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룸버그 칼럼]175년 가격 공식 깨지는 금속시장
AD
원본보기 아이콘


원자재 시장에는 오랫동안 당연한 법칙처럼 여겨져 온 것들이 있다. 금의 가치는 리디아의 크로이소스 왕 시대부터 19세기 금 본위제까지 2000년 넘게 은 가격의 약 15배 수준을 유지했다.


니켈과 구리 사이에도 비슷한 '법칙'이 존재했다. 니켈은 19세기 중반 본격적인 대규모 채굴이 시작된 이후 줄곧 구리보다 높은 가격에 거래됐다. 그러나 자연법칙처럼 여겨졌던 이 가격 관계가 이제 깨지기 직전이다. 니켈은 주로 식기와 가전제품에 쓰이는 스테인리스강 생산에 사용되는 반면 구리는 전기차와 데이터센터, 토스터, 세탁기 등의 배선에 없어서는 안 되는 금속이다.

1987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가 시작된 이후 니켈 가격은 평균적으로 구리의 약 2.85배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몇 주 사이 이 비율은 한때 1.17배까지 낮아지며 역대 최저 수준으로 좁혀졌다. 광산 현장에서는 이미 가격 역전이 벌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구리 광산업체가 금속 1톤(t)을 팔아 받는 금액이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업체가 받는 금액보다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려면 니켈이 실제로 어떤 형태로 생산되고 거래되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전 세계에서 새로 생산되는 니켈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LME에서 거래되는 고순도 니켈이 아니라 니켈선철(NPI)이다. NPI는 품위가 낮지만 스테인리스강을 만드는 철강업체들이 사용하기에 적합한 제품이다. 현재 세계 NPI 시장을 주도하는 인도네시아 광산업체들은 NPI에 들어 있는 니켈 함량을 기준으로 환산했을 때 t당 약 1만4500달러를 받고 있다.

구리 광산업체도 정련된 구리가 아니라 구리 광석을 가공한 정광을 제련업체에 판매한다. 통상 제련업체는 LME 구리 가격에서 제련·정련 수수료와 기타 조정분을 뺀 금액을 광산업체에 지급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제련·정련 수수료가 이례적으로 큰 폭의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제련업체들이 정광 속 미량 금속과 각종 부산물을 따로 추출해 판매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어서다.


이 구조를 반영하면 구리 광산업체가 실질적으로 받는 가격은 t당 약 1만5112달러에 이른다. 앞서 인도네시아 니켈 광산업체가 받는 약 1만4500달러보다 t당 612달러 더 높은 수준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지질학과 금속생산 방식이 있다. 과거 니켈과 구리는 주로 고대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황화광상에서 생산됐다. 이런 광상에는 구리와 니켈 같은 비철금속이 높은 농도로 들어 있다.


전세계적으로 이런 매장지 자체가 많지는 않은데, 최근 수십 년간 제련·가공 기술이 발전하면서 인도네시아의 방대한 니켈 라테라이트 광상을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이 지역에서는 수백만 년 동안 이어진 고온과 강우로 니켈 성분이 지표 가까이에 집중돼 있다. 라테라이트 광상은 일반적으로 채굴비가 낮다. 비슷한 지질 환경에서 형성되는 알루미늄 원료와 철광석이 주요 금속 원자재 가운데 오랫동안 가장 저렴한 축에 속했던 것도 같은 이유다.


반면 구리에는 니켈과 같은 공급 혁신이 없었다. 구리 광석의 품위는 수십 년째 떨어지고 있다. 여기에 광산업체들은 신규 광산을 찾기보다 기존 광산을 서로 사고파는 것에 더 적극적인 모습이다. 이런 흐름은 기업 인수합병(M&A) 자문을 맡는 은행들에는 호재였으나, 구리 한 톤을 새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다만 현재 나타나는 구리와 니켈의 가격 역전에는 다소 특수한 요인도 있다. 구리 제련 수수료가 마이너스까지 떨어진 것은 제련업체들이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구리 정광 확보에 나설 만큼 정광 공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중국 제련업체들은 거의 남지 않은 제련 수수료 대신 정광에서 금과 은 등 부산물을 추출해 판매하면서 수익을 보전하고 있다. 최근 귀금속 가격이 사상 최고 수준까지 오른 것도 제련업체들이 광산업체에 매우 유리한 거래 조건을 제시할 수 있게 만든 요인으로 보인다.


현재 구리와 니켈의 가격 관계에는 또 하나의 특이한 연결고리가 작용하고 있다. 구리 제련 과정에서 부산물로 생산되는 황산 가격이 급등한 것이다. 이란 전쟁으로 걸프 지역 산유국의 황 공급이 차질을 빚으면서 황산 가격도 크게 올랐다. 인도네시아 니켈업체들은 니켈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대량의 황산을 사용한다. 결국 니켈 생산에 필요한 황 수요가 구리 제련업체의 부산물 수익을 높여주는 역설적인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원자재 시장에서는 이 같은 급격한 가격 변화가 반대 방향의 수요 변화로 완화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니켈 수요는 구리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다. 초기에는 스테인리스강 수요가 성장을 이끌었고 이후에는 니켈을 많이 사용하는 전기차 배터리가 새로운 수요처로 떠올랐다. 이 같은 수요 증가세가 계속된다면 최근 급증한 니켈 공급도 결국 시장에서 흡수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니켈 가격은 다시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구리의 수요 전망은 니켈보다 훨씬 밝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가 '전기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청정에너지 확대와 에어컨 보급, 데이터센터 증가로 경제활동 전반에서 발전설비와 전력망,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리는 이런 전기화 흐름의 거의 모든 단계에서 수혜를 받을 전망이다.


니켈의 수요 쪽으로 보면 다소 불투명한 점이 있다. 최근 인도네시아의 니켈 공급 붐을 이끌었던 고니켈 리튬이온 배터리는 이제 인산염을 사용하는 중국의 최첨단 배터리 셀에 뚜렷하게 밀리는 모습이다. 이 같은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나타난 구리와 니켈의 이례적인 가격 역전이 일시적인 현상에 그치지 않고 장기화할 가능성도 있다.


이 같은 변화는 과거에 다른 금속에서도 나타났다. 19세기만 해도 알루미늄은 생산이 워낙 어려워 금보다 비싼 금속이었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부를 과시하기 위해 손님들에게 알루미늄 식기를 내놓을 정도였다. 하지만 채굴·제련 기술이 혁신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한때 금보다 비쌌던 알루미늄은 이제 음료 캔이나 샌드위치 포장지에 쓰이는 흔한 원자재가 됐다.


그렇기에 다가오는 '전기의 시대'가 니켈을 알루미늄처럼 흔한 원자재로 바꿔놓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데이비드 피클링 블룸버그 오피니언 칼럼니스트


이 글은 블룸버그의 칼럼 'A 175-Year Commodity Market Rule Is Starting to Break'를 아시아경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AD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와 블룸버그의 전략적 제휴를 통해 게재되었음을 알립니다.

유현석 기자 guspower@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