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시국은' 7인 전문가 교차 검증…박중양이 일본 유학 때 쓴 이름 확인
1932년 제작 인장·일본 사찰 기록 등 근거…유홍준 "기본 책무 미흡" 재차 사과

국립중앙박물관이 애국지사 박원근의 글씨로 소개했던 전시품이 친일반민족행위자 박중양의 작품이라는 최종 조사 결과를 내놨다. 두 인물이 같은 이름을 사용한 사실을 확인하지 못한 채 전시에 출품한 것으로, 박물관은 유가족과 국민에게 다시 사과하고 전시품 검증 절차를 강화하기로 했다.

‘일반시국은’ 유묵이 철수 전에 전시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일반시국은’ 유묵이 철수 전에 전시된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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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은 7일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에 전시했다가 외부 제보로 철수한 유묵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에 대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서예·근현대사·고문헌·보존과학 분야 전문가 7명의 교차 검증을 종합한 결과, 애국지사 박원근(1912~1950)이 아니라 박중양(1874~1959)이 일본 유학 시절 '박원근(朴源根)'이라는 이름으로 남긴 글씨로 판단했다.


'일반시국은'은 '한 그릇의 밥도 다 나라의 은혜다'라는 뜻이다. 박물관은 임진왜란 당시 최초의 의승병장인 영규대사가 승병을 모집할 때 한 말로 전해지는 이 문구의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작품을 선정했다. 지난 7월1일 개막한 특별전에서 애국지사 박원근의 유묵으로 소개했으나, 작품 말미에 적힌 '박원근'이 친일파 박중양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8월10일 철수했다. 박물관은 이틀 뒤 검증 미흡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당초 작품은 충북 보은 출신 독립운동가 박원근의 글씨로 알려졌다. 유가족이 전시실에서 선조의 유품으로 알고 작품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 사진도 공개됐다. 박물관의 필자 오인은 작품의 미술사적 정보뿐 아니라 독립운동가의 행적과 유가족의 기억을 잘못 연결한 문제로 이어졌다.


조사에서 핵심 근거가 된 것은 필적과 인장이다. 전문가들은 '일반시국은'과 박중양의 다른 글씨를 대조해 획 처리 방식에서 유사한 특징을 확인했다. 작품 상단에 찍힌 두인(頭印)의 문구 '규점상가마 언점불가위(圭?尙可磨 言?不可爲)'는 1932년 말 서예가 김태석이 박중양에게 새겨준 인장의 문구와 일치했다. '옥의 흠은 갈아 없앨 수 있지만 말의 허물은 없앨 수 없다'는 뜻으로, 중국 고전 '시경'에서 따온 구절이다.

일본 등 해외 경매 사이트에서 '박원근' 명의로 유통되는 서예 작품 여러 점도 확인됐다. 이들 작품은 '일반시국은'과 같은 글씨체와 인장을 사용했으며, 일본인에게 써준 글씨도 포함돼 있었다. 작품에 적힌 '한인(韓人)'이라는 표현 역시 대한제국기 일본 유학생이나 방문자가 일본인 앞에서 자신의 국적을 밝힐 때 사용하던 말이라는 게 조사단의 설명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묵 검증 과정 소개 과정에서 제시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과 박중양의 다른 글씨 비교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이 유묵 검증 과정 소개 과정에서 제시한 ‘일반시국은(一飯是國恩)’과 박중양의 다른 글씨 비교 모습.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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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 검증에서도 두 인물의 행적이 구분됐다. 2009년 발간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는 박중양의 이명이 박원근으로 기록돼 있다. 박중양의 회고록 '술회'와 대한제국 관원 이력서에 남은 일본 유학 및 러일전쟁 통역관 활동 기록은 일본 측 사찰 기록에 등장하는 박원근의 행적과 일치했다. 박물관은 박중양이 일본 유학 시기까지 박원근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1903년 귀국 무렵부터 박중양으로 이름을 바꾼 것으로 봤다.


박중양은 일본 유학 당시 여러 지역을 돌며 휘호를 팔아 체류 경비를 충당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반면 독립운동가 박원근은 지하조직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치렀으며 일본에 머문 기록이 없다. 전문가들은 독립운동가 박원근이 해외에 유통될 만큼 다수의 서예 작품을 남기고 일본인을 위해 휘호했다는 것은 그의 삶의 궤적과 거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보존과학 조사에서는 작품의 표구가 19세기~20세기 초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족자를 꾸민 방식과 사용된 직물 등에서 근대 일본식 표구의 특징이 확인됐다. 박물관은 필적과 인장, 문헌 기록, 표구의 제작 시기 등을 종합해 박중양의 작품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중양은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와 고문, 부의장 등을 지냈고 일본제국의회 귀족원 칙선의원으로도 선임된 인물이다. 조선임전보국단 고문으로 활동하는 등 친일 행적이 확인돼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됐다.


이번 조사로 작품의 필자는 바로잡혔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이 역사적 인물의 신원을 충분히 검증하지 않은 채 전시했다는 문제는 남았다. 박물관은 박원근 지사의 유가족에게 조사 경위와 결과를 설명하고 거듭 사과할 예정이다. 전시품과 전시내용에 대한 사전 검증을 강화하고 근현대사 분야 내외부 전문가풀도 확대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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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사실 확인은 박물관이 국민 앞에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책무인데 이에 대해 미흡했다"며 "유가족과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송구한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전시품 검증 절차를 더욱 강화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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