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청화백자 모란무늬 항아리
귀족적 분위기 색상…유려한 생김새
풍요 속 빈곤 우리의 모습 뒤돌아 봐

[오래된 미래]늘 쓰는 그릇에 조선의 꿈을 담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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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거 중에서 뭘 제일 좋아하세요?" 학예연구사로 일하다 보면 가끔 이런 질문을 받곤 한다. 그러면 내 대답은 대개 이렇다. "조선백자를 좋아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면 이렇게 덧붙인다. "조선백자 중에서도 19세기 경기도 광주 분원(分院)에서 나온 청화백자 모란무늬 항아리, 그 청백색 빛깔의 둥근 항아리를 좋아합니다."


살짝 짓누른 공에 약간 높은 입과 굽이 달리고, 거기 청화-산화코발트로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을 그려 넣어 구운 항아리다. 꽤 흔한 형태에 흔한 문양이다. 지금 남아 있는 수량도 제법 많아서, 골동품 가게에서 팔리는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다. 입술 아래 살짝 턱이 있는 걸 보면 원래는 뚜껑이 있었던 것인데, 남아 있는 걸 자주 보진 못했다. 애당초 뚜껑은 어떻게든 달아나기 쉬운 물건이니까. 그 시절에는 이 항아리에 꿀이나 장 같은 것들을 담았던 게 아닐까 싶다.

조선 청화백자의 전성기는 보통 19세기 초·중반이라고들 이야기한다. 정치적으로는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었지만, 오히려 문화적으론 서울에 오랫동안 살아온 양반 계층인 '경화사족(京華士族)'이 누리고자 했던 도시 사대부 취향이 꽃을 피웠다고나 해야 할까. 추사 김정희(金正喜·1786~1856)가 연경을 다녀와 자기 뜻을 조선 천지에 펼치던 때가 이때였다.


조선시대 제작된 백자 청화 모란무늬 항아리. 높이 15.7㎝, 입지름 10.3㎝, 바닥지름 9.9㎝.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시대 제작된 백자 청화 모란무늬 항아리. 높이 15.7㎝, 입지름 10.3㎝, 바닥지름 9.9㎝. 국립중앙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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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 분야에서도 그런 경화사족의 취향이 한껏 반영되었는지, 특히 그 윤기 나는 유백색(乳白色)도 아니고 고고한 설백색(雪白色)도 아니고, 강 한복판의 얼음을 깨고 나온 듯한 푸른 기운이 감도는 청백색은 참 '귀족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요즘 도예가들도 그 분원의 청백색 유색을 재현해 내는 이가 매우 드물다고 들었다. 겉으로는 낮고 속으로는 깊이 파고든 굽에 청화 선을 한 줄 쭉 그은 것도, 우리는 뭔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자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러면서도 둥그스름한 생김새며 모란을 친 솜씨는 수더분한 느낌, 고유섭(高裕燮·1905~1944) 선생 표현으로는 "구수한 큰 맛"이 한가득이니 신기한 노릇이다. 청나라 때 나온 그 화려한 분채자기나 일본 이마리야키의 현란한 청화백자와는 전혀 같지 않고, 원나라와 명나라 영향을 짙게 받은 15세기나 문인화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그림이 들어간 16세기 조선 청화백자와도 다르다. '큰전고간'이나 '운현(雲峴)' 명문이 들어간 상품(上品)부터 19세기 말 분원이 폐지되고서도 만들어지던 하질(下質)의 것까지, 정말로 이 모란항아리야말로 조선 사람이 만들어 조선 사람이 쓴 것처럼 여겨진다.


거기에 그림이 모란 아닌가. 풍성한 꽃잎 하나하나에 부귀와 영화라는, 사람들이 늘 소망하는 꿈을 담았으니 인기가 높았을 수밖에.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지던 이른바 왜사기(倭沙器) 중에도 모란을 큼지막하게 그린 항아리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전해지는데, 이 또한 당시 이 땅의 사람들이 모란항아리를 얼마나 갖고 싶어 하고 또 쓰고자 했는지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부엌에서 늘 쓰는 도자기 항아리다. 그러나 그런 항아리 하나에도 부귀영화의 꿈을 담을 줄 알았던 이들이 조선 사람이었다. 그 조선 사람의 후예인 지금의 우리에게는 그릇이 흔하다.


도자기나 유리만이 아니라,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가볍고 튼튼한 그릇이 넘쳐날 지경이다. 김치도 담고 꿀이나 설탕도 담고, 온갖 것을 다 담아 냉장고에 넣을 수 있는 그릇. 그런 그릇에 우리의 '꿈'이 새겨지고 또 널리 쓰이며 우리 눈에 아른거리게 되는 건 단지 상상일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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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경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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