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들쥐'
신선한 설정을 스스로 배신해

넷플릭스 시리즈 '들쥐'는 중반까지 현대 사회의 맹점을 타격한다. 물리적 폭력 없이 타인의 지문과 데이터, 사회적 평판을 탈취해 한 인간의 실존을 지워버린다. 오직 스펙과 재산이라는 껍데기만으로 개인을 증명해야 하는, 현대 자본주의의 섬뜩한 자화상이다.


넷플릭스 '들쥐' 스틸 컷.

넷플릭스 '들쥐' 스틸 컷.

AD
원본보기 아이콘

시청자는 누가 가짜인지 추적한다. 왜 그토록 치밀하게 원본의 삶을 탐하는지도 함께 쫓으며, 강렬한 피카레스크(Picaresque·악인들의 서사) 스릴러에 기꺼이 탑승한다. 이 영리한 설정은 오락적 쾌감을 넘어, 타인의 성취를 모방하고 탈취해서라도 생존을 갈구하는 이 시대의 씁쓸한 병폐를 해부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

하지만 후반부부터 스스로 구축한 철학적 무대를 무참히 걷어차 버린다. 제문재(류준열)와 서유민(박윤호)이 얽힌 과거의 원죄, 위조된 정체성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로 렌즈를 깊숙이 밀어 넣어야 할 시점에 불필요한 조연들의 에피소드로 극을 채운다. 사채업자 노자(설경구)를 둘러싼 조폭 조직의 진부한 이권 다툼, 형사 박순용(이규형)의 얄팍한 입양 서사와 이에 얽힌 잔가지가 대표적인 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특유의 관성적인 10부작 편성이 낳은 참사다. 물리적 타임라인을 기계적으로 채우기 위해 투입된 파편화된 주변부 이야기가 극의 본류를 게걸스럽게 잠식한다. 섬세한 심리 스릴러로 직진해야 할 작품이 낡고 거친 범죄 액션물과 엉성한 수사극 사이를 표류하는 것이다. 그 사이 심층적인 사회 비판에 도달할 기회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넷플릭스 '들쥐' 스틸 컷.

넷플릭스 '들쥐'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지금 우리 사회가 목마른 이야기는 예측 가능한 범죄 조직의 소탕 작전이나 낡은 수사물의 동어반복이 아니다. '들쥐'는 시청자에게 치열한 무한 경쟁 속에서 벼랑 끝에 몰린 청년들이 왜 자신의 고유성을 버리고 타인의 서사까지 훔쳐야만 했는지, 참혹한 심연을 비추는 거울이 될 수 있었다. 타인의 삶을 전시하고 질투하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의 텅 빈 자아가 어떻게 파멸을 잉태하는지도 비출 수도 있었다. 훔친 삶으로 살아남은 원본의 불안과, 스스로 완벽한 껍데기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은 복제본의 허무를 더 집요하게 파고들었어야 했다.


노자와 박순용에게서 반복해 나타나는 거칠지만 사연 있는 조력자나 상처 품은 예민한 추적자의 전형성도 주제 의식의 실종을 부추기는 요소다. 절정인 여객선 대치 장면에서 드러나는 제문재와 서유민의 초연한 얼굴도 빼놓을 수 없다. 삶과 연인을 통째로 잃은 자의 처절한 분노가 휘발돼, 시청자가 이 비극적 복수극에 감정적으로 동기화할 통로가 차단된다.

AD

넷플릭스 '들쥐' 스틸 컷.

넷플릭스 '들쥐' 스틸 컷.

원본보기 아이콘

초반의 영리한 설정이 뿜어내던 서늘한 매력은 결국 10부작이라는 거대한 덫 안에서 빛을 잃었다. 설화 속 들쥐가 사람의 손톱을 먹고 그 삶을 통째로 삼켰듯, 이 시리즈도 좋은 소재를 삼킨 채 정작 자신의 정체성은 지키지 못했다.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적 성찰을 포기하고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편성의 관성에 타협한 창작자의 나태함이 빚어낸 아쉬운 결과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