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바꾼 일터, 일터가 바꾼 출산율[2026 양성평등지수]
2026 아시아양성평등지수 조사
137개사 5개년 1만3000건 전수조사
남성 육휴 저변 넓혔지만 여성 정규직 21.9%·연봉 72%는 그대로
2023년 0.72명까지 떨어졌던 대한민국 합계출산율이 2024년 0.75명, 지난해 0.80명으로 2년 연속 반등했다. 올해는 6월 기준 0.88명까지 늘며 2019년 이후 7년 만에 0.9명대 진입 전망까지 나온다. 무엇이 굳게 닫혀 있던 출산의 문을 다시 열고 있을까. 그 답을 일터에서 찾아보기 위해 시작된 '아시아양성평등지수'가 올해로 11회를 맞았다. 여성이 차별없이 성장하고 일·가정이 양립하는 기업 문화가 뿌리내릴 때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난제도 풀 수 있다는 믿음에서다.
올해 지수는 평가 잣대를 '검증 가능한 공시'와 '고용의 질' 중심으로 재설계했다. 고용·보상·육성·양립·기타 5개 부문 19개 항목 체계 아래 사업보고서를 근간으로 정부 통계, 지속가능경영보고서, 개별 취재로 확인한 자료를 더해 검증했다.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개년 치 데이터를 전수조사했으며 수집한 기초데이터는 1만3000건이 넘는다. 여성 고용의 안정성을 남성과 비교하는 '정규직화 성별 격차' 지표를 새로 도입하고 설문에 의존하던 관리직 항목은 공시 기반의 '미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로 대체해 신뢰성을 높였다.
올해 조사 대상은 137개사다. 국내 상장사 중 지주사와 공기업 등을 뺀 뒤 별도 재무제표 기준 매출순으로 추린 100대 기업과 은행·증권·보험·카드를 아우른 37개 금융사다. 100대 기업에서는 올해 신규 편입된 아모레퍼시픽이 여성 이사회 구성과 일·가정 양립 성과를 앞세워 단숨에 1위에 올랐다. 금융권 1위는 우리은행이 차지했다. 어느 한 부문에 기대지 않고 고용부터 이사회까지 약점 없는 성적을 쌓은 결과다. 반면 E1과 DB손해보험은 각각 100대 기업과 금융권 최하위를 기록했다.
숫자가 보여준 과제는 여전히 무겁다. 100대 기업의 정규직 여성 비율은 21.9%로 '5명 중 1명'에 멈춰 있고 여성 평균연봉은 남성의 72% 수준이다. 법제화에 힘입어 사외이사 중 여성 비율이 5년 새 2배로 뛰는 동안 내부 승진으로 채워지는 미등기임원 중 여성 비율은 6.5%에 그쳤다.
그래도 변화의 물살은 빨라지고 있다. 육아휴직 공시 의무화 2년 차를 맞아 남성 육아휴직 사용률이 한 자릿수에 그친 기업은 1년 새 60곳에서 33곳으로 줄었다. 100대 기업 남성 육아휴직률 중앙값도 8.5%에서 12%로 올라 처음으로 두 자릿수에 진입했다. 일부 선도 기업이 아니라 대기업 전반의 저변이 함께 움직였다는 뜻이다.
꼭 봐야 할 주요 뉴스
"한국보다 싸다고 일본에서 사 왔는데"…잘못 썼다...
공시는 기록에서 그치지 않았다. 숫자가 공개되자 기업이 움직였고 일터가 바뀌자 출산율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아시아경제가 11년째 기업의 숫자를 기록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투명한 데이터가 일터를 바꾸고 일터의 변화가 저출생의 해법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아시아양성평등지수가 그 변화를 측정하는 자이자, 재촉하는 동력이 되고자 한다.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