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풍·목소리는 저작권 밖…AI 모방 논란 확산
학계 "성과모방·인적식별표지 조항 적용 가능"
법조계 "남용 우려" vs "초상권 확장 필요"
인공지능(AI)이 손쉽게 화가의 붓질을 베끼고 가수의 목소리를 복제한다. 저작권법으로는 막지 못한다. 화풍과 음색은 '아이디어'로 분류돼 보호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최근 진행한 '저작권 쟁점 대토론회'에서 학계는 이 공백을 메울 대안으로 부정경쟁방지법에 주목했다.
허점을 크게 노출한 계기는 지브리풍 이미지 열풍이었다. 김원오 인하대 로스쿨 교수는 "지브리 이미지는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생성형 AI가 대량으로 이미지를 쏟아내는 지금, 화풍이나 서체 같은 스타일을 아이디어로만 취급해온 기존 틀로는 한계가 있다고 진단했다. 스타일 모방과 AI 딥페이크, AI 커버곡도 같은 선상의 사안이라고 짚었다.
문제는 스타일만이 아니다. 얼굴과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김경숙 상명대 지적재산권전공 교수는 "저작권법은 특정인의 얼굴, 음성, 성명, 인격적 특징이나 창작자의 추상적인 스타일 자체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딥페이크가 기존 사진·영상·음원을 복제하지 않았다면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을 수 있지만, 당사자의 동일성·명예·사생활 또는 경제적 가치에는 중대한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광남 서울고법 부장판사도 "특정 작가의 화풍, 스타일, 외모, 목소리 등 인격적 징표는 저작권의 규율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최근 거론되는 부정경쟁방지법 등 다른 법률도 저작권법의 한계를 보완하려는 취지는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각 법률은 저마다 고유한 법익을 지킬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무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제시하는 목소리는 계속 높아진다. 이철남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정경쟁방지법 제2조 제1호 파목 '성과모방'을 언급하며 "특정 작가의 화풍을 집약적으로 학습시켜 원작자의 시장 수요를 교란·대체하는 행위에 보충적 구제 수단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제2조 타목 '인적식별표지'에 대해서도 "국내에 널리 알려진 인물의 성명, 초상, 음성 등을 무단 학습·합성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AI 커버곡, 딥페이크 광고 등의 부정경쟁행위를 제재한다"고 말했다.
조희경 홍익대 법과대학 교수도 같은 진단을 내놨다. "원작과 똑같지 않은 스타일 모방이라도, 창작자의 성과에 무임 승차해 그 시장을 직접 잠식하는 상업적 이용이라면 파목 적용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특정 가수의 음성을 모사한 AI 커버곡이나 배우 얼굴을 합성한 광고처럼 산출 단계의 인격표지 침해는 인적식별표지 조항이 직접 규율할 근거가 된다는 주장이다.
차상육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풍(風)·스타일을 모방하거나 무단 이용하는 사례를 예로 들며 "아이디어·표현 이분법에 기초해 저작권 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파목에 의한 부정경쟁행위로써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유명 가수의 목소리를 재현하거나 유명 배우의 얼굴로 광고를 만든 경우에 대해서도, 저작권법 위반은 물론 민법상 초상권·퍼블리시티권 침해, 부정경쟁방지법 위반까지 한꺼번에 문제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모든 경우가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차 교수는 "노래를 새로 만들었지만 가수의 목소리를 AI로 학습시켜 상업적으로 모사했다면 부정경쟁방지법상의 퍼블리시티권 문제가 될 수 있다"면서도 "사람의 얼굴이나 목소리 자체가 곧 저작물인 것은 아니므로 현행 저작권법만으로는 해결하기 곤란한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빈틈을 두고 법조인들은 정반대의 우려를 내놨다. 특히 소송과 자문을 다루는 변호사들은 파목·타목이 남용될 위험을 걱정했다. 김형지 김앤장 변호사는 성과모방 조항에 대해 "특정 작가의 독자적 화풍, 일관된 기법, 저작물성 없는 콘텐츠까지 위법하다고 판단 받을 여지를 남길 수 있는 조항"이라고 부연했다. 타목에 대해서는 "경제적 가치를 지닌 성명, 초상, 음성 등 식별표지를 무단 사용해 경제적 이익을 침해하는 행위를 부정경쟁행위로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인의 얼굴과 목소리는 보호받는다는 뜻이다. 다만 그는 "여전히 일반인의 초상, 음성 등은 보호받을 수 없는 한계가 있다"고 짚었다.
임상혁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오히려 초상권 자체의 확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AI 학습 데이터에 포함된 얼굴 이미지나 음성이 무단 학습돼 신원이 합성·유포되는 문제에 대해 "저작권법뿐만 아니라 다른 법률들의 법리와도 충돌한다"고 밝혔다. 헌법과 민법이 다뤄온 초상권 법리가 AI 학습을 계기로 어디까지 넓어질 수 있을지가 새로운 쟁점이라는 이야기다.
성과모방 조항의 적용 가능성에 무게를 싣는 시각도 있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특정 창작자의 독창적인 화풍이라 할지라도, 이를 고의적으로 집중 학습시켜 유사한 상업적 서비스를 출시하는 행위는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규율해 창작자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더 근본적인 문제에 주목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박성호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AI 산출물에 인간의 창작적 기여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공영역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AI 산출물에 대해 안이하게 부정경쟁방지법 파목이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조희경 교수도 "파목·타목을 남용하면 저작권법이 애초 보호하지 않기로 한 아이디어나 만료 저작물까지 우회 보호하는 결과가 될 수 있다"며 신중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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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학계 의견은 저작권법 홀로 화풍·목소리 모방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모인다. 표현의 보호는 저작권법이, 데이터와 성과, 인격표지의 보호는 부정경쟁방지법이 맡는 중층적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다만 그 경계를 어디에 그을지는 여전히 논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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