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 "국정자원 화재는 인재…무등록업체 불법하도급"
무등록업체 배터리 공사전원 8개 중 1개만 차단·절연 없이 작업
사회적 비용까지 합치면 피해 규모 3511억원 추산
화재 매뉴얼은 담당자 PC에만
주수소화 3시간 늦고 안전조사도 거부
지난해 국가 주요 정보시스템 709개를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전센터 화재는 리튬배터리 이전 공사를 무등록업체에 맡기고 기본적인 안전조치조차 지키지 않은 관리 부실에서 비롯된 '인재'였던 것으로 감사원 감사 결과 드러났다. 화재가 난 뒤에도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자체 매뉴얼에 규정된 전원 차단과 방수포 준비 등을 하지 않은 데다 전산망 손상을 우려해 소방당국에 물을 이용한 진화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하면서 피해를 키운 것으로 조사됐다.
28일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합동감식을 위해 소방, 경찰,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관계자들이 이동하고 있다.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2025.9.28 연합뉴스
감사원은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경위 및 대응·복구실태' 감사를 벌여 모두 18건의 위법·부당 사항을 적발하고 관련자 징계 등을 요구했다고 7일 밝혔다. 지난해 9월26일 오후 8시16분께 대전센터 7-1 전산실에서 발생한 화재는 리튬배터리를 옮기는 과정에서 4·5번 배터리 랙 사이에 불꽃이 튀면서 시작됐다. 불은 약 22시간 뒤인 다음 날 오후 6시께 완전히 진화됐다. 전산실은 전소됐고 709개 정보시스템 서비스가 중단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배터리 랙의 전원을 끄고 케이블을 절연 처리해야 하는 기본 조치를 하지 않은 것을 화재 원인으로 추정했다.
감사 결과 공사 과정부터 곳곳에 허점이 있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2022년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를 계기로 전산실 내 리튬배터리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지난해 6월 30억4000만원 규모의 배터리 이전 공사를 발주했다. 하지만 공동수급업체 가운데 한 곳은 자신의 공사를 다른 업체에 통째로 하도급했고, 이 업체는 다시 배터리 운반과 랙 해체·재설치 작업을 전기공사업 등록조차 하지 않은 업체 2곳에 맡겼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공정회의에 공동수급업체 직원이 한 번도 참석하지 않고 외부 인력이 투입된다는 보고까지 받았지만 실제 시공업체와 전기공사업 등록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작업계획서도 작성하도록 하지 않았고 배터리 제조사의 기술 지원 없이 작업하는 것도 그대로 뒀다. 결국 현장에서는 배터리 랙 8개 가운데 1개의 전원만 끈 상태에서 해체 작업이 이뤄졌다. 케이블 단말 절연처리도 제대로 하지 않아 불꽃이 발생한 것으로 감사원은 판단했다.
화재 대응 부실…화재 前 소방당국 안전조사 거부
화재 발생 이후 대응도 부실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의 화재대응 매뉴얼에는 배터리에 불이 날 경우 소방대가 도착하기 전 전산실 전체 전원을 차단하고 전산장비 보호를 위한 방수포를 준비하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화재 발생 10분 뒤 소방대가 도착할 때까지 이 같은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오히려 소방당국이 옥내소화전 등을 이용해 진화에 나서려 하자 국가정보자원관리원 측은 전산망 손상을 우려해 물을 이용한 진화를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본격적인 주수소화는 화재 발생 약 3시간 뒤인 오후 11시13분께 시작됐다.
매뉴얼 자체도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은 2024년 10월 화재대응 매뉴얼을 만들고도 직원들에게 배포하지 않고 담당자 PC에만 보관했다. 지난해 자체 소방훈련 역시 배터리 화재 대응 교육 없이 화재감지기 작동 등을 점검하는 평균 10분 안팎의 형식적 훈련에 그쳤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화재 전 소방당국의 안전조사까지 거부한 사실도 확인됐다. 담당 과장은 2024년 5월 유성소방서가 화재안전조사를 나오자 전산실이 보안구역이라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하도록 지시했다. 이 때문에 실제 화재가 난 7-1 전산실을 포함한 2~5층 전산실은 안전조사를 받지 않았다. 감사원은 해당 관계자에 대한 징계를 요구하고 소방청에는 고발 방안을 마련하라고 통보했다.
재해복구 체계도 부실
29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현장에서 경찰 관계자들이 불이 붙었던 무정전·전원 장치(UPS)용 리튬이온배터리를 옮기고 있다. 앞서 지난 26일 정부 전산시스템이 있는 국정자원에서 리튬이온배터리 화재가 발생해 정부 전산 서비스가 대규모로 마비된 바 있다. 2025.9.29 연합뉴스
원본보기 아이콘화재 이후 정부 정보시스템의 취약한 재해복구 체계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화재 당시 709개 시스템 가운데 별도의 재해복구시스템을 갖춘 곳은 54개로 7.6%에 불과했다. 이마저 실제 복구에 활용된 것은 7개, 전체의 0.98%뿐이었다. 복구 우선순위와 목표시간을 담은 재해복구계획도 없었다. 이 때문에 최우선 복구대상 58개 시스템 가운데 12개가 복구에 3주 이상 걸렸고 이 중 10개는 한 달 가까이 서비스를 정상화하지 못했다.
백업 관리 역시 허술했다. 백업데이터 보관시설 690개 중 237개는 원본 데이터와 같은 전산실에 있었고, 일부 시스템은 화재로 원본과 백업 데이터가 동시에 소실됐다. 전체 정보시스템의 72.6%인 501개는 2015년 이후 한 번도 복구 모의훈련을 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이 자체 추산한 시설 등 피해액은 재조달가액 기준 1070억원이지만 감사원이 한국행정학회에 의뢰해 행정서비스 중단과 데이터 손실 등 사회적 비용까지 분석한 결과 피해 규모는 3511억원에 달했다. G드라이브 등 업무자료 소실 관련 비용이 1255억원, 정부 업무 중단에 따른 시민 기회비용이 885억원으로 추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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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은 "화재 예방·초동대응부터 장애 대응과 재해복구까지 모든 분야에서 가장 기본적인 기준과 원칙을 지키지 않았다"며 이를 준수했다면 화재를 막거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고를 관리 부실이 초래한 인재로 판단했다. 감사원은 공사를 부당하게 관리한 담당자와 과장에 대해 경징계 이상, 담당 팀장에 대해서는 정직에 해당하는 중징계를 요구했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는 관련 업체 제재와 손해배상 청구 등 손실보전 방안을 마련하도록 통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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