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로 자기 몸 그린 한국 엄마에 반했다…세계 '탑티어 미술관'이 K아트서 찾은 것
문체부·예경 주최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Dive into Korean Art)'
테이트·M+ 등 해외 전문가 15명, 한국 작가 9명 만나
김무영의 오래된 사진술과 안민정의 과학 도면에서 발견한 동시대 미술의 새로운 언어
K아트를 향한 글로벌 미술계의 관심이 아트페어의 '거래'를 넘어 미술관의 연구와 전시·소장으로 확장되고 있다. 해외 큐레이터와 미술 전문지 에디터들은 국내 작가의 작업실까지 찾아 작품이 탄생한 배경과 제작 과정을 들여다봤다. 시장에서 잘 팔리는 작품을 넘어 세계 미술계에 오래 남을 한국 작가를 찾으려는 움직임이다.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에 참여한 해외 미술계 전문가가 안민정 작가의 대형 도면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안 작가는 몸과 기억, 출산과 육아 등 사적인 경험을 수식과 기호로 표현해왔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서울역 인근 김무영(31) 작가의 작업실에는 접이식 의자가 빼곡히 놓여 있었다. 벽 쪽 모니터에서는 작품 영상이 흘렀고, 테이블에는 손때 묻은 도구와 자료가 작업 도중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해외 미술계 전문가들은 화면과 작품을 번갈아 살피며 질문을 이어갔다. 완성품을 정갈하게 진열한 아트페어 부스와 달리 작품이 만들어지는 공간과 시간까지 들여다보는 현장이었다.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6일까지 이들과 함께 김무영·안민정 등 한국 작가 9명의 작업실과 국내 주요 미술기관, 광주·부산비엔날레 등을 찾았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마련한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Dive into Korean Art)' 프로그램이다. 올해로 7회째인 행사에는 영국 테이트 모던, 홍콩 M+, 아트 두바이, 비엔나현대미술관, 미술 전문지 아트인아메리카 등에서 온 큐레이터와 에디터 15명이 참여했다. 해외 전시와 소장, 출판, 협업으로 이어질 장기적인 관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김무영의 작업은 작업실 방문의 의미를 선명하게 보여준다. 최근 서울에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오래된 사진 채색술과 가죽, 옻칠 등을 결합한 신작을 제작하고 있다. 흑백사진에 손으로 색을 입히는 기술을 익히는 데만 2년을 들였다.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는 알루미늄 캔으로 만든 핀홀 카메라를 사용했고, 소록도에서도 사진을 찍었다. 낡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기술을 되살려 오늘날 우리가 역사와 이미지를 바라보는 방식을 되묻는다.
김무영의 2024년작 ‘미간 위 집을 위한 결혼 가마’. 타조가죽과 철, 목재, 안료, 셸락, 삼베, 모시, 공단, 종이 등을 사용해 제작한 작품으로, 2024년 리움미술관 커미션으로 선보였다. ⓒ오진혁. 아트선재센터
원본보기 아이콘사진 채색술은 실제 색을 재현할 수 없던 시대의 욕망에서 출발했지만, 식민주의 시기 서구가 아시아를 바라보고 소비한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김 작가는 기술만 복원하지 않는다. 그것이 탄생한 역사적 조건까지 작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100여 년 전 사진술이 오늘날의 디지털 이미지 편집과 닮았다는 점도 그가 발견한 아이러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첫 미술관 개인전 '김무영: Pig'는 이런 문제의식을 극장으로 확장한다. '피그'는 관객에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무대 장치를 지탱하는 평형추다. 작가는 무대와 객석의 시선, 무대 뒤 구조를 드러내며 하나의 장면이 만들어지는 조건을 묻는다. 전시는 다음 달 4일까지다. 프리즈 서울에서는 갤러리 N/A를 통해 채색 사진과 가죽 조각을 선보였으며, 작품은 2만4000달러 이상에 판매됐다.
안민정(45)은 전혀 다른 형식으로 일상의 이면을 파고든다. 그의 그림에는 해부학 도면과 수식, 숫자, 기호가 빼곡하다. 멀리서 보면 의학 교과서나 기계 설계도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랑과 기억, 출산과 육아, 가족 간 갈등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후조리원 세부도'에는 출산 후 먹은 미역국 횟수까지 기록돼 있다. 안 작가는 "가까이 보면 미역국 30그릇을 먹었다는 게 진지한 이야기는 아니지 않으냐"며 웃었다.
