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누적 6935억달러…절반이 반도체
자동차·선박 감소, 석유화학 내실 악화

전문가 "반도체 호황에 안주 말아야,
연계 산업 고도화·인프라 집중할 때"

한국 수출이 사상 첫 연간 1조달러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인공지능(AI) 수요를 등에 업은 반도체가 수출을 끌어올린 결과다. 그러나 반도체를 걷어내면 자동차·철강·석유화학 등 전통 제조업은 중국발 공급 과잉과 미국 관세에 짓눌려 있다. 수출 신기록의 이면에서 산업별 격차가 극단적으로 벌어지는 'K자형 양극화'가 나타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부 반도체 대기업의 성과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후속 산업 체질 개선과 인프라 구축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출 1조달러' 눈앞인데…반도체만 웃는 '비극적 양극화'
AD
원본보기 아이콘

'연 1조 달러' 가시권, 반도체만 '맑음'

2일 산업통상부가 발표한 '2026년 8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수출액은 982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월 대비 68.7% 증가했다. 이는 월간 기준 역대 최고치였던 올해 6월(1020억달러)과 7월(990억달러)에 이은 역대 3위 기록이다. 올해 1월부터 8월까지 누적 수출액은 6935억달러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액(7093억달러)에 근접했다. 남은 4개월간 월평균 약 766억달러씩만 수출하면 연간 1조달러를 달성한다.


수출 호조는 사실상 반도체가 이끌었다. 지난달 반도체 수출액은 466억50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9% 급증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전체 수출액의 47%에 달하는 규모다. 1~8월 누적 기준으로도 반도체 수출액(2800억달러)은 전체의 40%를 차지했다. 구글·아마존과 같은 하이퍼스케일러(데이터센터 운영사)의 설비투자 확대로 AI 인프라 수요가 견조하게 지속된 영향이다.

'수출 1조달러' 눈앞인데…반도체만 웃는 '비극적 양극화' 원본보기 아이콘

반도체 밖의 상황은 딴판이다. 지난달 선박 수출액은 인도 물량 감소로 전년 대비 반토막(-45.9%)이 났고, 자동차 수출(-29.8%)은 완성차 업체의 휴가 시점 이동과 부분 파업 생산 차질로 급감했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은 국제 유가 상승 영향으로 수출 금액 자체는 증가세를 보였지만, 실질적인 수출 물량은 각각 2.2%, 7.0% 감소하며 내실이 악화했다. 일반기계도 미국 관세 영향과 글로벌 경쟁에 직면하며 1.8% 증가하는 데 그쳤다.

제조업 내 양극화는 하반기 전망에서 더 뚜렷해진다. 대한상공회의소의 '2026년 하반기 산업기상도 전망'에 따르면, 반도체만 '매우 좋음'으로 전망됐다. 기계·건설·철강·섬유패션은 '어려움', 석유화학은 '매우 어려움'으로 평가됐다. 미국 관세와 중국의 저가 덤핑 공세가 전통 제조업을 동시에 압박한 결과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반도체 산업은 관세 영향에서 벗어나 경기 호황을 누리는 반면, 관세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자동차·철강 및 여수·광양·창원 등 남부 지방 산단 제조업은 가격 하락 부담을 안게 돼 어려운 상황"이라며 "향후 미국 무역법 301조 등이 적용돼 경쟁국 대비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된다면 어려움은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수출 1조달러' 눈앞인데…반도체만 웃는 '비극적 양극화' 원본보기 아이콘

"반도체 꺾이면 경제 전체 흔들…'수출 체질' 바꿔야"

반도체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진 데 대한 우려도 커진다. 반도체 경기가 흔들릴 경우 한국 경제 전반의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최근 발표한 '경제전망 수정'을 통해 "AI 투자 수익성에 대한 우려로 글로벌 AI 투자 수요가 위축되거나, 경쟁 심화로 국내 반도체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하락할 경우 경제 성장세가 빠르게 둔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슈퍼사이클(초호황) 이후를 대비해, 반도체 성과를 바탕으로 주변 산업과의 연계와 전통 제조업의 고도화를 이뤄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송인호 KDI 경제교육·정보센터 소장은 "반도체가 필요한 로봇 등 피지컬 AI, 전기차, 데이터센터 등 주변 산업과의 연계를 확장해 반도체 산업이 한국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해야 한다"면서 "미국 엔비디아가 연관 기업의 투자 자금 조달을 보증해주면서 자사 제품 채택을 유도하는 것처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도 피지컬 AI·전기차·데이터센터 산업과의 협력을 강화해 메모리 수요 자체가 꺾이더라도 다른 산업에서 수요가 계속 창출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자현 KDI 선임연구위원도 "관건은 반도체가 창출한 기회를 다른 주력 산업의 구조 고도화로 연결하는 것"이라며 "석유화학은 구조조정을 통한 친환경 전환으로, 철강 및 조선 등은 기술 고도화를 통해 우방국 공급망 안착으로 풀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도체 산업에서 축적된 인재와 공정 역량이 바이오, 데이터 기반 서비스 등 연관 생태계로 흘러 들어가는 낙수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AD

정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직접적 지원보다 인프라 구축과 제도 정비에 집중해야 한다는 제언이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시장에서 스스로 잘하는 대기업을 직접 지원하기보다는 전력망 등 필수 인프라 구축과 규제 개선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도록 기업들이 혁신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만들어 주고, 기업들이 민간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3년 이상의 장기적인 국가 전략과 제도적 토대를 조성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현지 기자 hjk@asiae.co.kr
김진영 기자 camp@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 무단전재 배포금지, AI 학습 및 활용 금지>

함께 보면 좋은 기사

새로보기

내 안의 인사이트 깨우기

취향저격 맞춤뉴스

많이 본 뉴스

당신을 위한 추천 콘텐츠

놓칠 수 없는 이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