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주의 책]우리가 몰랐던 자본주의 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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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자본주의

자본주의라는 말은 너무 많이 쓰여서, 오히려 아무것도 묻지 않게 만드는 단어가 됐다. 마이클 소넨셔는 이 익숙한 개념을 경제 체제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그 말이 언제 어떤 필요 속에서 생겨났는지를 되짚는다. 18세기 말~19세기 초 등장한 '자본주의'의 의미 변천을 추적하며, 자본의 사적 소유만으로 근대사회의 곤경을 설명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1부가 상업사회, 정치사상사, 전쟁과 부채, 근왕주의와 노동권을 다룬다면, 2부는 마르크스·스미스·헤겔·리카도·슈타인을 다시 불러낸다. 얇은 책이지만 질문은 작지 않다. 우리가 문제의 이름을 잘못 붙인 것은 아닌가.


소넨셔가 겨냥하는 핵심은 자본주의라는 말이 오히려 분업과 상호의존의 문제를 가려왔다는 지점이다. 소유의 문제는 급진적 대안까지 상상하게 하지만, 분업 이후의 세계를 상상하는 일은 훨씬 어렵다. 누군가는 생산하고, 누군가는 운송하고, 누군가는 관리하고, 누군가는 빚을 지는 구조 안에서 현대인은 서로에게 묶인 채 살아간다. 그래서 이 책은 자본주의 비판을 무디게 만들려는 책이 아니라, 비판의 칼끝을 더 정확한 곳으로 옮기려는 책에 가깝다. '자본주의'라는 너무 큰 말 아래 뭉개진 오래된 질문들이 다시 살아난다. (마이클 소넨셔 지음ㅣ김민철 옮김ㅣ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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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욕망의 세계

금이 왕관의 금속이라면, 은은 세계를 돌아다닌 금속이었다. 틸만 벤디코프스키는 은을 귀금속이나 투자 자산으로만 보지 않고, 중세와 근대를 움직인 욕망의 매개로 다룬다. 콜럼버스의 항해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대량 채굴된 은은 유럽의 궁정과 상인의 금고를 채웠고, 무역과 금융의 회로를 넓혔으며, 마침내 평범한 민중의 집 안으로도 스며들었다. 목차의 '약탈의 서막', '타락한 은의 도시', '세계를 누비는 은', '은의 저주'라는 흐름만 봐도 이 책이 반짝이는 물성보다 그 뒤의 피와 땀을 더 오래 들여다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은의 역사는 아름다운 식기와 장신구의 역사인 동시에, 수탈과 노예노동, 해적과 밀수, 전쟁 자금의 역사다. 저자는 은스푼 하나가 어떻게 부와 예절의 상징이 되었는지 묻다가도, 곧장 그 은이 어디서 왔고 누구의 손을 거쳐 식탁에 올랐는지 추적한다. 그래서 독자는 금속 하나를 따라가며 세계화의 초기 장면을 본다. 욕망은 늘 빛나는 표면을 원하지만, 역사는 그 표면 아래 남은 손의 상처를 기록한다. 지금 은이 다시 원자재와 투자 대상으로 주목받는 시대라면, 저자는 그 가격표 뒤에 붙어 있던 오래된 인간의 비용을 펼쳐 보인다. (틸만 벤디코프스키 지음ㅣ최은희 옮김ㅣ오팬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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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프로듀서

도시는 건물 높이로만 바뀌지 않는다. 야마모토 가즈히코는 모리빌딩에서 40년간 일하며 아크힐스, 롯폰기힐스, 오모테산도힐스, 도라노몬힐스, 아자부다이힐스 등 도쿄의 대규모 재개발 현장을 통과했다. '도쿄 프로듀서'는 그 완성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책이 아니라, 회의실과 조합 사무실, 설계 변경과 행정 협의, 권리자 설득과 준공 이후 운영까지 도시가 만들어지는 복잡한 시간을 기록한 책이다. 부제처럼 핵심은 '지역가치를 올리는 도시개발'이다. 건물 한 동을 세우는 일이 아니라, 그 건물이 주변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장소의 질서를 바꾸는가를 묻는다.


인상적인 것은 '프로듀서'라는 말의 쓰임이다. 여기서 프로듀서는 멋진 콘셉트를 내놓는 기획자가 아니라, 비전과 돈, 공공성과 사업성, 문화와 임대수익, 행정 절차와 주민 이해관계를 끝까지 맞물리게 하는 사람이다. 책은 아크힐스의 19년 대장정, 롯폰기힐스의 문화도심 콘셉트와 합의 형성, 오모테산도힐스와 긴자 식스, 도라노몬힐스까지 이어지며 일본 도시개발의 내부 작동 방식을 보여준다. 도쿄의 화려함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개발의 인내다. 도시는 한 번의 조감도로 완성되지 않고, 수많은 이해관계를 견디며 조금씩 형태를 얻는다. (야마모토 가즈히코 지음ㅣ김도영 옮김ㅣ박종현 감수ㅣ인벨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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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지리

같은 월급을 받아도 삶의 궤도는 주소를 따라 달라진다. 정준호는 지역 격차를 '어느 지역이 낙후됐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자본, 산업과 기회가 어떻게 공간적으로 배치됐는가의 문제로 바꿔 묻는다. 핵심은 도린 매시의 공간 분업론을 한국 경제에 적용한 '분공장 경제'다. 수도권이 본사·기획·연구개발·금융 기능을 쥐고, 비수도권 산업도시는 생산과 실행을 맡는 구조 속에서 부가가치와 의사결정 권한은 계속 한쪽으로 흘러간다. 지난 20여 년간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 이전된 누적 생산소득이 약 2020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숫자로 못 박는다.