‘2026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에 참여한 해외 미술계 전문가들이 김무영 작가의 작업실에서 작품 설명을 듣고 있다. 이번 프로그램에는 해외 큐레이터와 미술 전문매체 관계자 15명이 참여해 한국 작가 9명의 작업실과 주요 미술기관을 방문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본보기 아이콘그는 2007년부터 자신의 몸과 기억을 과학적 도면처럼 그려왔다. 출산 이후에는 작업에 '사랑'이라는 요소가 더해졌다. 부모를 향하던 서사는 남편과 자녀에게로 옮겨갔다. 안 작가는 "예술은 전시관에 걸린 결과물만이 아니라 그것을 만드는 과정까지 포함한다"고 말했다.
'Self-Portrait_Rachaph'(2024)는 지난해 뉴욕현대미술관(MoMA) 건축·디자인 부문 소장품이 됐다. 흉터와 치과 치료 흔적, 예방접종, 임신과 출산의 경험을 컴퓨터 벡터 그래픽으로 정밀하게 그린 작품이다. MoMA는 이를 전통적인 초상화가 아니라 삶의 경험이 신체에 남긴 흔적을 기록한 도면으로 해석했다. 작품은 현재 미술관 4층 'Body Constructs'전에 걸려 있다.
안 작가는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일상을 권위 있는 수학과 과학의 언어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직접 인공지능(AI)에 자신의 작품을 학습시켜 비슷한 그림을 만들어봤지만 결과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실제로 겪은 일이 아니어서 세밀한 감정과 기억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도 마우스로 선을 하나씩 그린다. 정확한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새겨진 개인의 서사다.
안민정의 2024년작 ‘자화상_라하프’. 자신의 몸과 기억, 출산과 육아의 경험을 해부학 도면과 수식, 기호로 표현한 디지털 프린트 작품이다. 106×200㎝. 안민정
원본보기 아이콘대학원 시절 공용 컴퓨터로 작업했던 그는 학자금을 갚기 위해 웹디자인 회사에 취업했다. 이후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면서도 작품을 해외 전시에 꾸준히 보냈다. 2023년 뉴욕 말보로 갤러리 전시와 2024년 상하이비엔날레를 거쳐 국내 갤러리 P21과 연결됐고, 신작 '라하프'는 MoMA 소장으로 이어졌다. 유학이나 장기 해외 체류 경험이 없는 그에게 국제 미술계가 주목한 것은 오히려 자신의 일상에 깊이 뿌리내린 작업이었다.
국제 미술관의 소장은 작가의 인지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큐레이터가 작가를 발견하고 작품을 연구한 뒤 기관의 수집 방향과 전시 서사 안에 배치하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지난 2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컨버세이션즈'에서는 해외 전문가들이 작가 선정과 협업, 한국미술의 국제적 해석, 비평과 출판의 역할을 논의했다. 작업실 방문을 국제 미술계의 실제 작동 방식과 연결하려는 시도다.
올해 프리즈 서울에는 54개 국가·지역의 관람객과 25개국 178개 미술관·기관 관계자가 방문했다. 역대 최대 규모의 국제 기관 참여다. 한국 미술에 대한 관심이 작품 거래를 넘어 연구와 수집, 전시 기획으로 확장될 기반이 넓어졌다는 의미다.
해외 전문가들이 김무영의 작업실에서 본 것은 판매를 기다리는 완성품만이 아니었다. 오래된 사진술을 다시 익힌 시간과 역사적 장소를 선택한 이유, 가죽과 무대 장치가 작품이 되는 과정까지 살폈다. 안민정의 도면 역시 한국의 육아 문화를 소개하는 데 머물지 않고 평범한 삶이 어떻게 예술의 언어로 바뀌는지를 보여준다. K아트의 다음 경쟁력은 하나의 '한국적 양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작가의 경험과 질문을 세계 미술계가 읽을 수 있는 보편적 언어로 전환하는 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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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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