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iew]일자리 밖 청년 100만명 시대…'경력' 사다리 복원해야
기업, 신입에 시니어 역량 요구
'첫 경험의 공백' 누가 메워주나
얼마 전 글로벌 회계법인 PwC는 10억건 이상의 채용 공고를 분석해 흥미로운 변화를 포착했다. 바로 경력 사다리의 소멸이다. 전략적 사고나 판단력같이 여러 해의 경험을 거쳐 쌓는다고 여겨졌던 능력들이 이제 신입사원의 기본 자격요건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AI)이 시니어를 대체하기에 앞서 주니어가 하던 일을 먼저 가져가고 있는 셈이다. 다시 말해 AI는 첫 직장을, 첫 커리어를 대체한다.
기업은 그동안 신입사원에게 자료 조사와 데이터 정리, 보고서 초안 만들기, 단순 프로그래밍과 같은 비교적 작은 일을 맡기며 이른바 '사람'을 키워왔다. 작은 업무를 반복하고 그 결과를 고쳐 나가는 과정에서 맥락을 이해하고 실수를 경험하면서, 점차 판단력을 갖춘 전문가로 성장할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제 가장 먼저 자동화되는 업무가 바로 이 '경력을 쌓는 일', 즉 '배우기 위한 일'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 채용을 줄이면 당장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사람을 전문가로 만들어온 훈련 과정 자체가 소멸한다. 첫 일자리에 진입하지 못하면 소득만 발생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경력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정부는 기본소득과 같은 소득 보장 방안을 말한다. 그러나 소득이 '일'이 주는 의미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일은 단순히 돈을 버는 수단을 넘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능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감각을 얻는 과정 자체이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에 처음 진입하는 청년에게 첫 직장은 소득의 시작인 동시에 경력과 숙련이 축적되기 시작하는 첫 번째 계단이다. 고용노동부는 AI를 잘 쓰는 사람을 키우는 AI 인재 양성 카드를 내밀었다. 2026년에는 AI캠퍼스를 신설해 약 1300억원을 투입하고 AI 엔지니어와 AI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자 등 AI 전문인력 1만명을 양성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에는 여전히 본질적인 질문이 빠져 있다. AI를 잘 사용하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양성할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신입의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신입은, 청년은 도대체 어디에서 경험을 쌓고 전문가로 성장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코딩이나 AI 활용법을 몇 달 더 가르친다고 해서 판단력과 관리 역량, 문제를 정의하고 책임지는 능력과 같은 경력, 이른바 시니어들이 갖춘 역량이 배양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역량은 실제 업무에서 작은 일을 맡고, 실패하고, 피드백을 받고, 더 어려운 일을 맡는 과정을 거치며 축적된다. 즉 경험이 필요하다. 기업이 신입에게 이미 시니어 수준의 역량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면 정책 역시 취업 직전의 스킬 쌓기나 직무교육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직업훈련과 대학 교육 모두 이제 경력의 사다리를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프로젝트와 기초 실무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인턴십과 현장 프로젝트를 대학 교육과정 안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 기업 입장에서 인턴십이 단기적으로는 비용으로 인식될 수 있는 만큼 정부는 기업이 청년에게 초기 업무 경험을 제공할 수 있도록 그 비용과 위험을 함께 분담해야 한다. 대학 역시 이러한 현장 경험을 단순한 취업 준비로 취급할 것이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의 일부로 편입해 적극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인턴십 학기나 프로젝트 학기와 같은 제도를 확대하되, 기존의 학문적 기초를 충실히 쌓는 교육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론과 실무 경험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새로운 교육과정을 설계해 경력을 쌓을 첫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청년들이 각자 알아서 인턴십을 구하고 경력을 쌓도록 맡겨 두던 시대가 끝나간다. 기업이 더 이상 제공하지 않는 '첫 경험'의 공백은 결국 정부와 대학, 사회가 함께 메워야 한다. 그래야 AI 시대에도 주니어가 시니어로 성장할 수 있는 사다리가 끊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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