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참배 대신 500m 밖에서 '2배2박수1배'
총리 동정서 1984년 이후 처음
"정교분리 원칙에서 따져봐야"
우익 진영서도 "어정쩡한 대응" 비판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지난달 패전일에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찾지 않고 약 500m 떨어진 곳에서 신사를 향해 절을 올린 '요배(遙拜)'를 두고 일본 내에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학계에서는 요배가 전시 총동원 체제에서 활용됐던 의식이라는 지적과 함께 총리의 행위가 헌법상 정교분리 원칙과 어떤 관계에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한국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하지 않았지만, 전몰자 추도사에서 과거 일제 피해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지 않으며 다소 우경화된 행보를 보였다. 교도=연합뉴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한국 광복절이자 일본 패전일 열린 전몰자 추도식에 참석했다. 그는 야스쿠니 신사는 참배하지 않았지만, 전몰자 추도사에서 과거 일제 피해에 대한 반성을 언급하지 않으며 다소 우경화된 행보를 보였다. 교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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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일본 아사히신문 등에 따르면 다카하시 데쓰야 도쿄대 명예교수는 다카이치 총리의 요배에 대해 직접 참배를 원하는 보수 지지층과 한국·중국 등 주변국의 반발을 모두 의식한 "정치적 퍼포먼스"라고 지적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15일 정부 주최 전국 전몰자 추도식 참석을 위해 도쿄 일본무도관을 찾았다. 오전 11시께 무도관 주차장에 도착한 그는 차에서 내려 북서쪽을 향해 신사의 일반적인 참배 방식인 '두 번 절하고 두 번 박수친 뒤 한 번 절하는' 이배이박수일배(二拜二拍手一拜)를 했다. 그 방향으로 약 500m 떨어진 곳에 야스쿠니 신사가 있다. 총리 비서관은 취재진의 문의에 "야스쿠니 신사를 향해 요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요배는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특정 신사나 대상이 있는 방향을 향해 예를 표하는 행위를 뜻한다. 아사히신문은 자사 기사 데이터베이스에 총리 동정 기록이 남아 있는 1984년 이후 '요배'라는 표현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전했다. 요배 계획은 총리 주변에서도 극소수만 알고 있었으며 총리 관저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요배가 무엇이냐"는 반응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다카하시 교수는 요배가 현대 일본 정치권에서는 생소해졌지만 전전·전시기에는 국가의 전쟁 동원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태평양전쟁 등 전몰자를 야스쿠니에 합사하는 임시대제가 열릴 때 일왕의 참배 시간에 맞춰 군과 국민이 멀리서 야스쿠니를 향해 예를 올리는 방식으로 활용됐다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과 대만에서도 비슷한 요배 의식이 식민통치와 황민화 정책의 일부로 시행됐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1930~40년대 조선에서는 일왕이 있는 도쿄 방향을 향해 절하는 '궁성요배' 등이 국민정신총동원 운동과 함께 실시됐고, 대만에서도 전시체제 강화 과정에서 지역별 요배소 설치와 요배 행사가 확대됐다.


다카하시 교수는 "일왕이 직접 참배하는 임시대제는 일본군의 전의를 높이고 국민적 일체감을 조성하기 위한 행사였고 요배는 그 일부였다"며 당시 한반도와 대만 등 식민지 주민들에게도 관련 의식 참여가 요구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카이치 총리가 총리 신분으로 야스쿠니를 향해 요배한 데 대해 외교 문제뿐 아니라 "정교분리라는 헌법 원칙에 따라 일본의 전쟁 역사를 어떻게 마주할 것인가를 묻는 문제"라고 비판했다.


일본 헌법 20조는 국가와 국가기관이 종교교육을 비롯한 종교적 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일본 정부는 과거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대해 공직자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참배가 곧바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다카이치 총리는 총리 취임 전 야스쿠니 신사를 여러 차례 참배했다. 2024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는 총리가 된 이후에도 참배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 가을과 올해 봄 예대제에 이어 취임 후 처음 맞은 패전일에도 직접 참배는 하지 않았다. 대신 자민당 총재 명의로 사비를 들여 공물을 봉납하고 무도관에서 요배했다.


같은 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을 비롯한 다카이치 내각 각료 4명은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했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고 "시대착오적 행위"라며 유감을 표명했고 중국도 일본 측에 항의했다. 야스쿠니에는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 14명을 포함한 전몰자들이 합사돼 있어 일본 정치인의 참배가 한중일 외교 갈등의 요인이 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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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참배를 피한 다카이치 총리의 선택은 일본 보수·우익 진영에서도 비판을 받았다. 우익단체 잇스이카이는 다카이치 총리가 과거 패전일 참배 의사를 밝혀왔음에도 요배로 대신했다며 "어정쩡한 대응"이라는 취지로 비판했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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