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시훈의 '그럴 리가 있는 조선사-조선에 이런 일이?'
남장 여행한 소녀부터 산후 휴가까지…익숙한 조선 상식에 던지는 38개의 질문
조선왕조실록 속 뜻밖의 장면들…'우리가 알던 조선' 다시 보기

"조선시대 살다 왔느냐." 칭찬은 아니다. 고루하고 보수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뜻이다. 조선은 어느새 남존여비, 신분제, 사농공상, 당파 싸움, 제왕적 군주제 같은 몇 개의 단어로 기억되는 나라가 됐다. 노시훈의 '그럴 리가 있는 조선사'는 그 익숙한 확신에 자꾸 딴죽을 건다.

[김희윤의 책섶]우리가 알던 조선은 얼마나 진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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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적장자 왕위 계승을 중시했다. 그런데 태조를 제외한 임금 26명 가운데 실제 적장자로 왕위에 오른 이는 저자의 계산으로 7명뿐이다. 여성의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않던 1830년, 열네 살 김금원은 남장을 하고 금강산을 여행했다. 성군 정조는 신하들에게 거친 말을 서슴지 않았고, 세종 때에는 출산한 관노비에게 산후 휴가를 주고 남편에게도 일정 기간 복무를 면제한 기록이 남아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제목 그대로 "그럴 리가" 싶은 장면이 튀어나온다.


흥미로운 건 조선이 의외로 '진보적인 나라'였다는 결론이 아니다. 그렇게 읽으면 또 하나의 단순화가 된다. 여성 여행자가 있었다고 여성이 자유로웠던 사회였던 것은 아니고, 출산한 노비를 배려했다고 조선이 복지국가였던 것도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이 보여주는 것은 500년 가까운 역사를 몇 개의 키워드로 요약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 예외와 사람을 지워버리는가 하는 점이다. 제도와 이념만 보면 '조선'이 보이지만, 기록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욕하고 사랑하고 반항하고 고집을 부리던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종류의 책은 자칫 '알고 보니 조선은 이랬다'는 반전의 쾌감만 좇기 쉽다. 예외적인 사례 하나가 시대 전체의 성격처럼 소비되기도 한다. 노시훈은 그 함정을 피하려고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를 출발점으로 삼고, 기록을 다시 대조하는 방식을 택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고르되 야사로 빠지지 않겠다는 태도다. 덕분에 독자는 '믿거나 말거나'의 기담보다, 익숙한 역사 상식의 빈틈을 들여다보는 쪽에 가깝게 읽게 된다.


저자는 왕실·인물·문화·해외 등 4개 주제, 38개의 이야기로 그 틈을 파고든다. 황희의 청백리 이미지부터 숭유억불의 실상, 독립문이 무엇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했는지까지 익숙한 역사 상식에 질문표를 붙인다. 신문방송학을 전공하고 10년 넘게 역사·문화 현장을 답사해온 저자답게, 문헌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로 들려주는 데 능하다. 딱딱한 기록은 현대적인 말투와 재치 있는 입담을 거쳐 '썰'처럼 읽힌다.

책 두께는 728쪽으로 만만치 않다. 하지만 38개의 에피소드가 각각 독립돼 있어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갈 필요는 없다. 궁금한 대목부터 펼쳐 읽다 보면 역사책에서 이름과 사건으로만 남아 있던 인물들이 갑자기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의 미덕은 바로 거기에 있다. 역사를 새로 외우게 하기보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역사 공부란 정답을 하나 더 외우는 일일까. '그럴 리가 있는 조선사'는 오히려 정답 하나를 잃어버리게 한다. 누군가에게 다시 "조선시대 사람 같다"고 말할 수는 있겠다. 다만 그 전에 한 번쯤 물어볼 일이다. 우리가 말하는 그 조선시대는 대체 어느 조선시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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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리가 있는 조선사-조선에 이런 일이? | 노시훈 지음 | 어문학사 | 728쪽


김희윤 기자 film4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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