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부의 감각' 터보832 인터뷰
AI로 정보 격차 줄어든 시대…"무엇을 볼지 가르는 필터가 더 중요"
"부자의 물건 따라 산다고 감각 생기지 않아…취향도 축적해야"
2026년은 '주식의 시대' 출발점…향후 최대 변수는 미·중 지정학
부자의 취향은 부를 만든 원인일까, 부자가 된 결과일까.
좋은 동네와 교육, 문화적 경험, 능력 있는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는 대체로 돈이 많은 사람에게 더 많이 주어진다. 그렇다면 '부의 감각'을 익히라는 말은 이미 부자가 된 사람에게 유리한 충고 아닐까. '대한민국 부의 감각'(체인지업북스)을 쓴 터보832에게 물었더니 그는 이 전제를 부정하지 않았다.
"좋은 주거환경과 교육, 문화적 경험, 뛰어난 사람들과의 네트워크가 이미 경제적 자본을 다진 사람들에게 더 쉽게 주어지는 것도 맞습니다. 좋은 학벌을 가질수록, 더 좋은 곳에 취업할수록 그 기회가 많아지는 것도 사실이고요."
40만 구독자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경제·자산관리 전문가 터보832는 공인회계사와 제조업체 근무를 거쳐 부동산·주식·사업 등에 뛰어들었고, 출판사는 그를 '1000억원대 자산가'로 소개한다. 신간에는 슈퍼카와 와인, 미술, 파인다이닝부터 인간관계까지 등장한다. 그러나 그가 나눈 것은 '무엇을 사라'보다 '어떻게 볼 것인가'에 가깝다. 보는 감각, 공간의 감각, 관계의 감각, 결정의 감각이다.
부자의 물건과 부자의 감각은 같은가
터보832가 피에르 부르디외의 '아비투스'를 꺼낸 이유도 여기 있다. 계층은 돈만 대물림하지 않는다. 언어와 취향, 판단의 습관도 환경을 통해 축적된다. 다만 "아비투스에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것도 있고, 살 수 없는 것도 있다"고 했다. 대표적인 것이 언어다.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돼도 쓰는 단어와 문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반면 교육과 학습, 누구와 관계 맺고 어떤 집단에 자신을 놓을지는 후천적으로 달라질 여지가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비싼 와인을 마시고 좋은 차를 타면 '부자의 감각'을 배울 수 있을까. 그는 반대 사례로 산후조리원 문화를 들었다. 조리원 동기가 비싼 유모차를 사면 나만 평범한 육아용품을 들고 만나기 어려워지고, 그 기준은 유치원과 사교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준거집단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쓰는 돈이다. 그는 이를 "집단적 소비의 굴레"라고 했다.
반면 같은 와인을 마셔도 SNS에 사진 한 장 올리고 끝나는 사람이 있고, 계속 비교하며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사람이 있다. "중요한 점은 무엇을 소비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소비하느냐입니다." 후자를 그는 '감각의 지도'를 그려가는 과정이라고 했다.
부자의 물건은 돈으로 살 수 있다. 그것이 왜 좋은지, 나에게도 좋은지를 판단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생성형 인공지능(AI)은 이 차이를 더 선명하게 만든다. 터보832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발전으로 정보를 찾고 분석하는 능력은 빠르게 평준화된 반면, 무엇이 중요한지를 골라 서로 연결하는 능력은 더 중요해졌다고 봤다.
"자신 안에 그 감각을 걸러내고 정리할 수 있는 필터망이 없다면 대부분의 감각은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는 바람처럼 남지 않습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는 "모든 관계를 효용과 네트워크의 관점으로 보는 사람"과 "'돈만' 좇는 사람"을 경계했다. 계좌 크기나 매출로 사람의 서열을 나누는 태도에는 눈앞의 돈을 신용과 명성보다 앞세울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컬렉션 특별전: 이중섭' 전시회에서 관람객들이 전시 작품을 살펴보는 모습. 터보832는 좋은 것을 소유하는 것과 그것을 보고 자기만의 취향과 판단을 쌓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말한다. 김현민 기자 kimhyun81@
원본보기 아이콘돈 버는 감각이 삶의 감각을 망칠 수도 있다
여기서 투자자 '알바트로스'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선물·파생시장에서 28년간 살아남아 전설로 통했던 그는 큰돈을 벌었지만, 나이가 들어 "뇌의 특정 부분이 망가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시장에 맞춰 예민해진 신경이 일상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주기적으로 시장에서 멀어지라고 당부했다.
터보832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우리는 돈을 벌어서 무엇을 하려는 것일까. 돈을 벌면 무엇이 좋고, 어떤 취향을 가지고, 그것이 어떻게 우리 삶의 밀도를 높일 수 있을까." 돈 버는 데 유리한 감각과 잘 사는 데 필요한 감각이 반드시 같지는 않다는 이야기다.
물론 1000억원대 자산가가 지금 어디에 기회가 있다고 보는지도 궁금하다. 터보832는 2026년을 한국에서 "주식의 시대가 출발하는 첫해"라고 평가했다. 수출기업의 이익 체력이 강해졌고, 코스피가 오랜 박스권을 돌파하는 경험을 했으며, 기업 거버넌스 개선도 시작됐다는 이유다. 다만 단기간 급등과 레버리지 상품에 따른 쏠림 위험도 지적했다.
향후 2~3년의 최대 변수로는 미·중 패권 경쟁을 비롯한 지정학을 꼽았다. 공급망 재편으로 제조 역량의 가치가 높아지면서 반도체·조선·방산 등 제조업 기반을 가진 한국에 기회가 생겼다는 판단이다. 금리의 추세적 상승은 주식과 부동산 모두에 부담이라고 봤다.
전망이 맞을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기업 실적과 정책, 지정학을 연결해 하나의 그림을 만드는 방식은 그가 말한 '필터망'을 보여준다.
남들이 원하는 것을 내 욕망으로 착각하지 않는 일
마지막으로 자산이 거의 없는 20~30대에게 무엇부터 시작하겠느냐고 물었다.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환경과 자원, 재능부터 정확히 파악하라는 것이다. 공부에 재능이 없는 사람이 사회적 선망만으로 변호사를 목표로 삼는 경우를 예로 들며 "재능이 없고 진정으로 즐거움을 느낄 수 없는 곳에 시간을 쏟는 일은 타율을 낮추는 일"이라고 했다.
자기 취향과 재능을 찾는 일은 서점에서 책을 고르는 과정에 빗댔다. 남들이 고전이라고 해도 나와 맞지 않을 수 있다. 펼쳐보고, 아니면 덮고 다른 책을 본다. 그렇게 여러 권을 거쳐야 자신에게 맞는 책을 알게 된다. 돈은 선택지를 늘려준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부자의 물건을 갖는 것보다 어려운 일은 남의 욕망과 내 욕망을 구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터보832는 그 시작을 이렇게 말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일단 책장을 넘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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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부의 감각 | 터보832 지음 | 체인지업북스 | 3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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