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술 필요하다" 美 고위 관계자 찾아와 수조 원 에너지·인프라 사업 제안[판 바뀌는 해외건설②]
美 고위 관계자들, 한국 대표단 찾아
대형 에너지·인프라 프로젝트 제안
미·중 패권 경쟁…공급망 재편·AI 전환
해외 건설 수주 '산업설비' 비중 70%↑
수주 거점, 중동→북미 시장으로 이동
지난 7월 김이탁 국토교통부 제1차관이 이끄는 해외수주지원단이 미국 출장길에 올랐을 때 현지 분위기는 과거와 달랐다고 한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와 농무부 고위 관계자들이 차례로 한국 대표단을 찾아와 수조 원 규모의 대형 에너지·인프라 프로젝트를 직접 제안하고 나섰다. 그간 국내 건설사들이 현지에서 발로 뛰며 사업을 수주해왔던 것과 비교하면 주객이 완전히 바뀐 셈이다. 이 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미·중 패권 경쟁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인공지능(AI) 전환에 따른 폭발적인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이 자리하고 있다.
9일 해외건설통합정보서비스(OCIS)에 따르면 국내 기업의 해외 건설 수주 공종별 비중에서 플랜트에 투입되는 산업설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64.8%(1235억달러), 2010년대 66.2%(3203억달러) 수준이었다. 이후 지난해 74.6%(352억7685만달러), 올해 1~7월 71.4%(84억달러)를 기록하며 산업설비 비중이 급증하고 있다.
특히 수주 거점은 중동에서 북미 및 선진국 시장으로 뚜렷하게 이동하고 있다. 올해 상반기 태평양·북미 지역 수주액은 전년 동기 대비 2.4배 이상 증가했다. AI 데이터센터(DC) 수요 급증에 따른 전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에너지저장장치(ESS)나 태양광 등 신재생 에너지 플랜트와 비료·석유화학 공장, 액화천연가스(LNG) 플랜트 등이 핵심 유망 분야로 떠오르면서다. 글로벌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DC 증설에 대규모 신규 투자를 약정하면서 인프라 파이낸싱 시장이 AI 및 DC 인프라 투자 슈퍼사이클에 진입했는데, 북미 지역이 이 사이클의 최대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건설 발주의 핵심으로 부상한 건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해온 중국을 견제하는 목적이 강하다. 자국 내 대규모 인프라 건설과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략적 협력 파트너로서 한국의 중요성이 부각된 것이다. 특히 한국이 고난도 해외 현장에서 쌓아온 풍부한 시공 경험과 기술이 있어 최적의 파트너로 고려됐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중동을 비롯한 글로벌 현장에서 오랜 기간 사업을 수행하며 고도의 시공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해왔다"며 "현재 미국은 핵심 원천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건설이나 조선 분야의 실질적인 시공·건조 역량은 한국에 비해 아쉬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건설 시장 상위권에는 한국을 포함해 중국, 스페인, 프랑스, 터키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안보 리스크가 적고 우방국인 한국이 미국 입장에서 매력적인 선택지로 보였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건설사들도 이런 흐름에 맞춰 직접 지분을 투자하고 운영 이익까지 거두는 투자개발형으로 사업장을 넓혀가고 있다. 현대건설은 최근 종합설계시공(EPC)을 넘어 '토털 솔루션 크리에이터(Total Solution Creator)'로의 도약을 선언했다. 한국중부발전, KIND, 글로벌 플랜트·건설·스마트시티(PIS) 펀드 등 국내 민간·공기업·정책 펀드와 컨소시엄을 미국 에너지 투자개발 사업인 '루시(LUCY)' 프로젝트에 지분 투자로 참여했다.
현대엔지니어링 역시 수소, 신재생에너지, 소형모듈원자로(SMR), 탄소포집·활용·저장(CCUS), LNG 액화, 핵융합 등에 대한 중장기 마스터플랜을 설정하고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네바다주 라이올라이트 리지(Rhyolite Ridge) 리튬·붕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핵심 광물 플랜트 시장 공략도 본격화하고 있다.
대우건설은 북미 주거부동산뿐 아니라 신흥국 대형 플랜트 기획 수주 등 여러 전략을 펼치고 있다. 지난 6월 미국 뉴저지주 버겐 카운티에서 팰리세이즈파크 주거개발사업을 개시했으며 나이지리아, 모잠비크, 파푸아뉴기니 등에서 석유화학·비료공장 및 LNG 플랜트 사업을 수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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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관계자는 "미·중 경쟁이 시작된 이후 중국에서 수입해오던 기자재들이나 사업들의 대체재로 우방국들과 활발히 협의하고 있다"며 "유럽이나 일본과 비교해 한국이 아직 가격 경쟁력이 있어 우리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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