·운동에 집중된 국제적 인정, 미술사의 다양성과 복잡성 가려"

한국미술을 세계에 알리는 데 성공한 이름들이 있다. 단색화가 대표적이다. 그렇다면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만큼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도 충분히 이해되고 있을까. 세실 다조르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의 대답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그는 한국미술의 국제적 인지도가 높아진 이면에서 몇몇 유명 작가와 미술운동에 집중된 관심이 다른 역사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세실 다조르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단색화의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그동안 가려졌던 실험미술·개념미술·여성미술 등도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세실 다조르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단색화의 역사적 중요성과 함께 그동안 가려졌던 실험미술·개념미술·여성미술 등도 조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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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 인정은 몇몇 유명 작가나 미술운동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결과 미술사의 다양성과 복잡성이라는 역사적 맥락은 보이지 않게 되고 잊힙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진행된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으로 한국을 찾은 다조르를 지난 3일 현장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통해 그에게 한국미술의 국제적 위상과 미술관의 수집·전시 방향을 물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해외 미술계 전문가 15명이 참여해 한국 작가 9명의 작업실과 주요 미술기관, 광주·부산비엔날레 등을 방문했다.


다조르의 문제의식은 단색화의 성취를 부정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는 프랑스에서 단색화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가 열린 적이 없다는 점을 먼저 짚었다. 한국에서는 이미 익숙한 미술사의 한 장면이 프랑스 관객에게는 여전히 충분히 소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역사적으로 보여주려면 단색화의 중요성과 지배적 위치를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

그다음에야 그의 질문이 날카로워진다. 한 미술운동이 한국미술을 대표하게 되는 동안, 다른 미술은 어디에 있었는가.


"동시에 다른 미술운동과 경향도 보여줘야 합니다. 단색화의 지배적 위치가 비정형 추상, 실험미술, 개념미술, 여성 작가들의 작업을 어떻게 배경으로 밀어내고 보이지 않게 했는지도 설명해야 합니다."


이는 단색화 다음에 새로운 유행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과 다르다. 이미 성공한 미술운동을 다른 이름으로 교체하는 대신, 그 운동이 등장하고 주류가 되는 과정까지 역사로 살펴야 한다는 뜻이다. 다조르가 말하는 공공미술관의 역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미술을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시각에 맞서 여러 의미와 관점을 제시하고, 작품을 더 정확한 역사적 맥락 속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설치된 이슬기 작가의 ‘달 다리(DAL DARI, La Lune et les Jambes)’. 전시장 천장에 길게 늘어뜨린 다채로운 선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한국의 민속적 믿음과 전통 공예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세실 다조르 기메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다. Nicolas Fussler. 기메박물관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에 설치된 이슬기 작가의 ‘달 다리(DAL DARI, La Lune et les Jambes)’. 전시장 천장에 길게 늘어뜨린 다채로운 선들이 공간을 가로지르며 한국의 민속적 믿음과 전통 공예를 현대적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세실 다조르 기메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다. Nicolas Fussler. 기메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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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미술 46점 기증…"1960년대 역사전 계기 되길"

이러한 문제의식은 기메박물관의 수집 방향과도 연결된다. 다조르는 박물관이 최근 한국 작가 28명의 작품 46점을 기증받았다고 밝혔다. 주로 20세기 후반에 활동한 작가들의 작품이다. 그는 "이번 기증이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한국 현대미술을 역사적 관점에서 조망하는 대규모 전시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46점이라는 숫자보다 주목할 대목은 그가 기증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작품을 소장품 목록에 추가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한 시대의 미술을 다시 살펴볼 연구와 전시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기메박물관의 공식 2026~2030년 연구계획에도 한국 단색화를 주요 연구 대상으로 삼고, 기증 컬렉션과 연계해 연구를 발전시키는 방향이 명시돼 있다. 박물관은 단색화를 단순히 단색의 형식으로 환원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에서 살펴보겠다는 취지를 밝히고 있다.


기메박물관은 동시대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작업도 이어가고 있다. 현재 선보이는 이슬기 작가의 대형 설치작 '달 다리(DAL DARI, La Lune et les Jambes)'가 한 사례다. 다조르가 기획한 이 전시는 박물관 외벽과 내부 공간을 활용해 한국의 민속적 믿음과 전통 공예, 현대적 조형 언어를 연결한다. 전시는 지난 6월 6일 개막해 내년 2월 8일까지 이어진다.


다조르의 설명을 따라가면 동시대 작가를 소개하는 일과 과거의 미술사를 연구하는 일은 별개의 과제가 아니다. 오늘의 작업이 어떤 역사적 토양에서 나왔는지 이해할 때, 해외 관객은 한국미술을 몇몇 대표 양식이나 작가의 이름으로만 기억하지 않을 수 있다. 그가 기메박물관의 수집을 아시아 각 지역의 미술사를 다양한 맥락에서 연구하려는 기관의 정책과 연결하는 이유다.

세실 다조르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에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미술의 국제적 인지도가 일부 작가와 미술운동에 집중되면서 다양한 역사적 맥락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세실 다조르 프랑스 국립기메동양박물관 현대미술 담당 큐레이터가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프로그램에서 한국 현대미술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다. 그는 한국미술의 국제적 인지도가 일부 작가와 미술운동에 집중되면서 다양한 역사적 맥락이 충분히 알려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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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미술의 지도가 넓어졌다…관점을 바꾸는 데는 시간 필요"

한국 작가의 해외 전시가 늘어나는 것과 세계 미술관의 영구 소장품으로 자리 잡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다조르에게 그 사이의 문턱을 물었다. 그는 작품의 예술적 가치만으로 수집이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미술관의 연구·전시 방향이 중요하고, 전시는 새로운 작품을 수집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기증처럼 예상하지 못한 기회도 소장품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그는 세계 현대미술의 지리적 범위가 199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빠르게 확대됐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큐레이터들이 새롭게 등장한 미술계와 그 역사를 충분히 이해하고 수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가를 발견하는 일만큼이나, 그 작가를 이해하기 위해 기존의 미술사적 관점을 바꾸는 일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우리는 여전히 전환의 시기에 있습니다. 관점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한국미술의 국제적 존재감이 커진 지금, 다조르가 제시하는 다음 과제는 더 많은 대표작을 세계에 내보내는 일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미 알려진 이름의 성취를 제대로 설명하면서, 그 이름 뒤에 가려진 작가와 운동, 서로 다른 시대의 작업을 함께 읽을 수 있는 역사를 만드는 일이다. 한국미술이 세계 미술관에 남는다는 것은 작품이 수장고에 들어가는 일인 동시에, 그 작품을 이해하는 미술사의 자리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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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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