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국내 출간된 '맥스 테그마크의 라이프3.0'. 내가 작업한 첫 번역서다. 이후 여러 권을 한 단어씩 따박따박 옮기는 동안, 거대언어모델(LLM) 인공지능(AI)이 홀연 등장했다.

AI는 단숨에 기존 기계번역을 뛰어넘었다. 번역 완성도를 측정하는 주요 기준으로 '위노그라드 스키마 챌린지'가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대명사를 정확하게 옮기는가'이다. 다음 문장의 'they'는 시의원들이다. The city councilmen refused the demonstrators a permit because they feared violence. 이를 필자가 2017년에 신경망 기반 자동 번역기에 작업시킨 결과 중 하나는 다음과 같다. '시의원들은 시위자들이 폭력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허가를 거부했다.' 이에 비해 2023년 AI는 '시의원들은 폭력을 우려해 시위대의 허가 신청을 거부했습니다'라고 비교적 정확히 옮겼다.


MTPE(Machine Translation Post Editing). 번역은 AI에 맡기고 사람은 AI를 거쳐 번역된 글을 편집하는 역할 분담을 가리키는 말이다. AI가 번역 솜씨를 인정받으면서 MTPE는 번역 업계에서 대세가 됐다.

기존 번역자도 '편집'을 하긴 했다. AI 번역이 깔끔해지자 이 역할의 비중이 전보다 더 커진 것이다. '편집'은 영어를 기준으로 할 때, 몇 가지 종류로 나뉜다. 우선 구조 전환이 있다. 예컨대 영어 문장에서 관계대명사로 연결된 절은 별도 문장으로 분리할 수 있다.


또 원래 우리말에는 없던 영어식 표현을 우리말답게 다듬는 일이 있다. 예컨대 '그들은 강한 반정부 성향과 왜곡된 현실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를 '그들은 반정부 성향이 강하고 현실 인식이 왜곡되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로 바꾸는 식이다. 또 '소셜미디어의 확산이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을 바꿨다'를 '소셜미디어가 확산하면서 사람들이 소통하는 방식이 바뀌었다'로 변환한다. 나는 비논리적인 최상급 표현도 수정하는데, '그는 한국에서 가장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연기자 중 한 명이다'를 '그는 한국에서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연기자로 꼽힌다'로 고치는 식이다.

아울러 난삽한 원문은 재구성해 번역한다. 예를 들어 '그는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데, 팔란티어 또한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사물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이 경우 그 사물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파괴 불가능한 돌이다'를 '그 역시 공동 창업한 팔란티어의 이름을 '반지의 제왕'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에서 팔란티어는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파괴 불가능한 돌이다'로 바꾼다.


마지막 역할은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는 것이다. 번역서에서 틀린 내용을 발견한 독자들의 손가락은 번역자를 향한다. 그런 누명을 쓰면 안 되겠기에, 나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원문을 읽는다. 내용이 사실인가, 앞뒤 서술이 들어맞는가, 전후 맥락을 고려할 때 제대로 서술된 문장인가 등을 따지면서.


알파고 이후 AI가 인간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다. 번역도 그 변화의 한 가운데 있다. AI 시대 번역자에게는 기존 문장 이해·구사 역량 외에 정확한 사고력이 요구되고 있다. 정확히 사고하는 번역자의 일은 AI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분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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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우진 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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