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품대금 35일' 단축法 속도전…유통업계 "中企 판로 더 막힐 것"
직매입 대금 지급 기한 25일 단축
회전 빠른 대기업 상품에 매입 집중
중소 브랜드 타격, 해외 최대 120일 허용
티메프 사태를 계기로 대형 유통업체의 납품 대금 지급 기한을 현행 60일에서 35일로 단축하는 입법이 속도를 내고있는 가운데 유통업계가 반발하고 나섰다. 납품대금 지급이 빨라지면 유통업체들은 자금 압박이 커지면서 상품 매입이 줄고, 중소 납품업체로 피해가 집중될수 있다는 주장이다. 판매 회전율이 높은 대기업 제품 위주로 매입이 재편돼 중소·신생 업체의 판로가 오히려 좁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는 전날 직매입 대금 지급 기한을 상품 수령일로부터 35일 이내로 줄이는 내용의 대규모유통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대상은 연 매출 1000억원 이상 유통업체다. 특약매입·위수탁·임대을(유통업체가 판매대금을 대신 관리하는 임대)거래의 지급 기한도 판매 마감일로부터 40일 이내에서 20일 이내로 단축된다.
정산 빨라지면 매입 줄어, 중소기업 상품부터 타격
현재 직매입 대금을 35일 이후 지급하는 주요 유통업체로는 다이소·쿠팡·컬리·홈플러스익스프레스 등이 꼽힌다. 전자랜드와 영풍문고, TV홈쇼핑 업체와 일부 이커머스 플랫폼도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직매입은 유통업체가 상품을 직접 사들여 재고와 판매 책임을 지는 거래 방식이다. 유통업계는 지급 기한이 짧아지면 매입에 투입할 자금이 줄어 계절 상품이나 신생 브랜드보다 회전율이 높은 인기 상품을 우선 매입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한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상품이 팔리기도 전에 더 많은 현금이 묶이게 된다"며 "매입 예산이 줄면 판매가 빠른 대기업 제품은 살아남지만 중소·신생 업체 제품은 밀려날 수 있다"고 말했다. 강형구 한양대 파이낸스경영학과 교수도 "대금 지급 기한이 짧아지면 기업은 더 많은 운전자본을 조달해야 하고 금융비용도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연간 상품 매입 원가가 1조원이고 조달 금리가 연 6%인 기업의 지급 기한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이면 연간 약 50억원이 추가된다고 분석했다.
유병준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이커머스 대금 지급 기한을 60일에서 20일로 단축할 경우 납품업체와 소비자, 직매입 플랫폼 등에 총 47조70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됐다. 1년 뒤 유통사와 거래를 유지하는 납품업체 비율은 74%로 낮아지고, 중소업체 피해 규모는 연간 최대 21조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됐다.
직매입 줄고 특약매입 늘어날 수도
유통업계는 미국·유럽·일본에서도 업종과 상품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지급 기한을 일률적으로 단축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 봤다. 유럽연합(EU)은 납품업체와 합의하면 대금 지급 기한을 60일까지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재고 보유 기간이 길거나 회전율이 낮은 계절 상품 등에는 최대 120일까지 예외를 인정한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2023년 지급 기한을 원칙적으로 30일 이내로 제한하는 방안을 추진했지만 중소기업 판로 축소와 유통사의 자금 부담을 우려하는 반발에 부딪혔다.
유통업계에 따르면 미국 아마존과 월마트는 거래 조건에 따라 최대 90일, 코스트코와 베스트바이는 최대 60일의 지급 기한을 운영한다. 일본 이온그룹과 세븐앤아이홀딩스는 최대 60일, 중국 일부 대형 유통업체는 90~120일의 지급 기한을 두고 있다.
정산 규제가 강화되면 유통업체가 직매입을 줄이고 특약매입이나 위수탁 거래를 늘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약매입은 유통사가 상품을 외상으로 받아 판매한 뒤 수수료를 제외한 대금을 지급하고, 팔리지 않은 상품은 반품하는 방식이다. 중소 납품업체로서는 재고 부담이 커지고 유통업체와의 협상에서도 불리해질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1998~2020년 공정위 의결서를 분석한 결과 거래액 1000억원당 불공정 행위 발생 빈도는 특약매입이 4.24건으로 직매입(2.1건)의 2배를 넘었다. 공정위 실태조사에서도 대금 지연 지급 경험률은 특약매입이 4.3%로 직매입(2.9%)보다 높았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정산 속도보다 거래의 안정성과 자율성에 방점을 둬야 한다"며 "해외에서도 기업 규모와 산업 특성, 거래 유형에 따라 예외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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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일 한국유통학회 명예회장(세종대 교수)은 "티메프 사태는 자금 흐름 관리 실패로 시장 신뢰가 훼손된 것이 원인이지 정산 주기 자체가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며 "자금력이 충분하지 않은 유통 플랫폼에는 큰 타격이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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