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의대 신설 후보대학으로 국립순천대학교(이하 순천대)가 선정됐습니다. 아직 최종 절차가 남아 있지만, 이번 결정으로 전남 동부권과 서부권의 희비는 크게 엇갈렸습니다. 오랫동안 의대를 기다려 온 서부권 주민들과 국립목포대학교(이하 목포대) 구성원들에게는 쉽게 정리하기 어려운 현실과 상실감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 더 세심하게 들여다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번 일을 순천대와 목포대 가운데 어느 대학이 의대를 가져가느냐의 경쟁으로만 보면 정작 중요한 문제가 보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의대 정원 배정을 둘러싼 현재의 공식적·정치적 구도는 두 국립대학의 경쟁이라기보다 전남 동부권과 서부권 가운데 어디에 국립의대와 대형병원을 둘 것인가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의대를 배정받지 못한 지역에는 다른 방식의 보완이 가능합니다. 의료시설을 확충할 수도 있고, 재정투자나 지역개발사업을 통해 지역 간 불균형을 줄이는 방안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서부권의 의료공백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는 앞으로 반드시 다루어져야 할 과제이며, 실제로 대통령이 9월 1일 국무회의에서 당부한 사항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를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의대 배정 대신 서부권의 의료 조건과 환경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와 목포대를 어떤 대학으로 남길 것인가는 같은 질문이 아닙니다.
서부권의 의료 공백은 병원과 의료 인력, 재정투자와 같은 다른 정책 수단으로 일정 부분 보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목포대가 앞으로 어떤 위상과 기능을 가진 국립대학으로 남고, 무엇을 중심으로 발전할 것인지에 대한 답이 주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더구나 목포대는 통합을 말로만 해온 대학이 아니라 이미 전남도립대와 통합을 이행했습니다. 서로 다른 대학의 조직과 기능, 구성원을 하나로 묶는 쉽지 않은 과정을 실제로 감당했습니다. 정부가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중요한 방향으로 대학 간 통합을 제시했을 때, 목포대는 그 정책을 행동으로 옮긴 대학이었습니다.
그런 대학이 다시 순천대와의 통합 과정에서 의대 정원 배정 탈락이라는 행정 결정을 통해서 통합의 동력을 잃고 위상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아직 정해진 미래라고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커져 버린 현 상황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당초 중재안을 거부한 대학에 의대가 배정되고, 통합 정책을 먼저 이행한 대학의 미래가 오히려 더 불확실해지는 역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대학 통합과 국립의대 신설이 서로 결합되어 추진됐습니다. 두 국립대학이 통합이라는 어려운 선택에 이를 수 있도록 하는 핵심적인 동력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통합을 논의할 때는 선택지가 지금보다 넓었습니다. 대학 본부는 어디에 둘 것인지, 의대는 어디에 둘 것인지, 대학병원은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두 대학과 동·서부권의 기능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를 하나의 틀 안에서 논의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한 대학이 모든 것을 얻고 다른 대학이 모든 것을 잃는 방식이 아니라, 통합된 대학 안에서 기능과 역할을 조정할 여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통합이 무산되면서 이 결합 구조도 사라졌습니다. 통합과 함께 논의되던 의대 신설에서 '통합'은 빠지고, 두 대학 가운데 의대 신설 후보 대학 한 곳을 선정하는 문제로 전환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생각보다 큰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의대를 배정받는 지역에는 국립의대가 생기고, 선정된 대학에는 의대라는 새로운 핵심 기능이 더해지면서 앞으로의 발전 계획도 보다 구체화 되었습니다. 반면 선정되지 못한 지역에는 별도의 의료·재정적 보완책을 마련할 수 있지만, 선정되지 않은 대학의 위상과 장기적인 발전은 그것만으로 해결될 수 없는 상황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문제를 하나의 잣대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동부권과 서부권 사이의 지역적 균형, 순천대와 목포대 각각의 대학 미래, 정부가 추진해 온 지방국립대 통합 정책, 그리고 국립의대 신설과 정원 배정이라는 네 가지 문제가 함께 얽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는 어느 지역에 의대를 둘 것인가와 의대를 얻지 못한 지역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가 상대적으로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목포대라는 국립대학의 미래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정부가 추진해 온 대학 통합정책과 이번 결정 방식이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답을 찾기 어렵습니다.
저는 바로 그 공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을 들여다보면 이번 결정이 순천과 목포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 이유도 보입니다.
정책은 사람과 조직의 행동과 한정된 자원의 흐름을 바꿉니다. 정부가 대학에 통합을 권하면 대학은 그 정책을 믿을 것인지, 얼마나 양보할 것인지, 언제 움직일 것인지를 판단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부가 무엇을 권했느냐만이 아닙니다. 그 권고를 믿고 실제로 움직인 대학에 어떤 결과가 남았느냐도 다음 대학의 선택에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목포대는 이미 한 차례 통합을 이행했고 다시 통합 협상에 참여했습니다. 순천대와의 통합 과정에서는 여러 중재안이 오갔지만 끝내 합의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이후 통합은 무산됐고 의대 선정은 어느 순간 개별 대학간 경쟁으로 바뀌었습니다.
여기서 어느 대학의 선택이 옳았는지를 따지려는 것이 아닙니다. 같은 절차 끝에 목포대가 선정되고 순천대의 미래가 불확실해졌더라도 제가 던지는 질문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대학이 이겼느냐가 아니라, 이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다른 대학들이 무엇을 배우게 되는가입니다.
정부의 중재 속에서 양보하며 통합에 이르는 것과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유지하며 이후의 정책 변화를 기다리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될까요? 정부의 통합 정책을 먼저 이행하는 것과 일단 지켜보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정책적 신뢰는 정부가 "믿어 달라"고 말한다고 생기지 않습니다. 앞서 그 정책을 믿고 움직였던 사람과 조직에게 무엇이 남았는지를 보고 만들어집니다.
앞으로 정부가 또 다른 지역의 대학들에게 통합을 권하고, 민원 당사자에게 행정의 의사를 전달하는 상황이 올 것입니다. 그때 대학들이, 그리고 시민들이 정부의 권고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시그널을 준 것입니다. 목포와 순천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할 것입니다.
그날 한 대학이 이렇게 묻는다면 우리는 무엇이라고 답해야 할까요.
"정부의 통합 정책을 믿고 먼저 움직이는 것이 정말 우리 대학의 미래를 위한 선택입니까?"
이 질문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것은 이 질문이 목포대와 순천대의 처지가 바뀌었더라도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번 결정이 남긴 문제는 어느 한 대학의 이해관계를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국립목포대학교 임한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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