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글로벌 전자거래 플랫폼 트레이드웹(Tradeweb)에서 흥미로운 거래가 이뤄졌다. 글로벌 마켓메이커 버투파이낸셜(Virtu Financial)이 디지털 국채를 담보로 자금을 빌렸다가 갚는 환매조건부채권, 즉 레포(Repo) 거래를 한 것이다. 담보 제공부터 현금 지급, 이후 증권을 되사오는 과정까지 모두 블록체인 위에서 이뤄졌고 전체 과정은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최근 토큰화 시장 데이터를 보면 국내에서 인식하는 토큰증권과 글로벌 시장의 현실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RWA.xyz에 따르면 9월 초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은 약 3030억달러다. 반면 토큰화 주식은 약 26억달러, 부동산은 약 5억달러 수준이다. 더 눈여겨볼 분야는 레포다. 브로드리지의 분산원장 기반 레포 플랫폼 DLR은 지난 7월 한 달 동안 8조달러, 하루 평균 3650억달러의 거래를 처리했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부동산이나 미술품 조각투자는 글로벌 토큰화 시장 전체에서 보면 아직 미미한 부분이다.
이러한 차이는 블록체인을 바라보는 관점과 제도 설계의 출발점이 달랐기 때문으로 보인다. 미국 금융시장은 블록체인을 새로운 투자상품을 만드는 기술이라기보다 기존 금융시장의 '배관'을 업그레이드하는 차세대 인프라로 받아들이고 있다. 반면 한국의 초기 토큰증권 제도는 새로운 형태의 증권을 발행·유통하는 기술에 초점을 맞추면서 조각투자와 국내 금융기관 중심의 허가형 네트워크에 무게가 실렸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이 토큰화에서 찾는 경제적 가치는 자산을 잘게 쪼개는 데 있지 않다. 채권과 펀드, 현금과 담보를 더 빠르게 이동시키고 금융시스템 전체의 유동성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있다. 증권과 현금을 블록체인 위에서 실시간으로 이전하면 국채를 넘겨주는 순간 돈이 지급되는 원자적 결제가 가능해지고, 오전에 사용한 담보를 오후에 다시 활용할 수도 있다. 같은 자산이 더 많이 움직이고 묶어둬야 할 현금과 담보는 줄어든다.
효과는 숫자로도 확인된다. 글로벌 금융인프라 기업 브로드리지(Broadridge)와 리서치업체 피나디움(Finadium)의 분석에 따르면 전체 거래의 15%만 블록체인 기반 레포로 전환해도 필요한 장중 유동성 버퍼를 8~17% 줄일 수 있다. 미국이 2024년 증권 결제주기를 T+2에서 T+1으로 하루 단축했을 때도 주식거래 청산기관 NSCC의 청산기금은 평균 30억달러(23%) 감소했다. 결제시간이 줄어들자 위험에 대비해 묶어두던 자본을 다른 거래와 투자에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자본효율성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미국의 예탁결제원 격인 DTCC가 지난 7월 토큰화 실거래 테스트에 주식뿐 아니라 국채 레포, 증권대차, 담보 제공, 중앙청산소 마진 관리까지 포함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오는 10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서비스의 핵심은 증권을 블록체인 위에 올리는 것이 아니라 금융자산을 더욱 효율적으로 이동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금융 인프라의 효율성 차이는 결국 금융산업 경쟁력의 차이로 이어진다. 같은 자본과 담보라도 더 자주 활용할 수 있는 금융회사가 더 많은 거래를 하고 더 낮은 금리와 수수료를 제시할 수 있다. 블록체인 인프라 경쟁은 결국 자본효율성 경쟁이다.
한국도 이제 어떤 부동산과 콘텐츠를 토큰화할 것인가를 넘어 국채와 회사채, 펀드 같은 기존 금융자산을 어떻게 온체인으로 옮기고 이를 레포와 증권대차 등 실제 금융업무에 활용할지 고민해야 한다. 스테이블코인이나 예금토큰 같은 디지털 결제수단과 실시간으로 연계하고 글로벌 네트워크와도 연결해야 한다.
조각투자는 좋은 출발점이다. 그러나 토큰화의 진짜 가치는 자산을 얼마나 잘게 쪼개느냐가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바꾸고 같은 자본을 얼마나 더 생산적으로 활용하게 하느냐에 있다. 이 전환을 놓친다면 뒤처지는 것은 토큰증권 시장만이 아니라 한국 금융산업의 경쟁력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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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윤 디에스알브이랩스(DSRV)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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