날카로운 대목은 소득 격차에서 멈추지 않고 자산과 금융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다. 2012~2025년 가계금융복지조사를 토대로 소득과 자산의 결합 구조를 살피고, 수도권 아파트 가격 급등과 '강남 효과'를 통해 주거 공간이 어떻게 준금융자산이 되는지 보여준다. 월급은 비슷해도 한 사람의 소득은 집값 상승과 자산 프리미엄으로 증식되고, 다른 한 사람의 소득은 임대료와 대출이자 속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지역 문제는 더 이상 지방의 문제가 아니고, 부동산 문제도 시장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책이 남기는 질문은 불편하다. 한국의 불평등은 계층의 사다리만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 사다리가 놓이는 땅 자체를 다르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닌가. (정준호 지음ㅣ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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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 이응

김멜라의 소설에서 사랑은 자주 이상한 형태로 나타난다. 지하철 객실을 뒤덮는 '저퀴'와 4호선을 지키는 잡귀, 여성에게 향하는 마음이 배꼽에서 빛으로 쏘아지는 사람, 죽음의 문턱에서 잠시 다른 이의 마음으로 옮겨 다니는 몸. 제15회 젊은작가상 대상 수상작 '이응 이응'을 포함한 세 번째 소설집은 여덟 편의 작품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 삶과 죽음, 몸과 마음 사이의 경계선을 느슨하게 푼다. '지하철은 왜 샛별인가'에서 장애인 이동권 시위의 현장은 분노를 먹고 자라는 괴물들의 세계와 겹쳐지고, '젖은 눈과 무적의 배꼽'에서는 마음이 냄새와 온도를 지닌 빛의 물질이 된다.


기묘한 설정은 장식이 아니라 윤리의 장치다. 김멜라는 고통을 설명하지 않고, 그것이 다른 몸에 닿는 방식을 상상한다. '좀비 손금'의 문자 한 통, '드그다 읏따읏따'의 저작권과 노래, '물먹은 편지'의 만질 수 없는 별 같은 거리, '메께라 께라'의 숨이 지고 다시 피어날지 모른다는 감각은 모두 '나'라는 1인용 몸의 한계를 넘겨보려는 시도다. 그래서 이 소설집의 사랑은 낭만적 해답이라기보다 세계가 너무 치사할 때도 끝내 끊어지지 않는 미세한 회로에 가깝다. 능청스럽고, 우습고, 때로 난해하지만, 그 이상함이야말로 김멜라가 슬픔을 견디는 방식이다. (김멜라 지음ㅣ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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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윤리의 생물학적 토대

생명윤리의 논쟁은 자주 찬반으로 정리된다. 유전자 편집은 허용할 수 있는가, 배아 선택은 어디까지 가능한가, 치료와 향상은 어떻게 다른가. 팀 르윈스는 그보다 먼저 묻는다. 우리가 윤리적 판단의 근거로 삼는 '생물학적 사실'은 정말 그렇게 중립적이고 분명한가. 케임브리지대 과학철학자인 그는 생명윤리학과 생물철학 사이의 거리를 좁히며, 건강과 질병, 정상과 비정상, 자연과 인공, 치료와 향상 같은 익숙한 구분이 어떤 개념적 전제 위에 놓여 있는지 따진다. 인간 향상, 합성생물학, 생식세포계열 개입, 배아 선택, 유전적 차이와 분배적 정의, 진화론과 공공정책까지 다루는 범위도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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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윈스의 글은 생명공학을 무조건 두려워하지도, 기술이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고 쉽게 믿지도 않는다. 마이클 샌델의 '뜻하지 않은 것을 받아들이는 열린 태도'를 검토하면서도 치료와 향상의 경계가 흐릿하다고 해서 그 구분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짚고, 모다피닐이나 유전자 변형을 논할 때도 사전 예방 원칙을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합리적 우려의 형식으로 다룬다. 생명윤리의 판단은 과학적 사실에서 자동으로 나오지 않지만, 과학의 구체적 메커니즘을 모른 채 세운 윤리도 허약하다는 균형감이 책 전체를 지탱한다. 읽기는 쉽지 않다. 대신 익숙한 생명윤리 쟁점을 도덕적 직감의 싸움에서 개념의 검증대로 옮겨놓는 힘이 있다. (팀 르윈스 지음ㅣ윤정환 옮김ㅣ서연비람)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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